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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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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외로운 곳, 음악이 차오르다

등록 2007-08-03 00:00 수정 2020-05-03 04:25

구스타보 두다멜과 정명훈, 두 지휘자가 소외 계층 연주단과 만드는 감동 클래식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구스타보 두다멜? 서양의 동화 속 지명 같은 이름을 지닌 26살의 곱슬머리 지휘자가 요즘 세계 클래식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그는 석유와 미인 강국, 차베스의 다혈질 표정으로 눈에 익은 조국 베네수엘라의 새 자부심이 됐다. 지방도시의 달동네 청소년 악단에서 지휘의 걸음마를 익힌 독특한 출신성분(?), 몸부림 같은 지휘, 라틴 춤 같은 쫄깃한 템포로 그는 단박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2004년 말러 지휘자 콩쿠르 우승. 뒤이어 지난해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 차기 예술감독 자리가 돌아왔다. 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악단의 차기 예술감독 자리도 확보했다. 아바도, 래틀, 바렌보임 같은 거장들은 한결같이 스승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건 우리의 영재 교습과는 동떨어진 성장 배경이다. 나라, 지자체가 빈민층 어린이, 청소년을 범죄에서 지키기 위해 음악을 가르치는 베네수엘라 특유의 교육 프로그램 ‘시스테마’ 덕분에 훌쩍 큰 감동의 스타가 바로 두다멜이다.

두다멜은 최근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베네주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곡가 말러(1860~1911)의 걸작 교향곡 5번을 연주한 두 번째 음반을 도이치그라모폰(디지)에서 냈다. 두다멜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는 역시 시스테마의 혜택 아래 성장한 소외계층 출신의 청년 악단. 첫 음반에서 거칠 것 없는 템포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을 들려주었던 그는 복잡·산만한 심리와 감정이 물결치는 말러 교향곡의 5악장을 담백한 패기로 훑어내려간다.

개성적 템포 도드라지는 ‘제트기 사운드’

교향곡 5번은 평생 죽음을 고심한 말러의 삶에 대한 애착, 고뇌, 희망이 5악장 구성을 통해 차례차례 펼쳐지는 대표작이다. 두다멜은 장중한 말러 사운드의 무게감을 덜고, 깔끔하면서도 경쾌하게 해석한 것이 인상적이다. 관현악이 맞물린 템포는 잽싸지만, 지나치게 음률을 늘이지 않고, 담백하다. 악보 음표를 꼼꼼히 훑으면서도 강약 대비, 템포 대비는 분명한 까닭이다.

트럼펫의 장송행진곡으로 무겁게 시작하는 1악장. 당돌할 만큼 명확하면서도 극적인 음악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힌다. 빨라야 할 부분은 빠르게, 낮출 부분은 최대한 낮추는 식으로 악구 사이의 연결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죽음과 염세의 관념을 노래한 말러의 대곡은 풋풋하고 패기 넘치는 템포 리듬에 새롭게 포장된 격이다. 생사에 대한 고뇌와 격정 속에서 햇살처럼 희망의 메시지가 솟아올랐다가 묻히는 2악장, 발랄한 선율과 죽음을 상징하는 음울한 선율이 산만하게 뒤섞인 3악장 모두 두다멜은 산조나 라틴 춤곡처럼 휘휘 템포를 몰아간다. 음울한 선율도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나도록 진행하는 까닭에 지루한 분위기가 덜하고 양념 덜 친 음식처럼 담백한 맛이 난다.

저 유명한 4악장의 연가 아다지에토는 중후함은 덜해도 고즈넉하게 울부짖는 현악의 잔잔한 흐름 속에서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은 확실히 들어가게 하는 ‘S라인’ 멜로디를 들려준다. 생의 의지와 희망을 굳세고 씩씩한 마무리의 관현악 합주로 끝맺는 5악장 론도 피날레는 마치 대중밴드의 연주처럼 속도가 붙어 흘러간다. 격정 사운드라기보다는 날래고 잰 듯한 템포와 소리가 도드라지는 ‘제트기 사운드’다. 악장 말미로 갈수록 성급하게 현과 관이 몰아세우는 쪽으로 흐르고, 악보의 해석, 관현악의 어울림은 매끄럽지만, 말러 선율의 복잡미묘한 깊이감 등에서 간이 덜 배어든 느낌도 준다. 전반적으로 가볍고 튀지만, 개성적 템포와 치밀한 악장 탐구가 엿보인다.

정식 발매는 8월 중순이라고 디지의 모회사 유니버설뮤직은 밝히고 있지만, 8월 초부터 직수입반이 먼저 나올 전망이다. 두다멜은 “베토벤 연주가 내게 꿈이자 희망이었듯 말러 연주 또한 내게는 위대한 도전이자 꿈”이라고 말하면서 “비판, 기쁨, 행복, 사랑, 희망으로 발전하는 5번 교향곡의 악장 얼개를 재구성하는 데 주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거장 아바도도 지난해 베네수엘라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로마 연주회에서 지휘 도중 말러 교향곡 5번 지휘를 아예 그에게 맡겨 눈길을 끈 바 있다.

“말러 연주는 내게 위대한 도전이자 꿈”

소외 계층 불우 청소년들로 악단을 구성해 교육하고 연주하는 것은 18세기 베니스의 음악 명장 비발디가 고아원 출신 아이들로 실내악단을 결성해 등의 걸작을 연주한 이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런 소외 계층 연주단은 국내에도 뿌리가 이어져 올여름에도 화제의 연주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해온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79년 창단)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시향을 이끄는 거장 지휘자 정명훈(54)씨, 그의 막내아들 정민(23)씨가 함께 예사롭지 않은 협연의 무대를 마련한다. 8월20일 저녁 7시30분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열리는 ‘소년의 집 기금 마련 음악회’다.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는 부산 알로이시오 중·고등학교 재학생들 가운데 음악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골라 구성한 관현악단이다. 비발디 연주에 일가견이 있다는 이 오케스트라는 99년 바이올린 연주자 장영주, 유진박씨와의 협연, 2004년 멕시코 방문 공연, 2005년 11월 지휘자 정명훈씨와 마스터 클래스 등을 펼친 바 있다.

레퍼토리는 1부 베토벤의 , 2부 베토벤 교향곡 5번 인데, 정씨 부자가 지휘를 번갈아 맡는다. 은 정민씨가 지휘하고 정명훈씨가 피아노를 치며, 교향곡 5번은 정명훈씨가 직접 지휘한다. 서울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아들 정씨에게 이번 연주는 지휘자로서 데뷔 무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 정씨는 한사코 ‘봉사’라고 선을 그었다. 구호병원, 초등학교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 준비에 올 상반기부터 공을 들여온 그는 “악기도 변변치 못한 이들 오케스트라의 실력보다 연주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영감에서 감동을 느껴보라”고 권했다. 02-518-7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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