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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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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여, 더 도발하라

등록 2005-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세 얼굴의 여자, <오로라 공주>에선 잔혹하기는 했되 치명적이진 않아
댄스가수 시절의 그 섹시함과 요염함으로 스크린의 팜프파탈이 되기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엄정화는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가수 엄정화가 ‘팜므파탈’에 가깝다면, 배우 엄정화는 ‘자립 여성’에 어울린다. 어쩌면 엄정화의 얼굴은 세 개다. 영화배우 엄정화는 발랄한 독신 여성이지만, 탤런트 엄정화는 조신한 여성에 가깝다. 엄정화처럼 가수와 배우 이미지의 간극이 넓은 연예인도 찾기 힘들다.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시작은 비교적 미약했으나 갈수록 창대해진 엔터테이너도 찾기 힘들다. 지난 10월27일 개봉한 <오로라 공주>에서 엄정화가 연쇄살인범 정순정 역할을 맡았다고 알려졌을 때, <오로라 공주>의 포스터에서 가죽코트를 걸치고 검은 장갑을 벗는 엄정화의 모습을 보았을 때, 마침내 이미지의 통일이 이루어지나 기대했다. 팜프파탈 엄정화의 스크린 현현을 기대했다. 하지만 유괴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대신하는 어미 정순정은 잔혹하기는 했으되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모성애’라는 조건이 엄정화의 도발을 살리기에는 제약처럼 보였다.

사랑의 아름다운 불가능성과 ‘게이 아이콘’

엄정화는 원래 가수였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가끔씩 잊혀진다. 데뷔는 영화가 먼저였다. 1992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하지만 영화도, 배우도 주목받지 못했다. 가수 엄정화의 출발은 배우 엄정화의 시작보다 좋았다. 93년 <눈동자>로 괜찮은 데뷔식을 치렀다. 96년 <하늘만이 허락한 사랑>으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97년에 발표한 3집 <배반의 장미>. 지지부진했던 발라드 가수는 섹시한 댄스가수로 변신했다. 공전의 히트였다. 98년 4집에서는 <포이즌> <초대>가 잇따라 히트했다. 다음해 <몰라> <cross>로 인기가 이어졌다. 가수 엄정화의 전성기였다. 2000년 6집에 실린 화려한 선율의 <escape>는 대중에게는 조금 어려운 노래였고, 2001년 7집의 가벼운 댄스곡 <다가라>는 대중적인 코드를 강화했지만 힘이 부쳤다.


가수 엄정화가 저무는 사이 배우 엄정화가 뜨기 시작했다. 엄정화는 2001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 역으로 인상적인 스크린 복귀식을 치렀고, 2003년에는 <싱글즈>의 동미 역으로 흥행과 호평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한편 2004년에는 브라운관으로 돌아와 <12월의 열대야>로 시청자를 웃기고 울렸다. 배우 엄정화의 창대한 나날이 시작됐다. 하지만 배우에 주력하는 사이 가수로는 흔들렸다. 2004년 3년 만에 발표한 야심작 <self control>은 엄정화 팬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대중에게는 외면을 당했다. 한 장에는 일렉트로니카를, 또 한 장에는 대중적인 댄스곡을 담은 더블 앨범은 아티스트로서 야심과 인기가수로서 욕망을 모두 담은 비장의 카드였다. 어쩌면 가수 엄정화의 마지막 승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범 판매는 부진했다. 한국에서 ‘여자’ 댄스가수로 나이 들어가기란, 하늘에서 별따기란 사실을 씁쓸하게 확인해야 했다. 배우는 나이 들수록 빛이 날 수도 있지만, 가수는 나이 들수록 빛을 잃기 십상이다. 아직 한국의 연예 풍토는 그렇다. 그리고 엄정화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새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
가수 엄정화는 ‘배반의 장미’였다. 그는 90년대 한국 공중파 방송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팜프파탈이었다. 섹시함이 도를 넘지 않게 <festival> 같은 상큼발랄 댄스곡으로 쉬어가는 페이지도 마련했다. 하지만 그것은 ‘디저트’였다. 가수 엄정화의 무기는 무엇보다 요염함이었다. 손끝의 놀림으로 승부하는 춤도, 남성 백댄서를 희롱하는 연출도 섹시했다. 그리고 그는 자주 “모두를 속여가며 사랑”(<배반의 장미>)을 했다. 그 사랑은 “세상이 욕하는” 사랑이었고, “이불 속에 묻고 싶은 사랑”(<cross>)이었으며, “하늘만이 허락한 사랑”이었다.


