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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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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우먼들이 뜬다지요"

등록 2006-02-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유행어 터뜨리며 폭소의 ‘포스’를 더해가는 신인 개그우먼들
‘개그맨보다 아이디어가 떨어진다’는 오래된 낭설에 뒤집기 한판!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천만원입니다.”

서로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문화살롱’에서 신 마담과 정 선생님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개그우먼 신고은(22)씨와 정경미(26)씨는 ‘자작’한 유행어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를 칭찬했다. ‘재연’을 요구하지 않아도 정경미씨가 “한번 찌그려볼까요” 하면서 연기를 선보이면, 신고은씨도 “저도 들이대겠습니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요즘 <개그콘서트>를 보면 신인 개그우먼들이 부쩍 눈에 띈다. ‘문화살롱’ 콤비가 갈수록 폭소의 ‘포스’를 더해가고 있고, ‘봉숭아 학당’의 봉선이를 연기하는 신봉선씨의 압박도 ‘장난’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해 개그맨 시험에 합격한 한국방송 개그맨 20기 공채 동기들이다. 여기에 화제의 코너였던 ‘고고(GO!GO!) 예술 속으로’에서 호흡을 맞췄던 강유미(22)씨와 안영미(22)씨도 있다. 이들은 한국방송 개그맨 19기다. 이들의 가세로 모처럼 개그계의 성비 균형이 맞춰지고 있다.

‘문화살롱’ 명콤비_ 정경미·신고은
“소년들이여 ‘야동’을 가져라”

참 참신하고, 참 능청스러웠다. 정경미씨와 신고은씨는 할 말 많은 소녀들처럼 질문 하나를 던지면 꼬리를 물고 답을 이어가다가,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신 마담과 정 선생님으로 ‘돌변’해 능청을 떨었다. 이들은 지난 10월부터 ‘문화살롱’을 함께 하면서 일주일 내내 붙어다닌다. 첫눈 오던 날도, 크리스마스에도, 새해 첫날에도 같이 있었다. 정씨가 신씨보다 4살이 많지만,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낸다. 오늘의 ‘콤비’는 어제의 ‘팬과 스타’였다. 정씨는 2003년 한국방송 위성 <한반도 유머 총집합>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었다. 당시 강유미씨도 같은 프로그램 출연자였다. <한반도 유머 총집합>은 아마추어 개그맨들의 무대였다. 정씨와 강씨는 어느 날 난생처음으로 팬레터를 받았다. 그 팬레터를 보낸 사람이 신씨였다. 정씨에게 신씨는 첫 번째 팬이었던 셈이다. 신씨는 ‘언니들’을 만나고 싶어했고, ‘언니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신씨는 “정말 당시 언니들은 저에게 하늘처럼 높아 보였다”며 “길에서 강유미 선배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대단해 보였다”고 돌이켰다. 신고은씨도 <한반도 유머 총집합> 무대에 서면서 이들은 동료가 됐다. 그리고 <폭소클럽>으로 나란히 무대를 옮겼다. 정씨는 <폭소클럽>에서 강유미 등과 함께 ‘여자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고, 신씨도 ‘R&B 소녀’로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들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정씨는 2004년 한국방송 개그맨 19기 공채시험에서 떨어졌다. 반면 정씨와 함께 <한반도 유머 총집합> <폭소클럽> 무대에 섰던 강유미씨는 합격했다. 정씨는 “마침 합격자 발표일이 <폭소클럽> 녹화날이었다”며 “유미에게 축하 인사를 해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돌이켰다. 신씨도 같은 시험에 낙방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리고 2005년 3월 나란히 개그맨 시험에 합격했다. 신씨는 “시험에 합격해서 <개그콘서트>에 투입됐지만 코너가 없어서 6∼7개월을 방송국 소파에서 어리버리했다”며 눈물을 글썽이었다. “어리버리하던” 신씨와 정씨는 바로 그 소파에서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짰고, 교양프로그램 <낭독의 발견>을 패러디한 ‘문화살롱’이 탄생했다. 무표정한 신 마담, 뻔뻔한 정 선생님 콤비의 시작이었다.

아직 경력은 짧지만, 개그‘우먼’으로 느끼는 고민이 없지 않다. 정씨는 <폭소클럽>의 ‘여자 이야기’부터 <개그콘서트>의 ‘문화살롱’까지 주로 여성들끼리 만드는 개그를 해왔다. 정씨는 “개그맨들은 마음대로 망가져도 되지만, 개그우먼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들은 “옛날 말씀”을 비틀어 전하면서 ‘문화살롱’을 끝내는데, 하루는 “보이스 비 앰비셔스”를 “소년들이여 ‘야동’을 가져라”로 바꿔 해석하면서 끝냈다. 아니나 다를까. ‘야동’이라는 말이 시청자들의 질책을 받았다. 비판에는 “여자들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라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개그계에는 오래된 ‘낭설’이 있다. 개그우먼은 개그맨보다 아이디어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신씨는 “이유가 있다”며 “남자들은 돌 사진을 찍어도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찍지만, 여자들은 웃을 때도 입을 가리고 웃어야 한다고 교육받는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이 기발한 상상력을 키우기 어려운 조건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정씨는 ‘그래도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이제는 여자들끼리 만들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자신의 ‘역할 모델’을 물었다. 정경미씨는 김미화씨를 꼽았고, 신고은씨는 오프라 윈프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정씨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다”고 했고, 신씨는 “자기의 상처를 드러내서 타인의 희망이 되다니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오프라 윈프리가 소녀 때 당한 성폭행을 커밍아웃한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들은 다른 코너에서도 호흡을 맞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봉숭아 학당’ 봉선이_ 신봉선
삼류 연예인, 살짝 기분 나쁠 뻔했어

