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씨’식 로맨스의 엽기발랄한 부활, 영화 …꿈 같은 줄거리에 웃다가 현실적인 디테일에 콧등이 시큰해지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미자씨(예지원)가 돌아왔다. 여전한 서른둘의 ‘올드미스’로 엽기발랄 ‘다이어리’를 쓰는 미자씨가 돌아왔다. 지난해 11월까지 방송됐던 한국방송 시트콤 의 미자씨가 영화 로 돌아왔다. 미자씨의 다이어리는 여전히 연하의 꽃미남 지 PD(지현우)와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고, 미자씨의 호적도 바뀌지 않았다. 아버지, 외삼촌, 세 분의 할머니까지 건재하다(다만 둘째할머니 역을 했던 한영숙씨가 고인이 되면서 서승현씨로 바뀌었다). 할머니들도 미자 곁에서 진정한 ‘올드미스(혹은 미세스) 다이어리’를 쓴다.
특히 젊어서도 “미련 곰탱이” 소리를 들었던 둘째 승현 할머니가 늦바람이 났다. 극장판 는 미자와 승현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오가면서 웃음을 터뜨리다가 콧등도 시큰하게 만든다. 의 감상을 노래로 바꿔보면,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미자씨~”. 는 대한민국 남녀노소, 특히 20~30대 (비혼) 여성을 위한 ‘리얼리스틱, 판타스틱, 코미디’ 영화다.
미자, 서른둘의 사춘기
미자는 아직도 서른둘의 사춘기다. 일도, 연애도 풀리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인생을 더욱 꼬이게 만드는 남자도 있게 마련이다. 성우 미자가 모처럼 배역을 얻어서 방송국에 갔더니, 만나는 ‘인간’이란 예전에 하필이면 미자가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던 바람둥이 박 PD(조연우)다. 게다가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는 성우 일을 전전하다 모처럼 맡은 고정 배역이 고작 귀신. 그나마 귀신 목소리를 내야 할 미자는 화면에 나오는 귀신을 보고서 놀라 자빠진다. 심란한 인생을 ‘한큐’에 엎을 서광이 비치니, 연하의 꽃미남 지 PD(지현우)가 미자의 마음에 들어온다. 서른둘에도 아니 서른둘이라서 더욱 상상력이 풍부한 미자는 연하의 꽃미남 지 PD의 눈길에, 한마디 말에 상상의 나래를 편다. 미자는 꿈 깨라는 친구의 구박에 “넌 행간의 의미를 못 읽는다”고 반박하지만 사실 미자가 행간의 의미를 너무나 확대해석해 행간이 찢어질 지경이라는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자씨, 꿋꿋이 씩씩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미자의 좌충우돌에서 대리만족의 쾌감뿐 아니라 리얼리티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미자를 보면서 웃다가 들뜬다. 속으로 박경림처럼 ‘착각의 늪’에 빠진다. 오홋 냉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사랑에 빠져~ 빠져~ 이젠 빠져~ 버려!”
“왜 다들 나에게 함부로 대하냐”
이번에는 할머니들의 차례다. 극장판 는 시트콤 처럼 할머니들의 ‘봄날’을 놓치지 않는다. 첫째 영옥(김영옥) 할머니는 ‘쓰레빠’ 하나로 동네를 평정하고, 둘째 승현(서승현) 할머니는 평생을 “미련 곰탱이”로 살다가 늦바람이 났으며, 셋째 혜옥(김혜옥) 할머니는 고령의 진정한 ‘올드미스’로 여전히 철이 없다. 를 “억눌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김석윤 감독은 할머니 트리오 중에서 연애에 관한 한 가장 억눌린 사람인 승현 할머니에게 로맨스를 선사한다.
