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발길 허락치 않던 자라섬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예술과 자연의 속삭임…5년간 야외 설치미술해 온 바깥미술회의 ‘섬, 감추기-드러내기-있게 하기’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경기도 가평에 있는 자라섬이 겨울 찬바람 속에서 어김없이 ‘바깥미술’을 맞았다. 가평에서 남이섬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강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자라섬은 크기로 따진다면 남이섬보다도 넓다. 아무리 46번 국도의 풍광이 좋다 해도 자라섬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자라섬이 우리 곁의 섬으로 다가온 것은 지난해 바깥미술이 그곳에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당시 자라섬은 진입로조차 없어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깥미술 사람들은 매서운 강바람과 살얼음을 뚫고 들어가야 했다.
대성리·제부도·난지도를 지나…
올해도 자라섬은 야외 설치미술을 하는 미술인들 모임인 ‘바깥미술회’(회장 최성렬·www.baggat.net)에 쉽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 지난 2월11일 전시 개막을 앞두고 작품을 설치하려는 미술인들의 발길을 수북이 쌓인 눈으로 막았다. 오랜 단절로 상처 입은 자라섬의 자존심은 진입로만으로 풀어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끝내 제 모습을 가리려던 자라섬의 ‘감추기’는 바깥미술 사람들의 ‘드러내기’에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자연이 선물한 흰옷을 살짝 걷어낸 자리엔 무덤덤한 자라섬의 속살이 드러났고, 이내 자연을 벗하는 작품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다.
애당초 바깥미술 사람들이 열린 자연 속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25년 전 바깥미술 사람들이 자연을 주제로 기획전을 마련하면서 직접 생태순환의 고리 속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맞닥뜨린 현장이 대성리 화랑포 강변이었다. 겨울 대성리전으로 유년기를 보낸 뒤, 바깥-대성리전으로 청년기를 맞았을 때 바깥미술의 흔적을 간직한 대성리는 그들만의 대성리가 아니었다. 유희의 맛에 길들여진 대성리는 사유화의 진통에서 헤어나올 길이 보이지 않았다. 바깥미술 사람들의 겨울 대성리는 서러웠다.
이전에도 바깥미술 사람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야성을 키웠다. 경복궁 내 야외 전시장의 ‘역사와 환경전’(1997), 제부도 갯벌의 ‘스스로 살아 숨쉬는 땅전’(1999), 난지도의 ‘버려진 섬, 치유의 땅전’(2002) 등으로 새길찾기를 모색한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거처는 그곳이 아니었다. 어느 날 문득 자라섬의 속살을 발견한 바깥미술 사람들은 열림과 닫힘을 거듭하는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장마철에 물에 잠겼다가 드러나면서도 생명체 진화의 누적물이 가득한 자라섬은 사유화의 덫에 걸릴 위험도 없었다.
지난해 이맘때 바깥미술은 ‘자연, 그 열림과 닫힘’으로 자라섬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해에는 ‘섬, 감추기-드러내기-있게 하기’로 가냘픈 땅의 섭리를 보여준다. 만일 생태와 환경 등의 거창한 개념에 사로잡힌다면 토실한 자연의 감흥이 줄어들 수도 있다. 그저 마음 밭에 풀 잎사귀 하나 뒹굴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46번 국도를 따라가는 게 좋다. 그래야만 작품이 전하는 소리 없는 외침에도 귀를 세울 수 있다. 자라섬에 발을 들여놓으며 살아 있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가평행의 여운은 쉽게 지워지지 않으리라.
바깥미술 25년. 왕성한 청년의 기운이 역력하다. 아직도 저마다의 방식에 갇힌 예술을 풀어서 연대성을 회복하겠다는 다짐은 처음 그대로다. 들판의 넓이, 언덕의 기복, 강물의 흐름에서 조형의 언어를 읽어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다. 오는 2월26일까지 자라섬에 가면 바깥미술회 회원작가 14명과 초대작가 25명 등 모두 39명의 작가가 전하는 자연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전업작가로 나선 강리나씨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바깥미술이 있는 자라섬은 언제까지 자연의 생기를 간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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