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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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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가라사대] < 노팅힐> 중에서

등록 2006-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도훈 기자

맥스: 고기 좀 드실래요?
키지아: 아니, 고맙지만. 전 과식주의자(果食主義子·Furuitarian)예요.
윌리엄: 에? 과식주의자가 뭐죠?
키지아: 과일과 채소도 고통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진 것들만 먹죠.
윌리엄: 그렇군요. 네, 재밌네요. 그렇다면 여기 있는 이 당근들도….
키지아: 살해된 거예요. 그럼요.
윌리엄: 살해됐다고요? 불쌍한 당근들. 어쩜 그렇게 잔인하게….
(1999) 중에서

영국에서 3개월 정도를 채식주의자로 산 적이 있다. 채식주의가 트렌디해서 따라한 것은 아니었다. 채식주의자 친구들의 건강한 혈색과 깨끗한 피부에 탄복했고, 콩으로 만든 고기맛 푸딩 같은 것들이 의외로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에도 여러 단계가 있었다. 친구 데보라 가족의 대부분은 유제품과 달걀은 먹는 락토-오보(Lacto-ovo)였고, 아들 조지는 생선까지도 먹는 페스코(Pesco)였고, 작은딸 밀리는 유제품은 먹어도 달걀은 먹지 않는 락토(Lacto)였다.

나는 페스코로 시작해 락토-오보에 이르렀지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구운 베이컨에 무너지고 말았다. 삼겹살의 나라에서 온 남자가 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베이컨에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3년 만에 영국을 갔더니 13살이 된 데보라의 아들 조지가 맛나게 베이컨을 먹고 있었다. 데보라는 “조지 스스로 채식주의자가 된 것이었으니 고기를 다시 먹는 것도 아들의 의지”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채식주의는 ‘웰빙’을 위한 운동이나 법규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언제나 내일은 채식주의자’인 나는, 오늘도 항생제로 사육된 생선회와 광우병 바이러스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미국산 스테이크를 씹어 삼킨다. 채식주의자들의 ‘의지’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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