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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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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서 연극을 보다

등록 2007-02-09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학로 서점 ‘이음아트’의 연극 공연 …옛 서점을 향한 그리움이 문화적 소통을 꿈꾸는 오늘의 서점과 만나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아직도 ‘오늘의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전에 삶의 안과 밖을 아우르던 사회과학 서점 ‘오늘의 책’은 쓰러졌다. 하지만 진열대 사이로 흐르던 찰기 있는 기억마저 삼키지는 않았다. 책이 있던 추억의 공간이 연극 에서 오늘의 공간으로 돌아왔을 때 감상적 자의식 이상의 뭔가를 느낄 수 있었으리라. 어디에서 공수했는지 관객으로선 확인할 수 없는 ‘헌책’ 5천여 권에 순수한 열정을 켜켜이 쌓았기 때문이리라. ‘오늘의 책’을 ‘현상수배’하는 듯한 연극은 해가 바뀌어도 목격자가 되어줄 관객들을 부르고 있다. 책과 삶이 떨어져 있지 않던 시대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연극과 책의 만남을 관객에게 선보인 연극 이 올해 매월 셋쨋주 토요일에 서점에서 공연을 한다. 이미 지난해 10월 재공연을 앞두고 시연회를 했던 대학로의 서점 ‘이음아트’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이다. 연극 의 연출가이자 제작사 드림플레이 대표인 김재엽씨는 “연극의 무대가 살아 있는 공간일 때 배우들의 집중력이 훨씬 높아져요”라고 말한다. “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배우와 관객이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잖아요. 그런데 실제 서점에서 공연할 때는 서로를 잇는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서로에게 다가서는 공연을 할 수 있어요.”

대학로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만든 서점

어찌 보면 어색한 어울림이 될 것 같은 연극과 책. 이들이 만나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한상준씨가 2005년 10월1일 서점공간 ‘이음아트’의 문을 열 때까지 대학로에 문화를 나누는 서점은 없었다. 오로지 대학 교재만 취급하는 서적 매장이 허름하게 있었을 뿐이다. 그것이 한씨를 ‘자극’했다. ‘젊음과 낭만이 함께하는 문화공간의 중심지’라는 슬로건이 너무나 얄팍해 보였던 것이다. 살던 동네를 누비고 홍익대 앞을 거닐수록 ‘대학로여야 한다’는 믿음이 깊어만 갔다. 그러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부근의 온갖 주점과 식당 틈에서 겨우 출입구만 살짝 드러낸 지하 공간을 발견했다.

“대학로를 찾는 사람들이 유흥문화만 즐기려 하지는 않겠지요. 진정한 문화의 소통을 기대하는 부류도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을 중심으로 조금은 색다른 대학로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런 한씨의 생각이 ‘이음아트’라는 간판에 오롯이 새겨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문화 사랑방’이라는 말로. 사랑방답게 널찍한 테이블을 놓고 곳곳에 40여 개의 접이식 의자를 비치했다. 커피나 차도 타서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누군가 서점에 머무르다 가는 것만으로도 대학로의 색깔이 조금씩 바뀔 것이라 기대하면서. 무모해 보이는 굳센 신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서 입소문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오래전부터 문화 사랑방을 꿈꾸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서점을 튼실히 가꾸려는 움직임이 싹텄다. 책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갖자는 제안에 2005년 12월28일 시인 조병준씨가 주저 없이 나섰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작가 신현림, 건축가 이건섭, 소설가 강영숙씨 등이 잇따라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특별한 형식이 있을 리 없었다. 그저 가볍게 책장을 넘기듯 작가를 만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편안한 만남에 매료된 독자들이 이제는 만나고 싶은 작가를 추천하기도 한다.

“이음아트에서 공연을 하면 어떨까요”

이즈음 연극 의 대본을 쓰고 공연을 준비하던 김씨도 이음아트에 드나들었다. 오래전 문화적 울림의 역사를 이어가려고 했던 서점 ‘오늘의 책’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씨에게 이음아트의 신선한 도전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당시 ‘오늘의 책’도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서 삶의 마당을 일구려 했다. 하지만 자본의 공세에 마당을 내준 뒤 후미진 자리마저 지킬 수 없는 아픔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신촌에서 서점을 지키지 못했던 무기력함을 떨치고 싶었어요. 대학로에서 지내며 보고 싶은 책을 살 수 없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러다 지난해 4월 연극 의 초연을 끝내고 뒤풀이를 하면서 김씨가 불쑥 한마디 꺼냈다. “이음아트에서 공연을 하면 어떨까요?” 언제라도 무대로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별도의 서적 진열대를 마련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중앙에 있는 진열대를 한쪽으로 옮기기만 하면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음반까지 판매하기에 공연의 음향시설로 손색이 없었고, 사실적 무대라서 형광등 불빛만으로도 조명을 해결할 수 있었다. 연극 에 맞춤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초연이 끝난 뒤 다른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 사정으로 ‘서점 연극’은 10월 재공연 때까지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성황리에 연극 의 세 차례에 걸친 시연회가 이음아트에서 열렸다. 40개의 접이식 의자와 긴 의자도 놓았지만 자리가 모자라 선 채로 관람하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이미 시연회 사실을 블로그(blog.naver.com/eumart)에서 확인한 회원들과 책을 사려고 서점에 들렀다가 자리를 뜨지 않은 이들이었다. 이때 시연회를 계기로 연극 은 이음아트에서 이뤄지는 정기 공연을 예약받게 됐다.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시민예술지원 사업에 ‘책을 찾는 시민들을 위한 무료 공연’을 제안해 뽑힌 것이다. 연극 으로서도 서점 공연으로 완성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촛불 아래 ‘희곡 낭독 공연’도 계획

이렇게 연극 공연장으로 거듭나는 이음아트의 변신은 시작일 뿐이다. 머지않아 형광등을 끄고 촛불을 켠 상태에서 ‘희곡 낭독 공연’을 할 예정이다. 2001년 ‘혜화동 1번지’에서 초연해 ‘가족과 사랑을 아름답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기상 등을 휩쓴 연극 의 배우들이 희곡을 낭독하는 자리다. 이 작품의 희곡을 쓰고 연출을 맡았던 최창근씨는 “유럽에서는 일반화된 양식인데 국내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촛불 아래에서 이뤄지는 배우들의 작은 몸짓으로 말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도록 하고 싶습니다. 공연에 속하지 않는 희곡의 문학성을 재발견할 것으로 기대해요”라고 말한다.

지금 대학로에서 문화가 소통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이음아트. 그곳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뭉칫돈을 벌려는 것은 욕심”이라 여기는 서점 주인과 “서점의 의미를 문화 소통의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서점 지킴이들이 있다. 이들은 서점이 문화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생존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그 실험은 독자의 참여로 완성될 것이다. 이달 말에 이음아트에 가면 사진가 임종진(전 기자)씨가 찍은 가수 김광석씨의 생전 사진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연극 은 2월에는 예정일이 설 연휴에 속해 있어 한 주 앞당긴 2월10일(토) 오후 4시와 7시에 공연한다. 문의 02-745-9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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