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것을 뺏고 싶었고 결국 그 여자를 이해하게 되는, 두 여자의 특별한 ‘우정’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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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극본·정을영 연출)의 지식인 남성 준표(김상중)는 볼품없는 남자다. 고지식하고 툴툴거리고 재미도 없는데다 평균 남자 ‘정도’의 외모와 육체를 가지고 있다. 화영(김희애)의 아름다운 육체 옆에 누운 40대 아저씨의 몸매는 고민이 없다(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내 지수(배종옥)의 지시에 “알았다”고 귀찮게 이야기하지만 집안일 할 생각이 콧구멍에 낀 코대가리만큼도 없다. 쓰레기 버리는 것도 돕지 않고, 아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쫄쫄 굶는다. 10년 넘게 산 여자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새로 살게 된 여자한테도 그런다. 감자 삶아줬더니 잘 안 익었다느니 왕소금이 어떻니 한다.
‘불륜’에 대처하는 자세 또한 너무나도 상식적이어서 실망스럽다. ‘닮고닳은’ 처형(허달삼·김병세)의 조언을 따라 했다가 민망해지자 뾰로통해져서 툴툴거리는 모습은 ‘어이구, 어이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김수현 작가가 창조한 그 많은 멋있는 남자들, 의 전광렬, 의 차인표, 의 이경영 등을 생각해보건대, 준표가 멋있지 않은 건 ‘일부러’인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니 홍준표 의원이 방송사에 전화를 걸어 화를 낼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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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는 이렇다. 그런 그를 두고 두 여자가 싸운다는 것. 두 여자에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뺏는 여자 화영은 바람 피운 남편이 자살을 해버려 졸지에 시댁에서 버림받고 직업도 버리고 한국으로 왔다. 뺏긴 여자인 지수는 떽떽거리고 눈치 없고 농담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유행가만 듣는 아줌마다. 하지만 둘 다 장점이 더 많다. 화영은 미국에서 잘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였고, 자신의 미모 또한 할리우드 최고 배우의 수준으로 가꾸는 센스 있고 매혹적인 여자다. 지수는 “성격이 팔자”로 아픈 친구 점심밥 나르고 시간 내서 봉사 나가고 친정에 틈틈이 곰국 끓여서 갖다주는 ‘천사’다. 사람들한테 “바보 바보” 소리를 듣지만 잘 보면 아이에게 공부도 ‘은근하게’ 강요하는 현명한 여성이다. 왜 두 여자는 이 ‘별루~’인 남자한테 매달릴까.
준표는 맥거핀이다
지수가 ‘결심’하는 이혼도 좀 이상하다. 의 다양한 이혼 케이스를 보더라도, 바람 피우는 놈은 저질 중의 저질이지만 결국 이혼에 이르는 것은 남편이 이상성격자거나 시댁과 갈등이 있거나 다른 요소들이 지배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때가 많더라. 지수는, 형부 허달삼(김병세)의 지론인 ‘바람은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 그래서 바람’을 무시하고, 그걸 참으며 산 언니 은수(하유미)의 설득을 뿌리치고, 아들 경민의 “내가 바라서 낳은 것도 아니니 부모님이 책임지라”는 애원도 물리치고, 이혼이라는 무리수를 둔다. 그러니까 그까짓 불륜으로 이혼해야만 했을까.
어쩌면 준표는 맥거핀(속임수·미끼)이다. 스릴러에서 중요한 듯이 부각시키지만 결국은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되는 속임수다. 준표를 배경으로 두고 남는 두 여자를 전면으로 내세우면 이야기는 이상하게 쉽게 이해된다. 는 화영과 지수의 관계에 대한 드라마다. 제목부터 그렇다. ‘내 남자의 여자’를 호칭하는 사람은 ‘빼앗긴 여자’ 지수이고, ‘내 남자의 여자’가 지칭하는 대상은 ‘빼앗은 여자’ 화영이다. ‘남자’는 그 사이에 ‘낀’ 남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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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의 마지막 장면, 화영이 준표에게 실망하고 밤늦게 찾아간 곳은 지수의 집 앞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지수가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차에서 내리는 화영. 둘이 바라보는 눈빛. 여자들이 이렇게 바라보는데 찌릿찌릿할 줄이야. 리와인드. 둘의 관계를 되짚어보자. 고등학교 시절, 둘은 단짝이었다. 오지랖 넓은 ‘천사표’ 지수는 화영의 안쓰러움을 눈치채고, 화영은 누구도 다가오게 하지 않던 벽을 허물고 지수와 단짝이 되었다. 화영이 미국에서 들어와서 의지한 것은 지수였고 아무런 조건 없이 지수는 화영에게 베풀었다. 지수가 준표의 불륜 관계를 들은 것은 당사자 화영에게서다. 지수는 준표에게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고는 한밤중에 화영을 찾아간다. 그는 화영의 집을 나오면서 이혼을 ‘결심’한다. 그 대화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야.”(지수)
불륜 사실을 털어놓자 ‘호흡곤란’에 빠진 지수를 응급처치한 화영은 이렇게 아는 체한다. “내 주목을 끌기 위해 일어난 심리적 강압 증후군 같다. 쇼라는 건 아니고 무의식의 작용이라는 거야.” 그가 끌어들인 ‘무의식’ 세계로 화영을 해석해보자. 불안한 화영은 지수의 안정된 세계가 부러웠기 때문에 준표를 갖고 싶었다. 지수 옆의 ‘찌질한’ 남자 준표가 멋있어 보였던 것이다. 그 남자를 가지면 자신도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갖고 싶었던 것은 준표가 아니라 지수가 만들어놓은 준표의 세계였다.
서로 안 갖겠다고 싸우는 것 아냐
22회 지수와 마주 앉은 화영은 말한다. “나는 힘들면 너 생각이 나는 걸까. 웃기지. 너는 홍 교수하고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았니.” 둘은 이제 ‘전처 클럽’을 형성하고는 준표의 결점을 가지고 ‘맞아, 맞아’를 하기 시작한다. 의 결론은 살아보니 남자들은 다 그렇다는 것이고, 둘의 우정은 그 많은 고난을 겪고도 여전하다는 것이다(혹은 서로 준표를 안 가지려고 싸우지는 않을까). 화영은 “셋이 살자”는 말도 한다(노희경의 드라마 (1998)에서 배종옥이 유부남(이성재)과 사랑에 빠지자 그 부인 은수(유호정)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사랑은 살짝 뒷손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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