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내가 반해버린 문장]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록 2006-02-17 00:00 수정 2020-05-03 04:24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다산초당 펴냄)

광고

백석의 밤에도 눈이 푹푹 날리고, 우리의 밤에도 눈이 오지게 내렸다. 백석의 나타샤는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나타샤는 침이 흥건한 노래방 마이크처럼 끈끈하고 슬프다. 이런 밤에, 백석은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자고 외쳤지만, 우리는 그만 스키장으로 변한 도로에 갇혔다. 그래서 응앙응앙 우는 흰 당나귀 소리 대신 초조해 미칠 것 같은 경적 소리를 듣는다. 학창시절, 백석의 시는 그가 늘 동경하고, 때로는 모방한 러시아 시인들보다 무게가 없고 감상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 어린아이 같은 시인에게 뭔가 애틋한 것이 있음을 느낀다. 그건 나이가 들수록 백석의 밤에서 멀어지기 때문일까.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