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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강, 마음껏 노래하고 싶다

등록 2006-10-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수준급의 늦깎이 데뷔음반 가 ‘반짝 효과’를 무서워하는 이유…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도움이 무색한 음원 시장의 혼란과 공연장의 부재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미국 버클리음대 출신의 레이 강(Ray Kang)은 서른두 살의 늦깎이 신인 가수다. 이미 김건모와 김진표의 음반 작업에 작곡가로 참여해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그것이 성공신화의 밑거름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뼈저리게 경험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중음악계 언저리에서 맴돌았지만 자신의 음반을 내놓을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3년여 동안 준비한 타이틀 곡 등을 수록한 데뷔음반 (메주뮤직·대표 이훈석)를 지난 8월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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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침체된 음반시장에서 자신이 꿈꾸던 음악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청춘을 고스란히 바친 대중음악계에서 멀어지는 게 살길”이라 생각했던 청년의 소중한 첫걸음이었다.

‘Mnet’과 ‘다음’에 광고 나가지만…

하지만 레이 강의 데뷔음반은 음악적 성취이면서 고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의 음반은 컨트리 음악에 모던 록을 더한 것으로 “새로운 음악 장르를 개척하면서 진정한 뮤지션으로 거듭나고 싶은” 소망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대중음악 장르는 전문가와 대중에게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악 지원기구 구실을 하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음악산업팀이 지난 6월부터 선정하기 시작한 ‘이달의 우수 신인음반’의 9월 수상작으로 뽑힌 것이다. 지난 8월 말 이뤄진 심사에서 레이 강의 는 1차 전문가 심사를 거친 뒤 다른 두 음반과 함께 인터넷 포털 다음을 통한 누리꾼 투표에서 62%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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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신인 가수로서 얼굴을 알릴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매달 선정하는 우수 신인음반은 음악전문 케이블TV ‘Mnet’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등을 통해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홍보를 지원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하는 4천여만원의 예산으로 Mnet의 ‘띠’를 구입해 일종의 광고식으로 뮤직비디오를 80여 회에 걸쳐 내보낸다. 방송 노출 빈도로 따지면 ‘전폭적’ 지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황금시간대를 비켜 새벽이나 낮 시간대에 방송되는 탓에 대중적 인지도를 단박에 끌어올리긴 어렵다. 물론 다른 신인 가수들을 떠올리면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로 생각해야 할 일이다.

애당초 대중에게 음악적 선택의 기회를 넓히는 데 이바지하려는 레이 강으로선 대기업이 투자하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눈에 들기 어려웠다. CJ미디어·SK텔레콤 등이 대중음악 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지만 지난 5월 가수 휘성의 이적을 둘러싼 YG엔터테인먼트와 CJ뮤직 사이의 갈등에서 알 수 있듯이, 상품성을 인정받은 가수들만이 그들만의 리그에 끼어들 수 있다. 드라마 를 통해 이름을 알린 남성그룹 ‘스윗소로우’의 소속사로 레이 강의 데뷔음반을 제작한 메주뮤직의 이훈석 대표는 “중소 제작사는 음반 하나를 제작하는 데도 결단이 요구된다. 레이 강의 음악성과 언어 능력 등을 갖춰 해외 진출까지 모색하고 있는데 간단치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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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음반산업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신인들의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펴내는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국내 음반 매출액이 2000년 4천억원대에서 5년여 만에 1천억원대로 급속하게 떨어졌다. 디지털 음원에 기대를 하기도 어렵다. 온라인 음원 유통에 필수적인 음원정보 표준 데이터베이스(DB)가 구축되지 않은 때문이다. 당연히 음반 제작자들이 쓸 만한 신인을 발굴해 투자하기에 역부족이다. 더구나 제작가와 소비자의 요구가 입을 맞춘 듯 서로 통하면서 R&B나 댄스 등에 편향된 장르 환경에서 레이 강처럼 귀에 익숙지 않은 소리를 들고 나오는 것은 무모하게 비쳐지기 십상이다. 자칫 단 한 번의 도전에 만족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선 기존의 스타도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주로 팬들이 10대에 몰린 반짝 스타들만 둘쭉날쭉할 뿐, 많은 세대에 공감을 얻는 슈퍼급 스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설령 기존 가수가 음악적 변신을 꾀해도 소비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들이 이미 대중의 검증을 받은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음반을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레이 강은 색다른 소리를 들고 나온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가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며 새로운 장르의 음악에 도전하는 것은 원대한 포부 때문이 아니다. 그저 “자신에게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그 무엇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결실”일 뿐이다.

우리가 몰랐던 음악으로 국내 음악산업의 장르를 확장해보려는 레이 강. 여전히 그가 다가서려는 무대는 높기만 하다. 오는 10월29일까지 20여 일 동안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야외공연장에서 국내 대중음악계의 정상급 가수들이 릴레이 형식으로 공연하는 ‘2006 서울뮤직페스티벌- 파이팅 K-Pop’은 그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홍익대 앞 라이브 문화가 되살아나고 있다지만 매달 마련하는 ‘사운드데이’에 이름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음반 제작사가 홍익대 앞 클럽에서 단독 콘서트를 마련할 계획이라는 귀띔에 위안을 삼는다. 물론 단 하루의 콘서트 날짜를 잡으려면 적지 않은 예산을 별도로 확보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레이 강을 비롯한 신인 가수들이 맘껏 노래할 수는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정부 지원제도에 따르면 레이 강은 도드라진 수혜자에 속한다. 어쨌거나 음악전문 케이블TV에 노출될 기회를 얻었고, 이 과정에서 심심찮게 라디오 방송 섭외가 들어오는 덤도 얻었다. 문제는 음악산업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방송 노출의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야말로 ‘반짝 효과’에 머물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래서 정부는 오는 10월29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음악산업진흥법안에 따라 체계적인 육성책을 모색하려고 한다. 여기엔 음반 유통의 분배 기준안 마련과 디지털 음원 관련 조항 신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것이 열려라 참깨식의 주문은 아니라 해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뭔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음반제작과 공연기획 통합적 지원 조직을

이미 정부는 음악산업 중장기 육성전략에 따라 인디레이블과 뮤직비디오 제작, 대중음악 기획공연 등 지원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레이 강 같은 신인 가수들에게 혜택이 돌아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자신만의 색깔 있는 음악이 퇴색될지도 모른다. 여전히 대중에게 다가설 통로가 너무나 비좁은 탓이다. 이제라도 음반제작과 공연기획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관련 조직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레이 강의 음반에 대해 “모던 록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아티스트의 실력을 느끼게 했다”고 평가했다. 지금 레이 강은 침체의 늪에 빠진 음악산업 언저리에서 ‘그대여 안녕히’라면서 허우적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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