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과 ‘소속사 파워’ 앞에 등장한 꽤 똑똑한 프로그램 문화방송
▣ 강명석 기획위원
요즘 사람들은 연예계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어떤 연예인이 “몇 년 전에 누구와 사귀었다”고 말하면 인터넷에는 “음반 내서 홍보하려고 저런다”는 댓글이 달리고, 10대 아이들도 ‘언플’(언론 플레이)과 ‘소속사 파워’를 말한다. 그래서 요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1990년대의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휩쓰는 신인 스타가 나오기 힘들다. 재능 있는 아이들은 대형 기획사에서 10대 초반부터 스카우트하고, 그들은 기획사의 관리 아래 광고 모델부터 음반 취입, 그리고 연기까지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며, ‘알 거 다 아는’ 대중 역시 그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팔짱 끼고 지켜보다 그들에 대한 ‘검증’이 끝나야 호응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때까지 언론에 홍보를 해주고, 계속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은 대형 소속사의 힘이다.
대중도 알 건 다 안다
문화방송 은 대중이 쇼비즈니스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대형 기획사가 재능 있는 아이들을 ‘저인망’으로 쓸어가는 마당에 엄청난 스타성을 가진 아마추어가 남아 있을 리 없다. 에는 V.O.S처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재정 문제’로 1년 동안 음악활동을 쉬거나, 디카프리오처럼 신인이면서도 이름 한번 보지 못했던 팀들이 나온다. 또 노래만 잘 부른다고 인기를 얻을 수 없다는 걸 다들 아는 상황에서 실력만 강조하지도 않는다. 심사위원들은 가수에게 조언을 해줄 뿐이고, 우승자는 관객의 투표로만 결정된다. 관객의 마음만 얻는다면 노래 대신 “한 표만 달라”며 눈물을 흘려도 된다. 게다가 그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출연자의 반을 탈락시키는 룰렛을 통과하며 ‘운’을 시험해야 한다. 우승을 해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 우승자는 다른 가수의 노래 대신 자신의 노래를 무대 위에서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은수저’를 물고 데뷔하는 대형 소속사의 가수들은 데뷔 과정부터 케이블 방송의 리얼리티쇼를 통해 홍보돼 ‘대형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지만, ‘돈 없고 빽 없고’ 대형 기획사에 뽑힐 만큼 스타성도 없는 가수들은 가수 티아처럼 ‘데뷔 10년’ 동안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은 숨어 있는 실력자를 발굴해 전 국민적인 스타로 만드는 같은 미국 리얼리티쇼의 화려함을 따라하지 않았다. 대신 막대한 언론 플레이를 해줄 수 있는 대형 기획사가 아니면 변변한 팬클럽도 없이 매니저 한 명이 조악하게 만든 피켓을 들고 응원하는 요즘 무명 가수들의 ‘영세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현실은 쇼비즈니스의 뻔한 거짓말에 신물이 난 대중에게 역으로 가수의 ‘진심’을 전한다. DJ 생활을 하다가 어렵게 데뷔한 가수 울프는 중도에 탈락하자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는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그룹 디카프리오는 투표에서 꼴지만 하다가 한 순위 올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은 우승자에게 노래 부를 기회를 주는 것 외에 아무런 상도 주지 않지만, 이 절박한 처지의 가수들은 그 한 번의 무대가 자신의 입지를 바꾸기 때문에 소중하다. 우승 경력이 있는 V.O.S와 슈퍼키드는 자연스레 의 중심이 되고, 좋은 무대를 선보인 가수들은 다음주 방영분에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은 ‘실력’을 앞세우지 않아도 가수들의 ‘진짜 실력’을 보여준다. 가수 최정민이 를 부르다 숨이 헐떡거리는 순간 의 카메라는 분위기가 죽은 관객석을 보여주고, 전주에 비해 다소 활력이 떨어지는 슈퍼키드는 곧바로 순위가 떨어진다. 어떻게든 많은 표를 받으면 되지만, 무명이나 다름없는 그들이 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좋은 무대를 선보이는 것밖에 없다.
어느새 V.O.S와 슈퍼키드는 라이벌
처음에는 그저 그런 가수들의 ‘패자부활전’ 같았던 무대가 경쟁이 계속되자 분명한 우열이 생기고, 은 새로운 관계가 생길 때마다 유연하게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며 수많은 스토리가 전개될 수 있는 리얼리티쇼로 진화한다. 어느새 V.O.S와 슈퍼키드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무대에 선 에반은 나름의 ‘사이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그저 가수들의 무대를 주로 보여주던 프로그램이 무대에 오르고 싶어하는 절실함이 드러나자 가수들의 처절한 연습 과정을 보여주고, 룰렛에 연속으로 떨어지는 가수들이 나오자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사연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윤하가 출연한 것은 흥미롭다. 윤하가 첫 회부터 출연했다면 그것은 불공정한 시합이겠지만, 에는 이미 경쟁을 통해 실력만큼은 인정받은 V.O.S와 슈퍼키드라는 터줏대감이 있다. 또 그룹 카라는 다른 가요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출연했지만, 에서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만약 윤하가 에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또 이미 주목받고 있는 대형 소속사의 인기 그룹이 1위를 차지하지 못하거나, 유명세로 1등은 했지만 처지는 무대를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어느 정도까지 점점 늘어나는 각 팀의 스토리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에도 또 쇼‘비즈니스’의 논리가 개입될 것인지가 관건이 되겠지만, 현재 은 오락 프로그램 출연 없이 ‘실력’으로 신인 가수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비즈니스밖에 남지 않은 연예계에, 솔직한 현실과 진심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것도 꽤나 똑똑한.
●666호 주요기사
▶ 아시아는 넓고 살 것은 많다
▶ 늦장 노동판결, 피가 마른다
▶뜨겁게 숨쉬고 고맙게 먹으며 가볍게 걷는 길
▶‘666호’라고 두려워 말라
▶질문하는 경영자가 성공한다
▶‘김대중 납치사건’풀리지 않는 의혹
▶시골의사 박경철의 주식투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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