승현 할머니는 어느 날 빨래를 널다가 색깔 있는 빤스를 입기로 결심하고, “나도 연애나 한번 해보고 죽어야겠수”라고 선언한다. 골격이 장대한 표구상 노인을 ‘꼬시는’ 승현 할머니를 다른 할머니들이 지원하면서 영화의 또 다른 줄기가 나온다. 승현 할머니의 애절한 로맨스만큼 영옥 할머니의 깜찍한 언행은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 영옥 할머니의 명대사를 읊어보면, 동생에게는 “연하가 대세야 이년아”, 저승사자에게는 “야이, 십장생아!”, 손녀 미자에게는 “여자 나이 서른둘이면 곱게 미쳐라”. 이렇게 는 할머니들의 캐릭터에 젊은이들의 마음을 더해서 노인들도 감정이 풍부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는 미자와 할머니 두 개의 이야기로 가다가, 승현 할머니의 로맨스가 잘 풀리면서 미자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이 부풀 대로 부풀었던 미자는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지 PD의 집에 확성기를 들고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한다. 미자가 확성기에 대고 “왜 다들 나에게 함부로 대하냐”고 외치며 울먹일 때도 슬프지만, 고백에 앞서 사람에 치이고 치인 미자가 지 PD를 보면서 “이제 이 남자에게 올인한다”고 독백할 때, 웃어야 하는데 눈물이 나온다. 그렇게 의 줄거리는 꿈같지만, 디테일에는 현실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자의 캐릭터에 ‘올인’하고, 미자를 응원하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에서 뜻밖에 반짝였던 예지원의 연기는 미자를 통해 절정에 이른다. 어쩌면 는 슬랩스틱 코미디에도 현실감을 불어넣는 예지원의 기묘한 재능의 결정판이다.
물론 의 한계도 있다. 미자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뒤섞이지 못한다. 중년남성 백수 캐릭터인 사돈총각 우현(우현)이 은행강도로 오해받는 이야기는 충분한 공감대를 끌어내기 어렵다. “세대가 다른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억눌린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김석윤 감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우현의 이야기는 영화에 녹아들지 못하고 서걱인다. 하지만 만화적 상상력을 적절히 살리는 상상씬, 능수능란한 화면 전환은 를 단순한 시트콤이 아닌 볼 만한 영화로 만든다. 영화로 옮기면서 불가피하게 미자의 친구들인 윤아와 지영의 비중은 줄었고, 미자의 아버지 최부록(임현식)의 캐릭터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를 보면서 떠오른 엉뚱한 한마디, “건강한 상상은 건강한 정신을 만든다는 거~”. 극장을 나서면 차가운 바람이 불어도, 어쨌든 를 보는 영화관 안에서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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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방송 시트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일본 등에서는 인기 드라마 혹은 시트콤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최초의 시도인 셈이다. 그래서 의 흥행은 드라마의 영화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의 공동제작사인 청년필름의 김광수 대표는 “마니아층이 있으니까 상당한 관객이 모일 수 있고, 열혈팬들이 홍보에도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어서 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실제 시트콤 의 팬클럽인 ‘올미다 사랑방’(agit.miclub.com/oldmissdiary)의 회원들은 극장판 의 홍보영상을 퍼나르며 ‘알바생’보다 더욱 적극적인 자원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김 대표는 “드라마의 영화화를 위해서는 시청률만큼 마니아층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극장에 오는 적극적인 행동을 할 만한 팬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 콘텐츠의 영화화에 대한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김 대표는 “과연 공짜로 (텔레비전에서) 수백 번 본 것을 돈 내고 영화로 보러 오겠느냐는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의 흥행 여부는 더욱 주목된다.
극장판 에는 시트콤의 배우뿐 아니라 감독, 작가까지 그대로 참여했다. 한국방송 김석윤 PD는 ‘파견직’ 감독으로 영화를 찍었다. 김석윤 감독은 “일상적인 소재의 시트콤이라 영화로 만들기에는 약점이 많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머뭇거리던 그를 설득한 것은 영화사 청년필름 사람들이었다. “시트콤 캐릭터의 핵심을 살리면서 영화로 풀어보자”는 영화사의 제안에 감독도 결국 넘어갔다. 영화를 마친 그는 “방송 콘텐츠의 장단점을 분석해 영화 쪽 타깃에 소구할 부분을 찾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화를 마치고 다시 방송국으로 돌아간 그는 현재 의 연출을 맡고 있다. 그는 “전파를 타면 사라져버리는 방송의 즉시성이 허탈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는 여전히 PD가 자신의 천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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