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에서 아시아 스타작가로 발돋움 중인 작가 황석영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성” 프랑스 팬이 꼽은 인기 비결
▣ 파리=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저는 인생에서 네 번 변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탐미적·내면적인 얘기를 많이 썼습니다.” 작가 황석영씨가 한마디 한마디 뱉어낼 때마다 옆에 서 있던 정은진씨가 부지런히 프랑스어로 통역했다. 황씨는 청년기에 이어 베트남전 참전, 방북, 수감생활 등 삶의 변곡점을 따라 달라진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 그리고 감옥에서 나와서는 세계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세계시민이 되겠다, 다시 말해 나와 한반도의 문제를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것입니다.” 황씨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30여 명의 프랑스인들은 하나같이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다. 숨을 죽이던 이들은 아시아 작가의 말이 끝나자 뭔가를 확인했다는 듯이 흡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지난 11월22일 저녁 파리 시내의 한 서점에서 열린 사인회는 프랑스에서 조금씩 뜨고 있는 한 이방인 작가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점 한켠엔 황씨의 번역작품이 진열돼 있었고, 2층 진열대 난간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황씨의 삶을 다룬 한국 방송의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왔다.
완성도 높은 번역본, 유럽의 베이스캠프
이날 사인회는 <오래된 정원>의 번역 출간에 맞춰 이뤄진 것이다. 황씨의 작품은 2002년 <삼포 가는 길>과 <한씨 연대기>가 처음으로 동시 번역 출간된 이후 <손님> <객지> <무기의 그늘> 등 이미 다섯 편이 번역돼 프랑스에서 판매되고 있다. 황씨의 작품은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 독일 등 세계 8곳의 나라에서 번역 출간됐다. 그 베이스캠프가 바로 파리다. 완성도가 높은 프랑스어 번역본이 기본 텍스트로 쓰인다.
불과 몇 년새 많은 나라말로 황씨의 작품이 빠르게 퍼져나간 것은 프랑스의 쥘마출판사와 상업출판 판권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한 덕분이다. 이 출판사는 이번 행사 기획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황씨의 작품을 홍보한다. 기존에 한국 작가들이 종종 해외에서 작품을 번역 출간했지만, 대부분 정부 지원이나 자비로 한 것이다. 그래서 대중성을 얻지 못한 채 곧바로 사라지곤 했다. 물론 이문열씨 정도가 비교적 알려졌지만, 대중성 면에서는 황씨에 견줘 처진다는 게 현지의 평가다. 황씨의 작품은 포켓판도 나올 정도로 대중성을 얻고 있다. <무기의 그늘>은 2천 부 이상이 팔렸다. 세르주 사프랑 쥘마 편집장은 “한국의 기준에서 볼 때 별것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프랑스와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며 “여기에서 누구의 어떤 책이 출간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직은 오에 겐자부로나 무라카미 류와 같은 일본의 유명작가들에 비해 한국 작가들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2002년 이후 한국이 더 많이 알려지면서 한국문학 작품의 판매 수도 덩달아 3~4배 늘었다고 한다. 세르주 사프랑 편집장은 황씨의 인기 비결의 원인을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성”에서 찾았다. 그래서 문화권이 다른 프랑스인들이 호기심을 유지하면서도 접근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이날 서점을 찾은 미슐레 퐁그씨는 “<한씨 연대기>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동아시아 문학인데도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씨의 사인회는 11월21~25일 파리 시내 곳곳의 서점에서 이뤄졌다. 때맞춰 10여 개에 이르는 프랑스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황씨는 내년 1월부터는 파리 제7대학 한국학과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머무를 예정이다. 황씨의 말마따나 그의 작품은 점점 많은 세계인들이 공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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