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마된 내공을 뿜기보단 대중성에 초점 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공연 시작 뒤에도 입장 이어진 운동장 콘서트, 당혹스런 양국 국가 연주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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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의 뒷말이 무성하다. 아무리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우아한 초가을 저녁을 선물했다 해도 최고가 40만원짜리 티켓의 뒷맛이 개운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정교한 연주로 위안을 삼았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 세기 반을 훌쩍 뛰어넘는 빈 필하모닉의 보수와 전통의 흐름은 러시아 출신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마저 헐거운 캐주얼 슈트의 유혹을 떨치게 했다.
그는 빈틈없는 나비넥타이에 턱시도 차림으로 연방 땀을 흘리면서 빈 필에 대한 예의를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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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기르기예프가 잘 안보였다
이번 빈 필의 공연은 가을 오케스트라 대전의 신호탄이었다. 빈 필의 뒤를 이어 뉴욕 필하모닉, BBC 심포니 등이 줄줄이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을 만난다. 그래서였을까. 빈 필은 공연을 앞두고 몇 차례 레퍼토리를 손질하며 매음새를 가다듬었다. 빈 필이 오케스트라 대전의 서전을 장식할 레퍼토리로 삼은 대표작은 올해 탄생과 서거의 해를 맞은 작곡가들의 것이었다. 탄생 250주년을 맞은 모차르트, 서거 10주기의 슈만, 탄생 100주년의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통해 서양 음악사를 단숨에 꿰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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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의 예술의전당 공연은, 말하자면 화려한 만찬에 어울릴 만한 요리를 식탁에 올린 정찬이었다. 최근의 오케스트라 흐름과 달리 모차르트 시절처럼 웅장하게 편성해 연주한 ‘빈 필 사운드’는 흐트러짐이 없어 보였다. 첫 번째로 연주한 모차르트 교향곡 36번 에서 오케스트라의 탄력적 음색과 발랄한 템포를 확인하도록 했고, 마지막 곡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9번은 지휘자 게르기예프의 드라마틱한 해석을 돋보이게 했다. 여기에 바순과 바이올린 독주 등으로 단원들의 ‘솔리스트급’ 기량을 확인할 기회도 제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빈 필의 진면모를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모차르트 연주는 게르기예프의 존재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오케스트라를 장악한 지휘자라기보다는 오케스트라를 거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빈 필이 다른 저명한 오케스트라와 달리 상임 지휘자를 따로 두지 않는 이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다. 일부 클래식 평론가들이 선곡에 아쉬움을 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빈 필과 게르기예프의 만남이라면 연주와 지휘의 능력을 오롯이 보여줄 작품을 골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화려한 만찬을 끝낸 다음날 열린 상암월드컵경기장의 ‘운동장 콘서트’는 예상대로 달콤한 디저트가 줄줄이 나왔다. 주로 ‘A매치’가 열리는 월드컵 경기장이라는 무대 사정을 배려한 것이었을까. 빈 필은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국가를 연주하며 무대를 열었다. 이미 악보를 긴급 공수해 연습한 빈 필의 ‘애국가’ 연주에 관객들은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오스트리아 국가 연주 때는 곡명도 파악하지 못한 채 서둘러 자리에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날 빈 필은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에 맞춤한 곡을 연주하며 대중적 오케스트라로 변신한 듯했다. 로시니의 서곡을 비롯한 귀에 익은 서곡과 교향곡에서 발췌한 곡들로 ‘정통’의 여유를 한껏 과시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이틀 연속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의 파격적 기교가 돋보인 사라사테의 이었다면, 최악의 장면은 공연 시작 시각 30분을 미루고도 입장이 끊이지 않았던 객석이 아니었을까. 최고가 20만원짜리 운동장 콘서트 티켓을 ‘협찬’이라는 명목으로 ‘대량 구입’한 기업들이 티켓을 마구잡이로 뿌린 대가였을 것이다.
@ 주요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일정
-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이지 벨로흘라베크, 협연: 임동혁·지안 왕, 10월21일(성남아트센터)·22일(예술의전당), 3만~16만원
-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 지휘: 유리 테미르카노프, 협연: 김원·블라디미르 펠츠만, 11월7~8일, 예술의전당, 4만~14만원
-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 로린 마젤, 협연: 조이스 양, 11월15~16일, 예술의전당, 6만~30만원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국립교향악단 지휘: 정명훈, 11월17일(세종문화회관)·18일(예술의전당)·19일(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5만5천~16만5천원
- UBS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지휘: 클라우스 페터 플로어, 협연: 브린 터펠, 11월23일, 세종문화회관, 3만~12만원
-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지휘: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11월25일, 예술의전당, 6만~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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