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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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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방문자에 문을 열다

등록 2006-11-18 00:00 수정 2020-05-03 04:24

냉소적인 386 지식인과 소수종교 전도청년의 만남 그린 영화 …각자를 가두고 내쫓은 세상 앞에 닫혀있던 문을 열고 서로를 구원하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그는 그에게 “형”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는 그를 “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그를 “동생”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계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서로를 “형제”로 여기는 셈이다. 신동일 감독의 는 믿음이 다른 그들이 서로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주는 영화다.

‘믿음의 법’과 마주한 ‘세상의 법’

한없이 착해 보이는 청년과 한없이 짜증만 내는 아저씨가 만난다. 대학원생 계상(강지환)은 “진리의 말씀을 전하러” 다니는 전도 청년이다. 호준(김재록)은 교수가 될 희망은 보이지 않는데 이혼까지 당한 386세대 시간강사다.

그들의 첫 만남은 호준이 계상을 내쫓는 것으로 시작된다. 호준은 세상의 법에 따라 계상을 내치지만, 계상은 믿음의 법에 따라 방문을 멈추지 않는다. 마침 혼자 사는 호준은 샤워를 하다가 문고리가 고장나 욕실에 갇힌다. 호준이 추위와 짜증에 지쳐서 숨이 막힐 순간에 계상은 또다시 호준의 초인종을 누른다. 이상한 기색을 감지한 계상은 집으로 들어가 바닥에 쓰러진 호준을 구한다. 그렇게 우연한 방문자는 외톨이 아저씨를 구한다. 의심을 찬양하다 의심에 갇혀버린 아저씨는 목숨을 구해준 청년에게 “근데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니?”라고 ‘까칠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도 청년은 웃음으로 대답한다. 겉으로는 ‘까칠하게’ 대하지만, 속으로는 고마움을 느끼는 아저씨가 말한다. “난 널 내쫓았는데, 넌 날 살려줬네.” 아저씨의 한마디는 청년과 같은 이들을 세상에서 내쫓는 사회에 대한 은유로 들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의 세계에 방문한다. 계상은 세상에 냉소하다 자신의 내면에 갇힌 호준을, 호준은 세상의 편견에 갇힌 계상을, 방문한다. 이렇게 는 한국 영화에서 처음으로 냉소적(혹은 비판적) 지식인과 여호와의 증인을 마주 세운다(영화에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통과의례가 시작된다. 아저씨는 보답한답시고 청년을 영화관, 술집, 노래방으로 이끌지만 아저씨의 방식은 청년의 믿음과 충돌한다. 오히려 아저씨는 사고치고 청년은 수습한다. 하지만 청년은 부서진 아저씨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발견한다. 이렇게 는 호준이 계상과 부딪히면서 자신의 방식을 돌아보고, 계상의 내면에 다가서면서 자신을 치유하는 이야기다. 거꾸로 계상도 호준을 통해 세상과 만난다. 그래서 의 영어 제목은 <visitor>가 아니라 <guest host>다. 왔다가 떠나는 방문자가 아니라 서로의 인생에 손님이 되면서 자신의 삶에 주인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서 당신이 품었던 몇 가지 의문을 대신해 묻는다. 계상이 지친 호준에게 “술 한잔 하실래요?”라고 묻자 호준은 ‘너네도 술 마시냐’는 듯 놀란다. 계상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뭔지 아세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또 계상이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으면 영화도 보고, “피가 많이 들어간 순대”가 아니면 고기도 먹는 생활인이라는 사실도 자연스레 보여준다. 이렇게 의 카메라는 세상이 외면한 계상의 세계를 비춘다. 계상의 믿음이 세상이 외면한 ‘낯선 세계’라면, 호준의 내면은 낯설지 않은 세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이 ‘꼬여버린’ 호준은 대상 없는 분노에 시달린다. 일면식도 없는 구멍가게 주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질 만큼 절절한 외로움에 시달리지만, 애꿎은 영화관 직원들에게 지나치게 분노를 터뜨린다. 는 소통을 갈구하면서도 분노를 어쩌지 못하는 호준의 한심한 행동을 섬세하게 소묘한다.
는 그들을 힘들게 만드는 세상의 풍경도 놓치지 않는다. 호준은 합승한 택시에서 부시의 당선에 “사탄이 발붙이지 못하게 됐다”며 기뻐하는 어떤 사람을 만나 시비가 붙고 주먹까지 주고받는다. 이렇게 는 호준이 분노하는 세상과 계상을 비난하는 세상이 다른 세상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임을 하나의 에피소드에 녹여낸다. 게다가 유머까지 섞어가면서 보여준다. 택시에서 부시를 찬양하던 손님이 “부시, 노무현, 김정일,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묻자 기사는 “관심 없습니다. 셋 다 택시 탈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촌철살인의 대사는 호준의 처연하고도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함께 영화에 리얼리티를 더하고,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슬며시 “조국일보”라는 이름으로 어떤 신문도 조롱한다.

“이제 내가 너 꺼내줄게”

계상은 지금껏 한 번도 친구를 초대하지 않았던 집으로 호준을 데려간다. 그렇게 “수상한 우정”이 깊어갈 무렵, 그들의 마지막 커밍아웃이 시작된다. 계상이 친구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았던 이유를 말하고, 세상을 향해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호준이 계상에게 말한다.


“이제 내가 너 꺼내줄게.” 그렇게 그들은 방문자에서 구원자가 된다. 는 10여 개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신동일 감독은 이 첫 장편영화로 제32회 시애틀 영화제 뉴디렉터스 경쟁부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계상 역의 강지환은 의 금순이 애인 ‘구닥’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강지환의 해맑은 얼굴과 김재록의 탄탄한 연기는 의 또 다른 매력이다. 참, 전도 청년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른다.
</guest></vis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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