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가도 황톳길>(지문사 펴냄, 김창직 편저)
아주 옛날 우리 집엔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막내 외삼촌과 기름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난다는 공장 노동자 사촌형이 교대로 자던 곳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낮이 되면, 온갖 신기한 물건이 먼지와 함께 쌓여 있는 그곳에 고양이처럼 기어들어가곤 했다. 방구석에 구겨져 있는 온갖 책들도 내 탐험의 대상이 되었다. 어려서는 사진책이나 무협지들을 설렁설렁 구경했고, 좀더 머리가 굵어져서는 글자들이 작은 책으로 옮겨갔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그 집을 떠나기 직전에 내가 읽은 것은 <가도 가도 황톳길>이라는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평생 장사로 잔뼈가 굵은 아버지의 책은 아닐 테고, 문학소년이었던 삼촌의 책일 듯싶다. 시인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함께 나는 이 한 문장에 매료됐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좁은 창문으로 한낮의 햇살이 가득 차오는 방, 그리고 부연 먼지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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