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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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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영자의 ‘사생활 전성시대’

등록 2007-05-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애인 공개부터 뒷담화까지, ‘사생활’을 ‘신분 상승’의 무기로 쓰는 연예인들

▣ 강명석 기획위원

이영자는 대담했다. 그 누구도 이영자처럼 문화방송 의 ‘무릎 팍 도사’에서 ‘공중파 복귀’를 소원으로 들고 나오지 않았고, 누구도 문화방송 의 ‘경제야 놀자’에서 친구인 방송인 이소라에게서 가져온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소라에게 5천만원 빌려주고 감사 표시로 받은 것”이라며 거짓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영자는 ‘무릎 팍 도사’에서 공중파 복귀라는 자신의 사적인 고민을 공적인 이슈로 만들었고, 절친한 후배 홍진경과 함께 출연한 한국방송 와 이소라를 끌어들인 ‘경제야 놀자’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웃기기 위한 소재로 사용했다. 그 결과로 그는 단 세 번의 방송 만에 문화방송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MC)로 복귀했고, 동시에 연예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제 연예인의 사생활 공개는 단지 토크쇼에서 가볍게 말하고 지나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굳이 어떤 대형 사고나 스캔들이 아니더라도, 연예인의 사생활 공개는 이제 ‘사생활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상품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사생활 포장+아는 라인 활용’이 능력

탤런트 김빈우는 SBS 에서 자신이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가 소속사가 이를 급히 부정하고, 김빈우가 다시 번복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켰으며, ‘무릎 팍 도사’에 출연한 연예인의 과거 고백은 방송이 끝난 직후부터 모든 매체의 기삿거리가 된다. 그래서 이제는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면 김제동처럼 수많은 ‘어록’을 만들어낼 만큼의 입담이나, ‘진행 중독’에 걸렸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능수능란한 진행을 보여주는 유재석 같은 진행 솜씨가 없어도 된다. SBS 에서는 연예인들이 게임을 하며 서로의 사생활과 방송활동에 얽힌 뒷얘기를 한다. 자신의 사생활만 적절하게 포장할 줄 알고, 아는 ‘라인’만 많아도 오락 프로그램 출연이 가능하고, 거기서의 말 한마디가 무명 연예인을 순식간에 전 국민의 ‘완소’(완전 소중의 준말) 연예인이나 ‘비호감’ 연예인으로 만들 수 있다.

이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이 또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한국만의 독특한 매체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불과 4천만의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공중파 텔레비전(TV)은 물론 가입자가 천만 가구에 이른다는 케이블TV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그리고 인터넷 방송까지 콘텐츠를 생산하는 매체는 넘쳐나고, 포털 사이트에 뉴스를 서비스하는 인터넷 매체 역시 수없이 많다. 한쪽에서는 어떻게든 부각되길 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삿거리가 필요하다. 이들에게 연예인의 사생활 공개는 오락 프로그램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좋은 홍보 수단이며, 동시에 기삿거리이다. 연예인이 자신의 사생활을 언급하는 순간 인터넷 매체에서는 이를 기사화하고, 그중 화제가 될 만한 발언들은 곧바로 ‘온 국민’이 이용하는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리얼’해 재밌던 사생활은 ‘꾸며진’것

토크쇼에서 가볍게 지나갈 수 있었던 한마디도 그 발언만 굵은 헤드라인으로 표시되며 ‘전 국민적인 논란’을 일으킨다. 그룹 클릭비의 멤버 김상혁이 음주운전 사고 이후 방송에 복귀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저지른 죄가 무겁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술은 마셨지만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 기사화되면서 두고두고 네티즌들의 반감을 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예인의 사생활은 이제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를 넘어 사생활 자체가 그 연예인의 가치를 규정하는 데까지 이른다. 톱스타 현빈과 교제하다가 최근 이별한 것으로 알려진 탤런트 황지현은 한국방송 의 MC와 SBS 의 조연으로 출연한 자신의 작품 활동보다 언론에 의해 ‘현빈의 연인’으로 불리며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젊은 남녀에게 연애는 연애일 뿐이겠지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예인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신분 상승’까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된 것이다. 탤런트 우희진은 최근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오랫동안 사귄 연인과의 결혼계획을 말하자 그것이 순식간에 기사화되면서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또다시 기삿거리가 되면서 순식간에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새로 음반을 내는 가수나 새 드라마에 들어가는 가수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예인이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글이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고, 그것이 연예인의 이미지를 바꿔놨다면 그것은 연예인의 사적인 활동일까 아니면 공적인 연예 활동일까. 모두 똑같은 TV를 보지는 않지만 모두 똑같이 인터넷을 확인하고, 모두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해 한마디씩 할 수 있는 한국의 독특한 매체 환경이 연예인의 사생활과 공적인 활동의 구분마저 없앴다. 물론 연예인의 사생활 역시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한 요소가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연예인의 사생활이 그대로 공적인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금, 한국의 이상한 상황은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근본적으로 왜곡한다. 아무리 스타가 거리를 걸으면 수많은 파파라치들이 붙는 할리우드라 할지라도 어지간한 사건이 아니면 사생활은 사생활일 뿐이고, 공적인 작품 활동은 작품 활동일 뿐이다. 그러나 단 한마디의 발언조차 어지간한 작품 활동 이상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한국에서 사생활은 갈수록 철저한 관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답답한 이미지의 연예인이라면 토크쇼에서 “술을 잘 마신다”며 털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네티즌들을 ‘낚는’ 발언을 누군가 해야 한다.

장동건이나 이영애 같은 톱스타들의 사생활이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사생활 공개가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톱스타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점점 대중에게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아직 그렇지 않은 연예인들은 사생활을 효과적으로 터뜨리는 방식을 연구하는 현실. 원래는 ‘리얼’해서 재미있던 사생활은 점점 더 꾸며진 것들이 되고, 연예인들은 톱스타건 이제 막 버라이어티 쇼에 얼굴을 내미는 신인이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예전의 복귀를 기억하는가

이영자의 ‘거짓말 방송’은 연예인의 사생활과 공적인 활동의 경계 자체가 무너지는 지금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낳은 비극이다. 물론, 이영자는 결국 염원하던 공중파 복귀를 실현했으니 그걸로 해피 엔딩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잊고 있는 사실. 이영자는 이미 몇 해 전 SBS 로 공중파 복귀를 했고,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하고 프로그램은 종영했다. 사생활을 재밌게 꾸미는 입담도 프로그램 자체의 재미가 없으면 그 효과가 오래가기 힘들다. 이영자가 다음에는 그의 친구들 이야기 대신 좋은 진행 솜씨를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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