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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않고 돌아왔다, 달려라 달려~

등록 2007-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30여 년만에 디지털로 복원돼 극장 개봉 앞둔 …뜻 밖의 반미주의와 외모 콤플렉스의 발견에 새삼스러운 재미 느껴져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30년 동안 죽지도 않고, 녹슬지도 않고, 다시 살아온 태권브이의 부활을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철 (주)로보트태권브이 대표의 말처럼 1976년 제작된 (이하 태권V) 1탄이 31여 년 만에 디지털로 복원돼 돌아왔다. 1981년 필름 원본이 분실돼 ‘죽었다’고 알려졌던 1탄은 2003년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오래된 복사본이 우연히 발견됐다. 2년 동안 5천여 명이 를 디지털로 되살렸고, 음향도 손질했다. 그리고 1월18일 전국 150여 극장에서 개봉한다.

아니, 저때도 저랬나

의 정서는 생각보다 현재형에 가깝다. 는 태권V를 조종하는 훈이가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훈이의 첫 번째 상대는 일본 선수. ‘당연히’ 야비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여기까지는 고전적인 ‘극일’ 이데올로기의 재현으로,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두 번째 라이벌이 등장하면, ‘저때도 저랬나’ 조금은 놀란다. 훈이와 결승에서 만난 미국 선수는 ‘예상보다’ 훨씬 야비하게 묘사된다. 21세기 미국의 오노 선수를 조롱하면서 한국 네티즌들이 그렸던 캐릭터가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야비하다. 이렇게 76년에 개봉해 서울 관객 18만 명의 당시로선 대박을 터뜨렸던 를 보면서 오늘날의 민족주의 정서가 그토록 오래된 코드였다는 근거를 새삼스레 발견한다. 영화의 중반에 이르면 오래된 반공주의 코드도 나온다.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의 상징은 ‘붉은 별’이고, 그들의 이름은 ‘붉은 제국’이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공산주의든, 한민족을 위협하는 외부에 대한 거부는 오늘의 정서와 상당히 닮았다. 한편으로 ‘우리의’ 태권V가 지키는 세계는 한반도가 아니라 인류라는 점도 (만화영화로서 할 법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새삼스럽다면 새삼스럽다.

에서는 또 다른 오래된 현재도 보인다. 세계과학자대회에서 카프 박사가 논문을 발표하다 넘어지자 사람들은 “몸통보다 머리가 크구만”이라고 조롱한다. 이렇게 카프 박사가 훈이의 아버지인 김 박사와 함께 로봇을 연구하다 악당이 된 이유는 ‘외모 콤플렉스’ 탓이라고 설명된다. 의 제니 이전에도 이토록 외모 차별의 역사는 장구한 것이었다. 반면에 훈이, 영희의 큰 눈과 늘씬한 다리는 백인의 외모를 닮았다(심지어 김 박사조차도 외모가 상당히 백인스럽다).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태권V도 서구적 미남처럼 보인다. 조막만 한 얼굴에 늘씬한 다리, 근육질의 몸통, 지금 보아도 멋있는 균형을 자랑한다. 거꾸로 카프 박사의 외모는 상당히 동양인스럽다. 개발 시대에 백인에 견주어 한국인이 느꼈던 외모 콤플렉스가 카프 박사에게 투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키운 이유가 원한도, 배후의 조종도 아닌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었다는 설정은 역시나 새삼 새롭다.

착한 편 주변의 비둘기에 웃음

카프 박사가 만든 인조인간 메리는 에서 유일하게 양면적인 캐릭터다. 악당 말콤이 태권V의 비밀을 훔쳐내기 위해 보낸 스파이 메리는 훈이에게 ‘감화받아’ 인간을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동경은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메리가 스파이로 밝혀지는 과정은 내러티브의 허술함을 노출한다. 신분이 의심스러운 메리가 태권V 설계도가 있는 연구실로 접근하다 안전장치에 감전돼 파손되지만, 김 박사는 메리가 인조인간임을 알고도 메리를 스파이로 의심하지 않는다. 때때로 애니메이션도 설명 수준으로 떨어진다. 예컨대 김 박사와 카프 박사가 대립하는 장면에서 ‘착한 편’인 김 박사 주변에는 비둘기가 원형으로 돌아다니면서 ‘평화의 편’임을 설명한다.

너무나 고전적이어서 웃게 되는 대사도 나온다. 의 구성도 태권V의 균형미에 못 미친다. 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나름대로 공을 들이지만, 정작 전투신은 생각보다 짧다. 그래도 깡통로봇 철이는 지금 보아도 귀엽고,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깡통로봇이 엉뚱한 사고를 치고 어딘가로 도망갈 때, 부리나케 도망갔다는 흔적으로 남는 앙증맞은 동그라미는 유쾌하게 추억을 자극한다. 구성으로 보면, 는 김 박사와 훈이, 부자의 영웅담이다. 아버지 김 박사는 태권V를 완성하지만 암살되고, 아버지의 유언으로 태권V를 조종해 평화를 지킬 임무가 훈이에게 주어진다. 결국 훈이는 자신의 임무를 완성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라고 되뇐다. 요컨대 76년산 를 보면서 극적인 긴장감을 기대하면 졸리지만, 긴장을 유지하고 스크린을 응시하면 뜻밖의 재미도 발견된다.

는 주제가로 기억된다. 음악가 최창권이 작곡하고, 아들 최호섭이 불렀던 주제가는 아련한 추억을 자극할 뿐 아니라 여전히 흥겹다(최호섭은 나중에 ‘세월이 가면’을 히트시킨 가수다). 주제가는 그림은 세월에 퇴색되고 이야기도 촌스러워지지만, 음악은 쉽사리 멀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한편, 개봉에 앞서 붐업이 있었다. 2006년 3월 산업자원부는 30살 생일을 맞은 태권V에게 대한민국 제1호 로봇 등록증을 수여했다. 또 태권V는 로봇으로는 세계에서 최초로 문근영, 김태희, 김주혁 등이 소속된 대형 연예기획사 (주)나무액터스와 매니지먼트 전속계약도 맺었다. 앞으로 영화 출연을 넘어 온라인 게임, 뮤지컬, 방송 출연, 광고모델 등 전방위 연예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공동 저작권자인 영화사 (주)신씨네는 다각적인 사업을 펼치기 위해 아예 2006년 5월 태권V 캐릭터 회사인 (주)로보트태권브이를 설립했다. 신철 대표는 “2~3년마다 시리즈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1990년까지 모두 7편이 제작됐던 시리즈가 또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복원판 상영은 출동의 시작일 뿐이다. 어른들의 추억을 되살리고, 어린이들의 동심을 자극한다는 양날을 세운 는 또다시 아이들에게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라고 노래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말콤 일당은 억울한 루저의 모임?

참, 로봇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말콤 일당은 일종의 루저(Looser·실패자)들의 모임처럼 보인다. 왕따를 당한 박사에 각종 무술대회 결승에서 패배한 선수들로 구성된 그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면, 억울한 루저들의 모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뒤집으면 루저(Loser·패배자)들의 반란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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