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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관장들 향한 차가운 시선

등록 2007-06-01 00:00 수정 2020-05-03 04:24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잇따르는 자질 시비와 유임 논란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지금같이 문화재 기관장의 권위와 체통이 땅에 떨어진 적은 없었다고 본다. 문화재청장의 한마디가 일반인들의 비웃음 거리가 되고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관내 학예사들에게 기피 인물로 ‘왕따’를 당하는 형편이 아닌가.”

현직 문화재위원인 학계의 한 중견 학자가 개탄하듯 털어놓은 말이다. 국내 문화유산 정책, 보존 관리를 총괄하는 양대 문화유산 기관의 사령탑이 잇따른 자질 시비와 유임 논란에 ‘볼품없이’ 기우뚱거리고 있다. 서울대 미학과 67학번 동기인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바로 그 당사자들이다.

취사행위 사과않고, 연임 의사는 노골적

이달로 취임 3년을 맞는 유홍준 청장은 최근 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5월15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효종대왕릉(영릉·사적 195호) 구내의 제사 준비시설인 재실 앞에서 국회의원 등 지역 유지 30여명과 오찬을 벌인 것이 말썽이 됐다. 사적 경내 반입이 금지된 화기류인 LP가스통, 숯불, 전자레인지 등으로 재실에서 오찬 음식을 만들어 먹은 사실이 방송의 영상고발로 들통이 난 것이다. 이날 인근 세종대왕릉에서 열린 세종 탄신 숭모제전에 참석한 뒤 다른 왕릉에서 탈법 식사판을 벌인 셈이다. 그는 “제삿밥 먹은 것인데, 일부 준비 과정의 문제점을 놓고 언론이 고기 구워먹고 논 것처럼 공격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사적에 화기나 음식을 들여올 수 없다는 문화재청 훈령을 어긴 데 대한 공식 사과는 없었다. 유 청장은 2004년 국제검사협회의 경복궁 경회루 만찬, 2005년 세계신문협회의 창경궁 오찬 때도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 바 있어 시선은 더욱 곱지않다. 주요 일간지들이 그의 특권적 행태를 비난하는 사설과 칼럼을 잇따라 게재했고, 문화연대는 사퇴만이 해결책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문화연대 쪽은 “잦은 말과 행동의 실수가 도를 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인만큼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해 사퇴운동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유 청장은 악화된 여론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한나라당 등 정치권과의 인연을 과시하면서 차기 정권에서도 일하겠다는 의욕을 자주 내보이고 있다는 게 주위 사람들의 전언이다. 그와 종종 만난다는 한 학계 인사는 “최근 유 청장이 사석에서 한나라당 대선 주자인 이명박씨의 측근 이재오 의원을 거명하면서 그가 ‘노무현 정권의 공직자 중 차기 정권에서 일할 사람은 유홍준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는 등의 인연을 거론하더라”고 전했다. 실제로 유 청장은 과의 통화에서 “장관은 생각이 없었다. 문화재 업무는 연속성이 중요하다. 정권마다 판단이 다르겠으나 해야 할 일도 남아 있어, 계속할 수도 있다고 본다”며 연임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의 연임 움직임이 소문으로 파다해지자 청와대도 경위 파악에 나섰다는 후문이 들린다.