<개그콘서트>의 샛별로는 신봉선(26)씨를 빼놓을 수 없다. 신씨는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봉선이’ 캐릭터로 인기를 얻고 있다. ‘3류 연예인’으로 설정된 봉선이는 자신이 예쁘다고 착각하는 캐릭터다. 신씨는 능청스러운 연기로 봉선이를 ‘봉숭아 학당’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봉선이가 ‘수위 아저씨’에게 “살짝 기분 나쁠 뻔했어”라고 한마디 던지거나, 치근대는 ‘옥장군’에게 “증말 짜증 지대로다”라고 쏘아붙일 때, 관객은 그의 말을 합창하면서 ‘뒤집어진다’. 개그우먼들의 평소 모습이 브라운관의 캐릭터들에 견줘 몰라보게 깜찍했지만, 가장 몰라볼 사람을 꼽는다면 신봉선씨였다. 봉선이의 드센 이미지와 달리, 신봉선씨는 참한 부산 아가씨였다. 그리고 이왕이면 예쁘게도 보이고 싶은 여성이었다. 그는 “봉선이가 연예인 설정으로 설정돼 있어서 나름대로 바비 인형 같은 머리를 하고 갔더니 사람들이 ‘너 왜 아줌마 머리를 했냐’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래도 그는 웃음을 위해서라면 몸을 던지는 연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씨는 개그맨이 되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는 방송연예과를 졸업하고, 전유성씨가 이끄는 극단 ‘코미디 시장’에서 4년 동안 연기를 갈고닦았다. 그도 개그맨 시험 재수생이었다. 신씨는 “19기 공채 시험에는 다 잘하고 마지막에 못 웃겨서 떨어졌는데, 20기 시험 때는 다 못했지만 마지막에 웃겨서 붙었다”고 돌이켰다. <폭소클럽>은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신씨는 줄거리가 있는 정통 희극에도 관심이 많다. 신씨는 “개그도 좋지만 콩트는 더 좋다”고 말했다. 설 특집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선배들과 희극 연기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재미를 잊을 수 없다.

신씨는 2005 한국방송 연기대상 코미디 부분 여자신인상을 받았다. 신인상은 부담이 되기도 했다. 개그맨 사이에서는 신인상을 타면 오래 못 간다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쁜 가운데서도 짬을 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피아노 다음에는 성악도 배울 생각이다. 언젠가는 개그뿐 아니라 뮤지컬과 영화를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여성’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그는 “성공하기 전까지는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여자가 끼기 어려운 자리가 있다”며 “살면서 한 번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했던 적이 없었는데, 남자 동기들이 남자 선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오직 ‘열공’만이 살아남을 길이라고 오늘도 되새긴다.

고고 예술 속으로_ 강유미·안영미
주성치 마니아의 목표는 시나리오 완성!

정말 박수칠 때 떠났다.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로 10개월째 장수하던 ‘고고 예술 속으로’가 지난 1월 갑작스레 막을 내렸다. 강유미(23)씨는 동갑내기 안영미씨와 함께 기발한 상상력으로 ‘고고 예술 속으로’를 인기 코너로 만들었다. 강씨는 “조금 더 연명할 수도 있었지만,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고 예술 속으로’는 끝났지만 그의 개그는 ‘고’하고 있다. 강씨는 요즘 ‘봉숭아 학당’에서 ‘강 기자’로 등장해 웃음을 선사한다. 그의 연기는 성별을 넘나들 때 유난히 빛난다. 그가 걸걸한 목소리로 남자 흉내를 내면 웃음보가 터진다. 오죽하면 정경미씨는 “나는 유미가 여자 연기를 할 때 제일 웃기다”고 했겠는가. 그의 능청스러운 남자 연기는 여중, 여고의 연극반에서 시작됐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백화점 계산대를 지켰다. 하지만 백화점 계산대는 엽기적인 상상력의 주성치 마니아를 잡아두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그는 <소림축구> 개봉일에 주성치 티셔츠를 입고 영화관을 찾은 주성치 마니아다. 그에게는 언젠가는 주성치처럼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 그의 올해 목표는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하는 일이다. 만화 스토리 작가도 해보고 싶다는 오랜 꿈도 품고 있다.

강씨는 <폭소클럽>의 ‘여자 이야기’, <개그콘서트>의 ‘마이 걸’ 등을 통해서 남성에 대한 풍자를 이어왔다. 언제나 여성 파트너들과 함께였다. 그는 “남자 선배에게 ‘여자들끼리 개그 짜지 마라’는 충고를 들은 적도 있다”며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나조차 여자들끼리 하는 것이 두렵고 꺼려졌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폭소클럽>의 개그 경연장인 ‘록키&루키’에서 개그우먼들이 개그맨들을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그는 안영미씨와 함께 안티 성폭력 페스티벌 ‘포르노, 포르나’ 무대에도 올랐다. 그래서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들을 ‘페미’라고 비난하는 악플이 아직도 심심찮게 달린다. 그는 “이제는 남자들과 같이 팀을 해보려고 한다”면서도 “그런 비난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개그우먼들끼리 아이디어를 내다가 “이거 위험한데”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웃다가 가끔 ‘그 많은 개그우먼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때때로 ‘뜨는’ 개그우먼들은 있었지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걸음을 내디딘 이들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랫동안 함께 걷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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