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훈 기자
피터: 다 잊어버려 웬디. 모두 잊어버리고 나와 함께 가자. 절대로 어른이 되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웬디: 절대로라는 말. 그거 지나치게 긴 시간인걸.
(2003) 중에서
늙기 싫어서 발악을 하고 있다. 20대만 해도 자외선을 스스로 반사하던 피부가 30대가 되니 흐린 날에도 굳이 자외선을 찾아서 흡성대법을 구사한다. 눈가의 살들은 자잘한 300, 400개의 주름으로 웃을 때마다 지각변동을 펼친다. 참을 수 없었다. 월급을 쪼개 값나가는 화장품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침 세안 뒤 얼굴에 바르는 것은 로션(좀더 세련되게 말하자만 모이스처라이저) 하나면 충분했다. 지금은 무려 여섯 단계를 거친다. 먼저 스크럽으로 각질을 제거하고, 지성용 세안제로 얼굴을 뽀득하게 씻어준 뒤, 눈가에 아이크림을 바르고, 코와 이마를 연결하는 T존에 모공 관리용 크림을 바른다. 그리고 얼굴 전체에 노화 방지용 크림을 바른 다음, 마지막으로 모이스처라이저를 가볍게 발라준다. 맑은 날 자외선 방지 크림을 바르는 건 필수다. 메트로섹슈얼이라는 말은 듣기 거북스럽다. 하지만 근사하게 나이 먹는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르마니 슈트를 입고 일주일에 두 번씩 패셔너블한 호텔에서 기만원짜리 브런치를 먹는 에스콰이어 30대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피부에 발려나가는 월급을 경멸하는 남자 중 한 명은 되지 말자. 남자들도 그 정도 호사는 누릴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절대로 어른의 모공을 갖게 되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네버랜드. 그곳은 아침의 세면대에서 그리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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