노래의 주제는 대개 윤리를 벗어난 사랑이었다. 그리고 대개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사랑의 끝에 서 있었다. 끝날 줄 알면서도 사랑을 시작했지만(“오늘이 올 줄 알고 있었어. 우리 사랑 끝나는 날”<poison>), 끝나고 나서도 용서를 빌지는 않는다(“날 숨겨줘 어디라도 용서받지 못할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cross>). 물론 “3자 대면”의 삼각관계다. 그래서 “그녀”가 등장한다. 사랑이 끝났지만 사랑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사랑하긴 했었니”라고 의심하고, “모두 가진 그녀는 행복하니?”(<escape>)라고 따진다. 물론, 먼저 차였더라도 혼자 당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잊고 돌아가 그녀 품으로”(<배반의 장미>)라고 배반을 되돌려준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다른 남자를 ‘초대’한다. 이처럼 엄정화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달콤하게 노래하지 않고, 사랑이 결국은 비극이어서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사랑의 아름다운 불가능성은 엄정화 노래의 주제였다. 그래서 엄정화는 한국의 게이 아이콘(Gay Icon)이 됐다. 게이들처럼 사랑에 집착하면서도 사랑의 불가능성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사람들도 드물기 때문이다. 게다가 ‘팜므파탈’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게이들의 편애를 받아왔다. 게이들은 엄정화에게서 마돈나를 느꼈다. 마침 가수 엄정화의 전성기는 한국에서 게이 댄스클럽이 막 생겨났던 시기와 겹쳤다. 당시 게이 클럽에서 엄정화는 가장 자주 플레이되는 가수였다.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의 춤동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군무’가 펼쳐졌다. 다행히 엄정화는 노래를 ‘너무’ 잘하지 않는다. 끈적이는 창법으로 목청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고, 때때로 촉촉하다. 그래서 흐느적거리는 선율과 끈적이지 않는 보컬은 매끈한 균형을 이룬다. 엄정화의 목소리는 질리지 않는다. 그것이 댄스가수로 드물게 장수한 비결이었다.
배우 엄정화는 자립생활 여성이었다. 미혼모가 돼도(<싱글즈>), 유부녀로 나와도(<결혼은, 미친 짓이다>), 결혼하고 싶은 노처녀여도(<홍반장>), 숙맥인 총각 형사를 희롱하는 발랄한 이혼녀 의사 역을 해도(<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그에게서는 독립적인 여성의 ‘향기’가 난다. 반드시 경제적 자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력은 기댈지언정 정서적으로 의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늙어서도 죽지 않는 마돈나나 셰어처럼



<싱글즈>의 동미는 먹고살 길은 막막하지만 자신을 임신시킨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는 어차피 조건을 보고 결혼한 의사 남편에게서 정서적 의지처를 구하지 않는다. 차라리 동성 친구에게 기대거나 옛 애인과 비밀스런 옥탑방을 마련한다. 반면 탤런트 엄정화는 조신했다. <아내>(2003)에서는 가수 엄정화의 이미지와 가장 멀리 떨어진 역할을 했다.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지만, 남편이 기억을 회복해서 떠나버리는 비련의 여인 역할이었다. 그 다음 <12월의 열대야>에서 연하의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깜찍한 아줌마를 연기했다. 이렇게 탤런트 엄정화는 영화배우 엄정화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누가 뭐래도, 엄정화의 매력은 도발적인 섹시함이다. 그래서 가수 엄정화의 요염한 이미지를 스크린에서도 ‘꼭 한 번 보고 싶다’. 더 바란다면, 마돈나 혹은 셰어처럼 ‘늙어도 죽지 않는’ 여가수로 살아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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