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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해버린 문장] “스밀라가 죽으면, 내가 스밀라의 가죽을 가져도 돼?”

등록 2006-06-03 00:00 수정 2020-05-03 04:24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스밀라가 죽으면, 내가 스밀라의 가죽을 가져도 돼?”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마음산책 펴냄)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식민지였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에스키모) 소년 이사야는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식민지 본국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옮겨졌다. 코펜하겐에서 처음 친구가 되어준 사람은 옆집 누나 스밀라. 둘은 자연사박물관에서 물개와 들소의 박제를 흥미진진하게 구경한다.
이누이트들은 고래를 잡으면 가죽과 살을 발라낸 뒤, 먼 바다로 고래의 턱뼈를 돌려보내 영혼을 풀어준다고 한다. 고래는 죽지 않고 이듬해 살을 붙여 다시 돌아온다. 이런 조화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이사야는 박물관에서 본 물개와 들소가 사람에 의해 죽어 욕보이듯 전시된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착취 없이 공존하는 관계라고 생각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이누이트 소년의 원시적인 사랑의 물음. 문명세계 야만의 징표가 사랑의 징표로 전복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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