학예사들과 교감하지 못하는 김홍남 관장

2004년 취임 이래 그의 말실수와 튀는 행동은 숱한 파문을 낳았다. 광화문 현판 교체 파문, 낙산사 화재 실언, 낙산사 새 동종 이름 새기기 논란, 국보 1호 교체 방침 실언, 매장문화재 조사지침 갈등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실언을 했다가 거둬들인 것도 여러 번이나, 광화문 현판 교체나 국보 1호 교체 발언처럼 공론화한 발언들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자질론 시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여주 효종 대왕릉 재실 오찬 사건은 자질 시비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유 청장과 친분이 있는 한 미술사학자는 “얼마 전 경기도의 한 능묘를 답사갔는데, 음식물과 화기를 들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답사객들이 한결같이 청장의 여주 오찬을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터뜨려 얼굴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표면화한 것은 아니지만, 취임 2년째를 향해 달리는 김홍남 관장의 경우는 내부 반발 기류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조직 개혁 과정에서 인사 후유증을 둘러싸고 학예사들과의 갈등과 소통 부재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우려다. 지난 1월 대규모 인사 뒤 아시아부 신설 등을 추진하면서 지방으로 지원근무 나간 학예사를 석 달여 만에 무리하게 중앙박물관 아시아부로 발령을 내 반발을 샀고, 뒤이어 현 업무와 괴리된 인사승진 기준안을 내놓았다가 노조의 반대로 접는 등 뒤탈이 잇따랐다. 학예사들은 그가 ‘손만 비비는’ 일부 중간 간부들의 의견만 들으며 지방 박물관에 운영 자율권을 주지 않고, 지방관의 세부 운영계획까지 관여하는 관료적 행태를 보였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연초 대규모 개혁 인사를 하면서 내부 직제 개편과 아시아부 신설, 지방 박물관 활성화를 목표로 내세웠으나 인사 등을 둘러싼 박물관 공무원 노조와의 마찰, 독선적인 지휘 스타일 등으로 학예사들과는 교감이 거의 단절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불신의 도화선은 올 초 30여 년간 보관해온 경주 석가탑 사리기 발굴 유물을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 반환하는 문제로 빚어진 논란에서 비롯됐다. 박물관 쪽은 지난해까지 반환 준비작업에 응하다 지난 3월 갑자기 유물의 보존 상태나 연구 상황으로 미뤄 반환은 물론 전시 대여도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조계종에 통보했다. 이에 조계종이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박물관을 압박하자 결국 김 관장은 사태 해결의 열쇠를 문화재청에 떠넘기는 자충수를 두었다. 지난해 11월 문화재청이 현 소장자인 박물관 쪽에 유물 반환 의사를 묻는 공문을 보냈으나, 답변을 미루다가 지난 3월22일에야 유물 이관 여부를 문화재청이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 답변을 보낸 것이다. 그 결과 유물 대부분을 조계종 쪽에 대여 전시하라는 문화재위원회 결정이 내려지면서, 박물관은 이미지를 구겼다. 김 관장은 이 과정에서 총무원장에게 면담을 거절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유물 대여를 전제로 조계종과의 소유권 협상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내부 여론을 무시하다 빚어진 결과라는 게 박물관 내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방박물관의 한 학예사는 “지도교수가 대학원생 심사하듯 전시 디자인 세부는 물론, 홍보계획안까지 그의 낙점을 받고있다”며 “석가탑 논란에서 보이듯 유물 유적 현황은 깊이 알지 못하면서도 업무는 꼼꼼히 간섭하려는 운영철학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김 관장은 “자리가 새로 생기면서 학예사들의 개별적인 욕망이 불거져나와 생긴 성장통일 뿐 개혁 일정을 순조롭게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물관 안팎에서는 임기 없는 정무직인 관장의 행정력이 바닥을 드러낸 이상, 이번 정권 이후 곧장 교체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상당수다. 김 관장은 “이 정권 아래서 5~6개월 남았는데, 그 기간만으로는 생각해온 내부 개혁을 이뤄낼 수 없다. 최소 3년 이상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 동네에서는 그가 유 청장과 다른 ‘라인’으로 대선 주자 진영과 친분을 유지한다는 설이 나돈다.

김 관장·유 청장 둘 사이도 불편해

김 관장과 유 청장은 취임 이래 계속 불편한 관계다. 2005년 합의아래 학예사 한시 교환근무제를 시행했으나, 박물관 파견 학예사들이 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남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 관장은 발끈해 학예사들을 거의 모두 복귀시켰다. 김 관장은 지금도 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원화한 발굴 유물 귀속권의 국립박물관 일원화, 청 산하 고궁박물관 흡수 통합도 요구해 유 청장과 각을 세우고 있다. “내실 있는 보존 관리보다 덩치 키우기에만 치중한다”는 김 관장의 문화재청 비판에 대해, 유 청장은 “석가탑 사리기 반환 문제조차 해결못하는 일처리 방식이 참 답답하다”고 박물관 쪽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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