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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도호국단원이라고?

등록 2006-06-15 00:00 수정 2020-05-03 04:24

학생들에게 비밀로 유지되는 교육부의 ‘전시 학도호국단 운영계획’… 안보 이유로 자료공개 거부, 청소년 인권단체들이 헌법소원을 준비한다

▣ 사진·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나는 오랫동안 종사해온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고. 새로운 여명을 맞이하여 인류 역사에 위대한 사업을 건설하려는 대동아 성전에 대한 제군 및 우리 반도 동포가 갖고 있는 의무인 것이다.”(김성수, 1943년 11월6일)

한국의 학교는 ‘군사주의적 국가주의’의 모의 연습장이다. 한국의 학교는 태평양전쟁을 수행한 일제 시대 이후 한국전쟁과 분단 시대를 거쳐온 학생들을 국가에 무조건 충성하는 군인처럼 길러왔다.

지금까지도 학교의 일상은 군사주의의 은유로 읽힌다. 연병장은 운동장으로, 아침·저녁 점호는 조례와 종례로, 일직 사령은 주번 교사로 현현한다.

국감에서 지적받고 공개한다더니…

군사주의의 조직적 매개는 학도호국단이었다. 학도호국단은 학생자치단체인데도, 군사적 칭호를 부여받았다. 학생회장은 연대장이었고, 학생들은 학도였다. 학도호국단은 전두환 정권의 학원자율화 조처로 1985년 폐지됐지만, 최근 들어 다시 여러 사람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청소년들이 “교육인적자원부가 가상 편제한 학도호국단이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학도호국단은 전시 대비 조직으로 존재한다. 교육부는 매년 ‘전시 학도호국단 운영계획’을 작성해 각 시·도교육청으로 내려보낸다. 하지만 학도호국단에 대한 어떤 사실도 실제 단원이 될 학생에게 ‘비밀’로 유지된다. 도대체 학도호국단의 실체는 무얼까.

5월4일 은 교육부에 공식적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2001~2006년치 운영계획과 관련 회의록, 장(차)관 결재문서 등 학도호국단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예상대로 비공개를 통보했다. “전시 학도호국단 관련 문서는 그 내용이 누설될 경우에는 국가안전보장 등 유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윤병만 교육부 비상계획담당관은 5월30일 취재진이 재차 확인했을 때에도 “학도호국단 운영계획은 국가비밀 관리규정(보안업무 규정)에 따라 비밀로 분류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폭로된 관련 문서로 볼 때, 학도호국단은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사태에 조직되는 학생 동원 체계다. 전쟁 직전 위협 상황 때 선포되는 ‘충무2종’ 단계에 고등학교 이상의 학교에서 운영된다. 예전에는 학생 각자에게 단번(군번)을 부여해 학교를 군대처럼 운영토록 하고, 좌경 학생·교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 등이 포함됐지만, 2005년 이 사실이 언론에 의해 공개되자 빠졌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인권운동사랑방 등 인권단체는 “18살 미만 청소년을 비밀리에 전쟁에 동원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것은 이미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교육부 관계자는 “전쟁 동원이 아닌 민방위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인권단체들은 2005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지난 3월30일 각하 결정을 통보받았다. 김정린 침해구조총괄팀 조사관은 “아직은 효력이 없는 문서상의 계획”이라며 “공식적인 행정 활동으로 보기 힘들어 각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학도호국단의 구체적인 임무는 무얼까. 여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학생들은 전시 국민교육을 받는 한편 긴급 지원복구 등 후방지원 임무를 부여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학도호국단의 활동 성격이 ‘참전’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앞서 학도호국단의 해당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학도호국단 존재 자체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학도호국단원에 편성되는 것은 물론 어떠한 활동을 수행하는지, 그리고 활동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배경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청소년의 알 권리는 물론 자기 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에 직접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평화적이고 인도적인’ 민방위 활동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뭘까. 교육부는 국가안전보장에 해롭지 않은 학도호국단의 존재 사실조차도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취재 결과 교육부와 비상사태 총괄부서인 비상기획위원회는 한때 학도호국단 공개를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상기획위원회는 2003년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고 교육부와 함께 2005년 충무집행계획에 ‘학도호국단 홍보대책’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2004년에도 이 계획을 재차 확인했고, 이는 2004년 국정감사 처리 결과 실적 보고서에도 반영됐다. 당시 비상기획위원회는 △대학 및 고등학교 교직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학도호국단 운영에 따른 활동 및 기본 임무 등에 대한 홍보대책 수립 △민방공훈련 때 학도호국단의 체제·운영 및 임무 등의 교육을 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활동은 알려주기로 결정했던 셈이다.

어느 순간, 황당한 명령을 받는다면?

그러나 교육부는 2004년 10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전시 학도호국단은 예민한 사항으로 평시에 교육·홍보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2005년 비상기획위원회 국정감사 답변서에 따르면, 비상기획위원회도 결국 이런 교육부의 뜻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기획위원회는 “학도호국단 폐지론까지 대두되는 최근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공개적으로 평시에 교육·홍보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필요한 지침을 준비해두었다가 충무 사태시 교육·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아수나로와 인권운동사랑방은 5월30일 이와 관련한 헌법소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재학생이 참여하는 소송인단 모집 작업에도 들어갔다. 이들은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청소년은 스스로를 대변할 권리가 있고 당사국은 그것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유엔아동권리협약 12조를 한국 정부가 어기고 있다는 게 헌법소원의 주된 내용이다.

“당신은 일찍부터 학도호국단원으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당신이 수행할 임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어느 순간 위와 같은 명령 앞에 황망하게 서 있어야 할지 모른다. 아무리 국가를 지키는 게 국민의 의무라 해도, ‘아니요’라고 말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말해줘도 되는 걸까. 누가 됐건 전쟁이 터지면 어떤 활동이든 국가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그 전쟁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듯 더러운 전쟁이라면?



유신정권이 살린 어용 학생회


군사주의와 국가주의가 결합한 학도호국단의 역사

학생회의 옛 이름은 부끄럽게도 ‘학도호국단’이었다. 학도호국단은 군사주의와 국가주의가 결합한 과거의 유산이었다. 1948년 9월28일 학생자치단체임에도 ‘대통령령’에 의해 기이하게 출발했다. 중학교 이상의 학생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조직됐고, 지역과 중앙학도호국단으로 연결됐다. 학도호국단은 반공 강연회, 행군, 산악훈련 등의 활동을 펼치며 4·19 혁명 뒤 폐지됐다.
학도호국단을 부활시킨 건 유신정권이었다. 1975년 대학총장 회의에서 부활된 학도호국단은 간선으로 임명되는 어용 학생회 체제였다. 간부들은 사단장, 연대장 등 군 계급으로 불렸으며 평시에는 각종 경연대회를 주최하고 교련 사열 같은 군사적 행사도 주도했다.
1980년대 지하에서 성장하던 학생운동의 일차 과제는 ‘학도호국단 폐지’였다. 학생들은 독립적인 학생회를 요구했고, 1985년 전두환 정권은 국무회의에서 학도호국단 폐지를 의결한다.
하지만 학도호국단은 ‘비상기획위원회 규정’이라는 정부 법령에서 유일하게 살아났다. 비상사태 때 비상기획위원회의 인력재정동원과장이 “학도호국단의 운영에 관한 사항을 분장한다”는 규정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05년 3월24일 개정으로 ‘학도호국단’이라는 단어는 아예 법령에서 자취를 감춘다. 적어도 법적으론 실체가 없는 조직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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