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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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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만세 ‘진실게임’의 진실

등록 2006-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우리도 모르게 직업 추리게임에서 버라이어티쇼로 변신한 오락물
몸매와 춤과 동안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진실이 담겼다?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믿지 못하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과 SBS <진실게임>은 근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버라이어티쇼다. ‘X맨’이 출연자 중 숨겨진 X맨을 찾기 위해 추리를 하듯 <진실게임>도 주제에 해당하는 진짜 혹은 가짜 출연자를 찾기 위해 추리한다. ‘X맨’에서 박명수·지상렬 등의 출연자들이 스토리에 상관없이 온갖 코미디를 펼치는 것처럼 <진실게임>에서도 주제와 상관없이 일반인과 연예인 출연진이 쉴 새 없이 코미디를 보여준다. 그리고 ‘X맨’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프로그램 내내 섹시댄스를 추듯, <진실게임>의 출연자들 역시 반드시 한 번 이상은 각종 춤을 선보인다.

일반인이 이렇게 잘생기고 멋지다니

<진실게임>에서 진짜, 가짜를 찾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물론 프로그램의 중심은 출연자의 진위를 가리는 데 있지만, 프로그램을 재밌게 만드는 건 그 과정에 삽입된 다양한 볼거리들이다. 그리고 ‘X맨’이 그러하듯, 그 볼거리의 핵심은 멋진 출연자들의 춤과 또 다른 출연자들의 코미디에서 나온다. 그래서 요즘 <진실게임>은 그 두 가지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소재가 자주 나온다.

지난 두 달 동안만도 얼짱, 동안, 트랜스젠더, 예쁜 남자 등이 계속 소재로 채택됐다. 이런 소재들엔 당연히 멋지게 생긴 출연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진위를 판단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춤을 춘다. 그리고 누가 봐도 얼짱이나 트랜스젠더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외모의 사람들도 함께 출연해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진실게임>의 출연자들이 일반인이라는 점은 이 프로그램의 재미에 큰 역할을 한다.

‘X맨’ 같은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출연자들이 섹시댄스를 많이 춰도 이미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들이 반복적으로 출연하는 것이어서 흥미가 반감된다. 하지만 <진실게임>의 출연자들은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잘생기고, 멋진 춤을 춘다는 사실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진실게임>이 끝나면 잘생기거나 화제성이 있는 출연자들은 곧바로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다음날이면 인터넷 곳곳에 출연자에 관한 소식들이 퍼진다. 젊은 나이에 연매출 4억원에 달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 ‘4억 소녀’라는 별명이 붙은 여성 출연자는 <진실게임>을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모바일 화보까지 촬영했다. 잘생긴 일반인과 섹시댄스의 결합이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것이 다시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그 다음회에 대한 흥미까지 불러일으키는 <진실게임> 특유의 흥행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진실게임>이 얼마나 트렌드에 잘 적응하는 프로그램인지 보여준다. 장수 오락 프로그램인 <진실게임>은 애초엔 볼거리 중심의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과거 <진실게임>의 재미는 순수하게 출연자의 진위를 맞히는 과정과, 거기서 나오는 출연자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가짜 출연자들은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외웠고, ‘누가 진짜 카지노업계 종사자인가’ ‘누가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인가’ 같은 소재들은 출연자의 사는 이야기를 펼쳐내기에 충분했다. 그때는 출연자들의 춤 대신 직업에 관련된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진실게임>이었다. 이는 당시 방송에서 SBS <세상에 이런 일이>나 한국방송 <vj>처럼 일반인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은 것과 맥을 같이했다.

“서민은 통하지 않는다”는 트렌드의 수용

그러나 다시 시대는 변했다. 더 이상 서민의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대신 모두 동안이 되길 원하고, ‘S라인’이 살아 있는 몸짱이 되어 몸매를 과시하며, 몸매를 더욱 멋지게 포장할 수 있는 춤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 됐다. 그리고 인터넷은 멋진 사람들의 사진을 실시간으로 곳곳에 전파한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으면 출연할 수 있었던 <진실게임>은 매회 멋진 남녀가 반드시 몇 명씩은 등장하는 ‘볼거리’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변화하면서 이런 시대적 흐름에 영민하게 반응했다. <진실게임>은 프로그램의 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작품의 성격을 새롭게 바꾼 보기 드문 경우이자, 오락 프로그램이 살아남기 위해서 트렌드의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게임>에 ‘진실’을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프로그램에서 마지막에 공개되는 진실이 가진 비중은 줄어들고, 출연자들의 외모나 춤, 혹은 코믹 연기가 프로그램을 이끌어간다. 설사 그날의 주인공이 된 출연자라 할지라도 외모와 춤이 뛰어나지 않으면 좀처럼 관심을 끌기 힘들다. 이로 인해 ‘진실게임’이 가졌던 추리물 고유의 재미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출연자의 외모를 부각시킬 수 있는 비슷비슷한 소재가 등장하며, 소재에 상관없이 매번 등장하는 출연자들의 춤은 추리의 흐름을 끊어놓는다. 물론 그래도 <진실게임>의 인기는 꾸준하다. 과거의 <진실게임>이 출연진들이 진위를 맞히는 과정으로 재미를 줬다면, 요즘의 <진실게임>은 매회 어떤 ‘얼짱’들이 나와 멋진 무대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한다. 매주 비슷한 소재와 논리적 추리 과정이 약해진 구성이라 해도 매번 새로운 미남미녀들의 멋진 춤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매주 <진실게임>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한다.


그렇게 트렌드에 대응하지 않았다면 <진실게임>은 사라질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추리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진실게임>은 어느덧 출연자들의 외모와 개인기에 환호하는 버라이어티쇼에 가까운 오락 프로그램이 됐고, 시청자는 진실이 무엇인가보다 오늘은 어떤 잘생기고 춤 잘 추는 출연자가 나올지를 더 궁금해한다. 논리적 추리의 과정을 통해 답을 유추하는 재미보다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예쁜 것’에 더 즐거워하고,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보는 것의 재미에 열광하는 것. 그것이 요즘 우리 사회의 ‘진실’ 아닐까.</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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