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 스님이 사진으로 남긴 ‘몽골초원과 유목민의 삶’ 전시회
▣ 청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이제 누구나 ‘디카’로 찍고 인터넷에 퍼나르는 사진을 독일 비평가 월터 베냐민(1892~1940)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이라고 불렀다. 그 말을 명상 사진가였던 관조 스님(1943~2006)의 작품에 붙인다면 ‘기술복제시대의 수행 방편’이 되지 않을까.
그는 사진 찍기를 지우기로 여겼다. 나라 안 곳곳의 불교 문화유산, 온갖 산곡과 강, 바다, 뭍 생물들을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아냈지만, 자기 존재는 잊고 잊으면서 지워갔다. 인공적 앵글로 이런 역설을 실천하니 절집이나 자연, 인간 풍경 세부의 미미한 곳에서 깨달음 주는 풍경이 찍혀 나왔다. 흔한 풍경 사진의 전형성 너머를 보는 관조의 사진들은 구도의 짜임새가 팍팍하게 옹글지 않고, 물이나 바위, 산 등이 말을 걸어온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임종 전 읊은 시는 ‘삼라만상이 본래 부처 모습이라 한줄기 빛으로 담아 보이려 했네…’로 시작한다.
질박한 생존의 고투, 자연의 광기
스님의 1주기를 네 달여 앞두고 몽골 산천을 찍은 유작 일부가 국립청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몽골초원과 유목민의 삶’이란 이름으로 몽골초원을 떠돌며 찍은 3천여 점 가운데 자연, 유목생활, 사람들, 축제, 종교, 유적 등 여섯 주제로 뽑아낸 80점이 내걸렸다. 몽골 작업을 생전부터 ‘찜’해두었던 민병훈 관장의 제의에 관조의 제자이자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인 승원 스님이 선뜻 응해 내놓은 소장품들이다. 원래 아무 제목도, 설명도 없는 사진들은 뜻밖에도 낭만적 풍경이 아니라 질박한 생존의 고투, 자연의 광기가 어린 몽골의 자연과 사람 풍경을 응시한다.
녹색 카펫 같은 구릉과 초원만 보이는 땅에, 뭉게구름으로 하늘이 뒤덮은 몽고의 풍경 사진은 항공편으로 대지를 파노라마화한 구도가 새롭다. 녹색 물결에 구름 그림자가 악센트를 주면서 깔렸다. 초원 곳곳에서 마주치는 머리통 잘린 몽고 특유의 돌사람(훈촐로)상은 화석이 된 죽음의 시간을 상징한다. 뱀처럼 초원길 사이를 꾸불거리며 뻗어가는 실타래 강은 길이자 생명이다. 죽은 짐승의 주검과 뼈가 널브러진 몽골 사막의 풍경은 꿈보다 해몽이 좋아 보인다. 고인의 사후 이들 사진에 해설과 제목을 붙인 이평래 한신대 교수는 “사막과 초원에서 몽골인은 늘 죽음의 흔적들과 만난다. 그것은 따져보면 죽음의 연습”이라고 했다. 파란 하늘, 돌산 둘레를 꿈틀거리며 제 몸 바꾸는 모래 언덕, 고비사막 한 모퉁이에 만발한 꽃밭 등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피어올랐다 사라진다. 초원과 구릉 위를 몽골인 가족, 가축들이 천막집 게르를 가지고서 흘러다닌다. 그들의 게르에는 앳된 몽골 소녀들이 숨어 있고, 마유주가 통 속에서 익고 있다.
“수십 년만 지나면 문화재가 될 것”
1970년대 후반부터 고인이 곳곳의 사찰과 자연 등을 소재로 남긴 사진작업의 덩치는 필름 파일로 가득 채운 대형 사진첩만 300개가 넘는다. 타계한 고승들의 희귀 초상 사진 등도 포함되어 있다. “수십 년만 지나면 구한말 희귀 사진에 비할 만한 문화재가 될 것”(민병훈 관장)이라고 했지만 앞서 항온·항습 시설이 완비된 수장고 보관이 필요하다고 8월6일 개막식에 나온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승원 스님은 “나무상자에 필름 넣고, 얼음 등을 옆에 두고 온습도를 조절할 때도 있다”며 “사진을 장소, 장르, 시기별로 분류하면서 아날로그 흑백사진들만 모아 별도의 전시를 추진할 생각”이라고 했다. 8월18일, 25일에는 몽골 유목문화, 유목민에 대한 특별 강연도 열린다. 9월30일까지, 043-255-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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