전시기획자의 오기가 느껴지는 전시판, ‘이상한 나침반’전과 ‘이미지 충돌’전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전시회를 짜내는 큐레이터는 복잡한 미덕을 갖춰야 한다. 그림 보는 눈썰미만으론 어림없다. ‘장광설’ 혹은 ‘사자후’가 가능한 인문적 교양과 글발, 장사치 같은 붙임성, 관장 뺨치는 행정가적 역량, 서류 꾸밈 능력 등등.
최근 신정아씨 학력 파동으로 큐레이터들도 덩달아 ‘자질론 눈총’에 등이 따갑다. 그런 눈총을 자신만의 인문적 내공과 배짱으로 코웃음쳐버리는 소장 기획자 두 명이 늦여름 각각 슬그머니 전시판을 차렸다. 작가 겸 기획자 김학량(43)씨와 사진 기획자 한금현(40)씨. 장삿속 열기로 후텁지근한 서울 인사동 화랑가를 비껴가서 김씨는 서울 창덕궁 앞 갤러리 눈에 ‘이상한 나침반’전(9월18일까지, 02-747-7277)을, 한씨는 서울 소격동 기무사 정문 건너편 갤러리 트렁크에 ‘이미지 충돌’전(9월2일까지, 02-3210-1233)을 만들었다. 남이야 뭐라든 내 식대로 세상과 미술판을 뜯어보고 풀어낸다는 오기를 발산하는 전시다. 들여다보니 전통과 옛것 붙잡고 까발리고 뜯어보는 틀거지가 만만치 않다.
보고 나면 팥 앙금 같은 건더기가 걸려
창덕궁 홍화문 맞은편 4층 건물에 1, 2층 전시장, 계단 난간, 옥상 공간을 총체적으로 활용했다. ‘이상한 나침반’전은 뒤죽박죽이다. 그린 것 없이 볼록볼록 흰 화폭 천 곳곳이 튀어나오면서 꿈틀거리는 ‘맹한’ 그림(조주현)이 맞는다. 친구가 권유해 그렸다는 금강 부근의 점잖은 사계절 풍경화(임동식), 런던 시내 백인 남성과 동양 여성들의 밀담 장소 ‘클럽 겐키’의 사진(이정), 주택가 하수관 속 암흑 공간을 통째로 석고로 떠낸 조형물(한상혁)들이 이러저리 널렸다. 벽 사이사이 조선시대 화가 윤두서의 자화상과 화가 이인문의 금강산 그림, 겸재 정선의 초당 그림을 복제한 사진들이 나붙고, 계단실 유리벽에는 작가 박기원씨가 푸른빛 비닐막을 씌웠다. 계단 공간에는 백기은씨가 철사로 만든 이상한 나라의 동물들이 매달린채 기다린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동덕여대 큐레이터과 전임강사 김씨는 ‘깜냥’이 잘 짐작되지 않는 이다. 이 전시도 그렇고, 차린 현대미술 전시마다 내건 그림, 설치, 조형물들은 뚜렷한 계통으로 갈래짓기 어렵다. 또렷한 개념이 잡히지 않고 산만하고,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중심이 없다. 그런데도 보고 나면 머릿속에 간단하지 않은 것이 팥 앙금처럼 걸린다. 분명한 것은 그가 툭하면 ‘전통’ ‘정체성’ 걸고넘어지는 기존 현대미술 전시에 대해 지독한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 그래서 전시에 앞서 전통의 도식만 따지는 한국 화단에 대한 자신의 염증과 편견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상한 나침반’전은 ‘자기 동일성이나 전통 같은 이슈에 대한 육감적 각주’란 부제대로 전통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쉽게 뽑아먹으려는 요사이 작품 경향에 대한 반감을 은유화해 드러낸다. 철거될 서울 변두리 진관외동 낡은 슬레이트집 담벼락 꽃 풍경을 찍은 강홍구씨의 서민촌 사진, 남극대륙 사진 이미지를 복제해 유화로 그린 김형관씨의 그림과 복제된 조선시대 화가들의 진경 그림은 무엇이 다른 것이냐고 전시는 묻는다.
