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얼굴의 여자, <오로라 공주>에선 잔혹하기는 했되 치명적이진 않아
댄스가수 시절의 그 섹시함과 요염함으로 스크린의 팜프파탈이 되기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엄정화는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가수 엄정화가 ‘팜므파탈’에 가깝다면, 배우 엄정화는 ‘자립 여성’에 어울린다. 어쩌면 엄정화의 얼굴은 세 개다. 영화배우 엄정화는 발랄한 독신 여성이지만, 탤런트 엄정화는 조신한 여성에 가깝다. 엄정화처럼 가수와 배우 이미지의 간극이 넓은 연예인도 찾기 힘들다.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시작은 비교적 미약했으나 갈수록 창대해진 엔터테이너도 찾기 힘들다. 지난 10월27일 개봉한 <오로라 공주>에서 엄정화가 연쇄살인범 정순정 역할을 맡았다고 알려졌을 때, <오로라 공주>의 포스터에서 가죽코트를 걸치고 검은 장갑을 벗는 엄정화의 모습을 보았을 때, 마침내 이미지의 통일이 이루어지나 기대했다. 팜프파탈 엄정화의 스크린 현현을 기대했다. 하지만 유괴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대신하는 어미 정순정은 잔혹하기는 했으되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모성애’라는 조건이 엄정화의 도발을 살리기에는 제약처럼 보였다.
사랑의 아름다운 불가능성과 ‘게이 아이콘’
엄정화는 원래 가수였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가끔씩 잊혀진다. 데뷔는 영화가 먼저였다. 1992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하지만 영화도, 배우도 주목받지 못했다. 가수 엄정화의 출발은 배우 엄정화의 시작보다 좋았다. 93년 <눈동자>로 괜찮은 데뷔식을 치렀다. 96년 <하늘만이 허락한 사랑>으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97년에 발표한 3집 <배반의 장미>. 지지부진했던 발라드 가수는 섹시한 댄스가수로 변신했다. 공전의 히트였다. 98년 4집에서는 <포이즌> <초대>가 잇따라 히트했다. 다음해 <몰라>
가수 엄정화가 저무는 사이 배우 엄정화가 뜨기 시작했다. 엄정화는 2001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 역으로 인상적인 스크린 복귀식을 치렀고, 2003년에는 <싱글즈>의 동미 역으로 흥행과 호평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한편 2004년에는 브라운관으로 돌아와 <12월의 열대야>로 시청자를 웃기고 울렸다. 배우 엄정화의 창대한 나날이 시작됐다. 하지만 배우에 주력하는 사이 가수로는 흔들렸다. 2004년 3년 만에 발표한 야심작
가수 엄정화는 ‘배반의 장미’였다. 그는 90년대 한국 공중파 방송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팜프파탈이었다. 섹시함이 도를 넘지 않게
노래의 주제는 대개 윤리를 벗어난 사랑이었다. 그리고 대개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사랑의 끝에 서 있었다. 끝날 줄 알면서도 사랑을 시작했지만(“오늘이 올 줄 알고 있었어. 우리 사랑 끝나는 날”
배우 엄정화는 자립생활 여성이었다. 미혼모가 돼도(<싱글즈>), 유부녀로 나와도(<결혼은, 미친 짓이다>), 결혼하고 싶은 노처녀여도(<홍반장>), 숙맥인 총각 형사를 희롱하는 발랄한 이혼녀 의사 역을 해도(<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그에게서는 독립적인 여성의 ‘향기’가 난다. 반드시 경제적 자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력은 기댈지언정 정서적으로 의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늙어서도 죽지 않는 마돈나나 셰어처럼
<싱글즈>의 동미는 먹고살 길은 막막하지만 자신을 임신시킨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는 어차피 조건을 보고 결혼한 의사 남편에게서 정서적 의지처를 구하지 않는다. 차라리 동성 친구에게 기대거나 옛 애인과 비밀스런 옥탑방을 마련한다. 반면 탤런트 엄정화는 조신했다. <아내>(2003)에서는 가수 엄정화의 이미지와 가장 멀리 떨어진 역할을 했다.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지만, 남편이 기억을 회복해서 떠나버리는 비련의 여인 역할이었다. 그 다음 <12월의 열대야>에서 연하의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깜찍한 아줌마를 연기했다. 이렇게 탤런트 엄정화는 영화배우 엄정화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누가 뭐래도, 엄정화의 매력은 도발적인 섹시함이다. 그래서 가수 엄정화의 요염한 이미지를 스크린에서도 ‘꼭 한 번 보고 싶다’. 더 바란다면, 마돈나 혹은 셰어처럼 ‘늙어도 죽지 않는’ 여가수로 살아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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