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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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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가라사대] “한 번도 조센진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등록 2005-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 번도 조센진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중

▣ 김도훈/ 씨네21 기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친구가 경영하는 이대 앞 하숙집에 아가씨가 하나 들어왔는데 자리를 마련할 테니 꼭 만나보라는 전화였다. “일본 아가씨고 얼굴도 예쁘고 참하다더라. 게다가 부모님은 동경에서 공무원 하신다네. 꼭 만나봐라.” 선천성 소개팅 공포증에 시달리는 나는 절대 싫다 버럭버럭 역정을 냈지만, 연애하는 기미도 없이 나이만 처먹은 아들을 어떻게든 보내려는 엄마의 마음도 눈물겹긴 하다. 물론 “부모님은 동경에서 공무원”에 조금 더 방점이 실린 듯도 하지만, ‘정 안 되면 일본 아가씨라도’는 분명 아니었다. 엄마나. 우리 엄마 이 정도면 탈민족주의 리버럴이야. (흐뭇) 연수 시절 알고 지낸 친구는 일본 아가씨와 속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더랬다. 결혼할 거냐는 내 말에 그의 얼굴에는 태극무늬 그늘이 드리웠다. “일본 여자랑 사귀는 거 알면 아버지한테 죽는다, 나.” 그래서 지금 리버럴한 부모 둔 걸 공개적으로 자랑하느냐. 아니다. 그저 나의 후천성 민족개념 결핍증을 깨달은 어머니께서 “파란 눈에 금발이라도 좋다”고 하실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이다. 뭘 위해 노력하냐고? 당연히 세계평화지. 인종과 민족주의를 넘어선 세계평화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법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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