“지금 우리 미술을 몸 자체로 느껴보자고 전시를 만들었다”고 그는 개막식날 뒤풀이에서 말했다. 전시장에 질펀하게 늘어놓은 다기한 장르의 작품들은 해독이 어렵고 형이상학적 수사나 난해한 도식만 강조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전시 얼개에 대한 또 다른 비웃음의 의미로 환치할 수 있다. ‘미술재료 같지 않은 재료’를 사용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몸이 가리키는 감각과 상상력대로 미술의 감각과 경계를 끊임없이 전복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과거 예술과의 관계를 다루는 경우 앞세워야 할 점은 전통적 매체나 어휘, 문법, 언어가 아니라 다름 아닌 내 몸뚱어리를 살피는 일이다’라고 그는 전시 서문에 썼다.
그렇게 보고 싶었어? 그럼 봐라 봐!
불문학을 전공한 독립기획자 한금현(40)씨가 데뷔전인 ‘이미지 충돌’에서 보여주는 전시 구도는 관능의 시대적 이질성을 다룬다. 나이차만 50살이 넘는 원로 사진작가의 60~70년대 ‘섹시녀’ 사진과 30대 초반 여성 작가가 치마 속을 도도하게 보여주는 영상이 좁은 공간에서 맞부딪힌다.
작품을 고른 배경과 기준이 여느 사진전과 다르다. 전시장 1, 2층 벽을 60~70년대 연예가를 풍미하던 여배우들의 야하거나 정숙 우아한 달력 사진들이 가득 메웠다. 1층 기름회사 달력 코너. 길쭉한 성기 같은 주유기 호스를 들고 비키니 차림으로 보는 이(남성)를 응시하는 당대의 여배우들이 억지스럽게 웃는다. 그 옆 구석엔 그 배우들과 달리 무서운 혹은 진지한 얼굴로 검은 옷 입은 S라인 몸매의 여성(작가다)이 엄숙하게 서 있는 영상 화면이 있다. 곧이어 여성은 공을 바닥에 탕탕 튀기면서 공받기 놀이를 시작한다. 오른쪽 다리를 규칙적으로 쩍쩍 벌리면서 가랑이 팬티를 보이면서 공받기 놀이를 한참 하다가 다시 엄숙하게 선다. 남자의 관음적 시선을 화두 삼은 것이긴 하지만, 페미니즘 전시에서 보이는 포르노 사진, 남성업소 사진 따위를 비틀어 쓰지 않는다. 대신 60~70년대 어른들이 좋아했던 당시 여배우의 비키니 수영복 사진을 넣은 기름회사 달력, 고궁 앞에서 찍은 각종 달력 사진들을 남성적 시선의 모델로 들고 왔다. 이 묵은 사진들을 찍은 작가는 국내 상업사진의 선구자이자 50~70년대 서울 풍경 사진으로 알려진 원로 김한용(83)씨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당대 풍속사, 시각 문화사의 보고로서 김씨의 옛 달력 사진을 지목하고, 그때 그 시절 야한 사진을 사진사적 텍스트의 시야로 끌고 들어왔다. 게다가 이 사진의 대척점에 놓이는 사진은 이성적 감각으로 무장한 재불 영상작가 이세(32)씨의 야성 넘치는 사진이다. 허벅지 드러난 다리를 들어올리며 공을 거칠게 톡톡 치받는 여자는 눈길을 내쏘면서, ‘그래, 보고 싶냐? 맘껏 봐라 어떤지!’라고 외치는 듯하다. 야한 느낌도 있지만, 너무 당당하고 억세서 덤덤해지는 이씨의 영상은 촌스러움과 향수를 더욱 진하게 일으키는 30년 전 달력 사진의 관능과 암팡지게 충돌한다. 기획자는 시대의 풍속과 문화를 반영한 옛적 야한 사진들에서 당대 욕망의 감도까지 읽어낼 수 있음을 간파하고서 전시의 맥을 잡았다. 30대 여성작가의 도발적인 현대 영상물을 촉매 삼아 생물처럼 변하는 시선의 유기적 속성을 생생한 촉감으로 와닿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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