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EIDF2007, 사무국장·프로그래머 강력 추천작 6편
어떤 생짜 이야기는 ‘만든 이야기’보다 재밌다. 그러니 다큐멘터리는 가끔 영화를 능가한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EIDF2007의 캐치프레이즈는 ‘사람과 사람, 공존을 위한 대화’다. 캐치프레이즈는 변하지만 지난 1년간 세계 각국에서 쏟아진 다큐멘터리 중 수작들만을 모아서 방송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것도 하루 10시간 이상 줄기차게. 8월27일부터 9월2일까지 EBS 채널을 틀면 이 다큐멘터리들을 즐길 수 있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평일은 8시간, 주말은 14~15시간 방송된다. 영화제 기간 동안 EBS 스페이스에서는 감독과의 대화가 곁들여진 경쟁작의 상영회가 있다. 이외에도 메가박스 코엑스, 연세대학교 inD, 대안공간 루프, 아트스페이스 카메라타 등에서 직접 관객을 만난다. EBS 스페이스와 메가박스 코엑스는 홈페이지(www.eidf.org)에서 예약을 해야 하며 나머지는 별도의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있다. 은 다큐멘터리를 먼저 섭렵한 형건 사무국장과 고영준, 정민아 두 프로그래머에게 두 작품씩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총 58편의 다큐멘터리 중 알짜다. 편집자
형건/EIDF 사무국장 추천작
1. 엄마의 일기장 51 Birch Street
더그 블록 Doug Block/ 미국/ 2005/ 88분/ 방송 8월28일(화) 오전 11시
감독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불과 몇 달 뒤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갑자기 새장가를 가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부모님의 55년 결혼 생활이 모범적이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상대가 당신이 몇십 년간 데리고 일한 여비서라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새 가정을 꾸려 플로리다로 가겠다는 아버지의 이삿짐을 꾸리며 발견한 어머니의 빛바랜 일기장은 감독이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 감독은 어머니가 35년간 써온 일기장을 읽어내려 가며 롱아일랜드의 전형적인 중산층 부부로 큰 문제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던 부모님 사이에 문제들이 끊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또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한다는 말처럼, 어머니의 일기장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이라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어머니를 만나고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볼 때마다 하늘나라에 계신 감독의 어머니는 당신이 남기고 간 일기장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2. 로스쿨, 변호사에 도전하라! A lawyer walks into Bar
에릭 차이킨 Eric Chaikin/ 미국/ 2007/ 89분/ 방송 9월1일(토) 저녁 8시25분
2005년 (Word Wars)이라는 작품으로 에미상 후보에도 올랐던 에릭 차이킨 감독은 특유의 유머와 깔끔한 구성으로 미국 변호사 시험 제도와 로스쿨 졸업생들의 꿈과 도전에 포커스를 맞추어나간다. 미국은 주마다 로스쿨 졸업생들의 사법시험 난이도와 합격률이 다른데 50개 주 중 캘리포니아주 합격률은 39%로 경쟁률도 가장 높고 합격하기가 어렵다. 언어학을 전공한 감독은 미국 사회에서 선망과 애증의 대상인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 각계의 다양한 시각을 애니메이션을 섞어 재미있게 구성했다. 또한 이 작품에는 현재 미국에서 잘나가는 변호사는 거의 다 등장하는데 미식축구 선수 출신인 오제이 심슨의 무죄를 이끌어낸 로버트 샤피로 변호사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40번 넘게 사법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수험생도 등장한다. 캘리포니아 로스쿨 출신 6명의 사법시험 도전기를 애정 어린 시각으로 그린 감독 또한 한때는 변호사 지망생이어서 작품 곳곳에 감독의 해박한 법 지식과 예리한 법 해석이 눈에 띈다.
고영준/ EIDF 프로그래머 추천작
3. 신의 물방울, 몬도비노 Mondovino
조나단 노시르테르 Jonathan Nossirter/ 프랑스·미국/ 2007/ 136분/ 방송 9월1일(토) 새벽 0시55분
포도주라는 이름보다는 와인이라는 타이틀이 더 근사해 보인다. 생산연도가 오래된 것일수록 그리고 유명한 산지의 것일수록 더 고급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날에는 자리를 빛내기 위해서 구하기 힘든 와인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시장에 영향력 있는 포도주 사업가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어떨까?
