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선택이 된 시대에도 남은 신데렐라의 꿈, 재벌가로 시집가기… 정교한 계급 재생산의 장치, 그 분노의 불똥은 근거리의 여자들에게
▣ 현영 동덕여대 강사
막 연기에 물이 오르기 시작할 때,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현정 언니가 삼성가의 며느리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체 왜? 이제 경력도 막 시작될 때, 힘들게 틔운 싹이 이제 물과 햇빛이 있는 곳을 찾아 쑥쑥 자랄 수 있을 것만 같을 때였다. 잘은 모르지만, 그 정도로 부잣집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부자유들도 꽤나 많을 텐데, 이제 막 세상 구경하기 시작한 사람이 왜 재벌가로 시집을 가는 걸까?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하나도 안 부러웠다.

그런데 그 현정 언니가 돌아왔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몸에 맞춘 듯 한 배역을 소화해내면서 다시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어쩐지 가슴을 후유 하고 쓸어내리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남의 집안일에 뭐라 할 것은 아니지만, 왠지 행복할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온 현정, 떠나간 현정
그런데 다른 현정 언니(내가 나이야 더 많겠지만)가 이번에는 현대가로 시집을 간다 했다. 아 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의아하다. 얼음공주라는 별명으로 뭇 남성들이 한 번만 노현정을 웃겨보겠다고 재롱을 떠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고, “공부하세요!”라고 호통을 치는 것도 좋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간식을 손수 만들거나 대감들의 놀림거리가 되어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온 국민이 아는 재벌 가문으로 시집을 가게 됐단다. 이번에는 좀 허무하기까지 했다. 나는 만혼이 점점 추세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 이제 막 자신의 일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시기에 도망치듯 대중으로부터 숨어드는 그녀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혼이라는 게 예전과 달리 안정을 약속해주는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게 되지 않았나. 높은 이혼율과 독신가구의 증가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제 사람들은 성과 사랑과 결혼이 모두 한 사람과만 연속적으로 이어진다고 믿지 않게 됐다. 근대의 낭만적 사랑은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나의 반쪽을 찾는 것이었고, 사랑에서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구애와 구혼이라는 절차들이 있었으며, 결혼 반지를 받아드는 것은 영원한 보호와 영원한 종속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낭만적 사랑과 종속적 결혼제도 사이의 수많은 빈틈에서 약속은 종종 지켜지지 않고, 여성들이 경제적·정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되면서 결혼은 강요가 아닌 선택으로 변해가고 있기도 하다. 연애결혼이냐 중매결혼이냐는 질문은 40대 이상만 해도 성립되는 질문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들 서로의 조건을 챙기고 그 조건이 맞을 때 연애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신데렐라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신데렐라의 꿈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꿈이라기보다는, 계급 이동에 대한 꿈이다. 사회의 분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수록, 계급 간의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계급 간의 경제적·문화적 차이는 벌어지게 된다. 한국 사회의 결혼과 학벌은 예전에는 신데렐라나 개천에서 용이 나는 등 계급 간의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계급을 재생산하는 빈틈없는 정교한 장치다. 그런데 재벌가와 일반인의 결혼이라는 드라마틱한 계급 이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계급 이동의 기회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들은 이런 여성들의 ‘허영심’을 비웃고 욕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재벌가는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결코 재벌을 욕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당하게 돈을 벌고 있으며, 사회에 가끔 환원도 하고, 일자리를 주는 고마운 존재로 생각한다. 그리고 탈세 혐의 등이 밝혀져도 그 때문에 망하면 같이 망한다고 걱정해준다. 도덕적 정당화는 재빨리 이루어진다. 재벌가는 여전히 신비롭고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모두의 보호 속에 존재한다. 한편 여성들의 경우,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사생활을 지켜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얼굴과 명성이 알려진 당대의 여성 인물들 중에 그들의 사생활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한 남성 연예인의 누드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곧바로 잊혀졌지만 다른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여성이 사생활을 지키는 것은 곧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는지와 연관된다.
그 결혼에 불만 품으면 사회 불만세력?
현대 사회에서 사생활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는다고 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재벌가로의 시집이란, 결혼한 당사자들은 짝을 만나서 좋고, 계급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계급 이동이 가능하다는 드라마틱한 사례를 보여줄 수 있는 두루두루 쓸모 많은 일이 된다. 이 결혼에 대해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사회 불만 세력이 맞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위험세력은 아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사회 불만 세력의 분노의 불똥을 맞는 건, 근거리에 있는 여자들이다. (먼 거리에 있는 여자들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떠났다.) 아. 시니컬한 농담이 심했다. 어찌됐건, 돌아온 현정 언니 반가워요. 최고예요.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한덕수, ‘권한대행 재판관 지명금지’ 헌재법 개정안에 거부권
통일교 ‘김건희 선물용’ 6천만원 다이아 이어 명품백 받은 건진법사
김태효 의아한 방미…외교가 “대단히 부적절” 월권 논란
이낙연 ‘대선 출마+반명 빅텐트 합류설’…민주 “거기까진 안 가야”
이낙연이 어쩌다 한덕수와…“정치적 무덤, 시대의 엇박자”
한덕수가 부릅니다 “나 나나나 난난나나나난…가?” [그림판]
홍준표 “대통령 후보 안 되면 정치계 졸업할 것…당권 관심 없다”
‘복제폰’ 노리는 SKT 해커…재부팅 요구 절대 따라선 안 돼
“나도 모르게 SKT 폰 해지, 5천만원 인출됐더라…알뜰폰 개통돼”
조선·중앙도 진짜 궁금한 ‘한덕수의 출마 명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