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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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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초인 ‘신돈’이 아깝다

등록 2005-12-02 00:00 수정 2020-05-03 04:24

전통사극의 전형성에 갇힌 주변 캐릭터들과 미묘한 부조화
공민왕 인물탐구 부족하고 민중들 소외시키면서 더 흔들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방송 드라마 <신돈>에는 세 부류의 여자가 존재한다. 한편에는 몽골의 기황후나 명덕태후처럼 자식이 권력을 잡는 것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여자들이 있고, 반대편에는 노국공주나 초선처럼 권력으로 세상을 바꿔보고자 하는 성인 남성을 적극적으로 돕는 현명한 여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덕녕공주처럼 남편이나 자식 없이 혼자 살면서 권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모두 권력을 욕망하고, 자식이나 남편이 그들의 욕망을 대리해주길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과 남편에 집착하면서도 때론 그들을 지독하게 몰아붙이기도 한다. 명덕태후는 아들이 사랑하는 며느리를 강제로 내쫓으려 하고, 반대로 노국공주는 공민왕에게 고려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버려도 좋다고 말한다. 권력에 초연한 듯한 덕녕공주조차 노국공주의 조언자로 고려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기황후의 강권에 따라 노국공주의 정황을 살펴야 하는 입장이다.

이런 여성들의 모습은 남성들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한편에는 오직 권력만을 욕망하는 기철이나 조일신 같은 사람들이 있고, 반대편에는 권력으로 세상을 ‘엎어버리’겠다는 신돈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상황에 따라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공민왕이나 원현 같은 존재와, 보우나 큰스님처럼 정치에서 한발 떨어진 듯하지만 권력을 움직이는 자들에게 조언자의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있다. <신돈>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간신배, 개혁가, 조언자처럼 분명한 역할이 정해져 있고, 그들은 캐릭터의 역할에 적합한 행동만을 극단적으로 반복한다. 수정공신임에도 공민왕이 권력을 잡은 지 불과 몇 달이 안 되어 쿠데타를 일으킨 조일신은 단지 권력에 눈먼 간신으로만 묘사될 뿐 그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전 김용에게 이야기한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서는 설명되지 않고, 보우나 큰스님 같은 인물들은 오직 선문답에 가까운 말들로 자기 생각을 전달한다.

간신배가 된 이유와 맥락은 없다

<신돈>에는 캐릭터의 행동과 그 행동이 추구하는 방향은 드러나되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잘 전달되지 않고, 그 때문에 캐릭터의 권력에 대한 자세는 현실에 대한 복잡한 고려가 아닌 개개인의 타고난 성향에 따른 것처럼 보인다. 충신은 죽어도 충신이고, 간신은 끝까지 간신이다. 시청자들이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면 적극적으로 캐릭터의 행동을 해석해서 그들의 의도를 알아내야 한다. 물론 이는 시청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두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 묘사는 <신돈> 고유의 특성과 부딪친다. 기존의 정통사극에서는 한 단면만 부각된 캐릭터들 간의 권력투쟁만으로도 드라마를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신돈>은 야심찬 개혁가인 신돈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되, 그의 운명을 좌우하는 존재는 우유부단한 공민왕이다. 그는 아예 개혁 의지조차 없는 왕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고려의 개혁을 완성시키지도 못했다. 하지만 <신돈>은 여전히 공민왕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조차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킨 조일신의 변명에 속아 그의 말대로 다른 신하들을 친다. 그러나 그에 앞서 묘사된 공민왕은 그런 거짓말을 의심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신돈>에서는 그가 알고서도 속은 척하며 정치적인 목적을 이룬 것인지,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인지 묘사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민왕은 때론 야심만만한 왕이 됐다가도 때론 기황후의 위압에 놀라 숨을 헐떡이는 연약한 인물이 된다. 이는 캐릭터의 다면적인 모습이지만, <신돈>에는 그가 왜 그런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한 맥락이 제거돼 있다. 그만큼 <신돈>의 캐릭터 묘사는 인물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할 때 종종 벽에 부딪친다. 특히 이런 식의 캐릭터 묘사가 <신돈>의 근본을 이루는 평범한 민중을 이야기에서 거의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내시 안도치나 지극히 평범한 덕운 스님에 대한 묘사에서 볼 수 있듯, 권력에서 멀어진 그들은 왕을 모시는 것이나 큰스님의 처사에 툴툴 거리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고, 권력 주변부의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돈>의 민중들은 기철 같은 간신에 의해 억압받거나, 고려의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정도로 묘사된다.

빼어난 미술, 비장한 스토리 아까워

민중을 위한 삶을 추구한 개혁가를 그리지만, <신돈>의 초점은 여전히 ‘삶’이 아닌 ‘권력’에 맞춰져 있고, 민중을 계도와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물론 이것은 <신돈>의 정하연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한 무거운 정통사극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신돈>의 주인공 신돈은 거의 초인에 가까운 인물이면서도 자신의 신분의 고뇌를 떨치지 못해 눈물까지 흘리는, 사극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존재다. 또한 그의 추종자이자 결국 그를 배신하는 원현 역시 평소에는 유약하나 대중이 들고일어설 때는 가장 앞장서 고려군에게 돌을 던질 만큼 상황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들이야말로 <신돈>이 추구하는 방향과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돈>이 가진 정통사극 속의 전형성은 이 두 캐릭터를 아직 제대로 품지 못한다. 빼어난 미술, 기존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인공, 그리고 요즘 사극에서 찾기 어려운 비장미 넘치는 스토리와 연기. 이 모든 장점을 가졌음에도 <신돈>이 더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그 미묘한 부조화 때문이 아닐까. 과연 신돈과 원현이 궁에 들어가 두 세계가 충돌하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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