포도주를 둘러싼 현대의 와인 신화가 사실은 세계화된 포도주 산업의 철저한 마케팅 전술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은 마치 과음한 다음날의 숙취만큼이나 우리에게 묘한 불쾌감을 남긴다. 제목에 등장하는 몬도비노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이라는 만화의 1권 뒷부분에 소개된 와인이다. 작품은 포도의 품종과 재배 방법 그리고 포도주의 맛이 세계화의 이름으로 표준화되면서 어그러지는 와인산업의 자화상을 포도 재배 농민에서부터 포도주 상품 개발자에 이르는 각층의 사람들과 밀착 인터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포도주 한 잔에 담아보던 인생의 낭만마저 세계적으로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복제품이라는 사실은 자칫 우리의 인생도 세계화의 이름으로 그렇게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4. 무크타르 마이의 외침 Shame
모하마드 알리 낙비 Mohammed Ali Naqvi/ 파키스탄·미국/ 2006/ 94분/ 방송 8월28일(화) 밤 9시50분
세계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제3세계 문화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이슬람의 ‘명예살인’이다. 부족의 명예에 손상을 입혔다고 여겨지는 여성에 가해지는 이슬람 문화권의 사형(私刑) 관습으로 ‘명예처벌’이라고도 불린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죄목으로 집단윤간을 당한 무크타르 마이라는 파키스탄 여성이 등장한다. 여성 인권에 관해 주목받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인 파키스탄! 아직도 부족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는 사회이기에 여성 인권의 문제 또한 이슬람 문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명예처벌’ 희생자의 용기 있는 저항 기록인 은 이슬람 문화에서 여성 인권의 문제점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주인공은 한국을 비롯해 외국의 여성 인권단체의 주요 초청 인사나 세계 뉴스 미디어의 단골손님이 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이렇게 밀착해 취재한 다큐멘터리는 없었다. 종교 율법과 여성 인권의 갈등 문제가 파키스탄 사회 내에서 어떻게 풀려가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정민아/ EIDF 프로그래머 추천작
5. 빅 할아버지와 수녀 The Monastery- Mr. Vig & the Nun
페르닐레 로세 그뢴크제르 Pernille Rose Grønkjær/ 덴마크/ 2006/ 84분/ 방송 8월27일(월) 새벽 0시10분
82살의 덴마크인 미스터 빅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외로운 노인이다. 그는 대단한 학식을 갖춘 종교심이 깊은 노인으로 평생 로맨틱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그의 오랜 꿈은 자신의 허물어져가는 낡은 고성을 수도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이 고성에 젊은 수녀들을 파견한다. 수녀들은 노인을 설득하고, 건물을 보수하며, 그의 일상생활을 돕는다. 한 번도 여인들과 살아본 적이 없는 빅의 생활은 서서히 변화를 보인다. 그들 중에서도 고집 센 말괄량이 수녀 암브로시자는 빅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이런 그들의 티격태격하는 다툼은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숲 속 고성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함께 소소한 재미를 주지만, 노인은 심각한 갈림길로 내던져진다. 이제 성을 교회에 바치고 집을 떠나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성에 남아 외로운 삶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시드니, 브라질, 시카고, 벨기에, 미국 풀프레임, 덴마크 등 많은 페스티벌에서 수상했다. 외로운 독신남으로 살아온 노인의 아련한 기억, 당돌한 젊은 수녀, 각자의 꿈을 향한 행동이 삶의 고독, 종교, 행복과 이상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6. 신비한 공, 친론 Mystic Ball
그레그 해밀턴 Greg Hamilton/ 미국·캐나다·버마/ 2006/ 83분/ 방송 8월29일(수) 새벽 0시30분
버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아웅산 수치의 투쟁과 한국에 건너온 불법 이주노동자 문제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이 나라의 찬란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접할 방법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던 버마라는 나라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있다. 그레그 해밀턴 감독은 고대로부터 전해져왔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버마 전통 스포츠인 ‘친론’에 깊이 매료된다. 친론은 상대가 없는 팀 스포츠이고, 춤이고 명상이며, 승자도 패자도 없다. 이 게임은 고난도의 숙련된 동작을 요하지만 모든 버마인들이 세대를 불문하고 즐긴다. 영화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친론을 배우기 시작해 게임을 완벽히 익혀 팀원이 된 한 서구인의 변화 과정을 따라간다. 친론 세계로의 열정적 여정을 통해 감독은 가족, 공동체,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버마 선수들은 숨겨진 예술을 세상에 알려주는 사람을 만났다. 이제 캐나다인인 감독은 버마 국기인 친론을 다룰 줄 아는 비버마인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이 작품은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음으로써 그 대중적 인기가 입증되었다. 매력적인 촬영과 경외감을 일으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며 영화에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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