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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의 흥행, 도박사는 알까

등록 2005-09-15 00:00 수정 2020-05-03 04:24

스타시스템과 새 마케팅 전략으로 뉴욕에선 디즈니 흥행신화 이어갔지만
과연 한국의 뮤지컬 시장에서도 가족들이 손잡고 보러오게 할 수 있을까

소문이 무성하던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Aida)가 마침내 막을 올렸다. 130억원의 막대한 제작비, 컨테이너 7대 분량의 세트와 소품, 장장 8개월간 지속될 공연 기간 등 <아이다>는 이제까지 우리 뮤지컬 시장에서 만나지 못했던 대규모 도전을 할 것이다. 벌써부터 관계자들 사이에는 이 과감한 실험의 성패에 대한 갖가지 예측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사는 한 가지 사안으로 귀결된다. <아이다>의 한국 공연, 과연 성공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모른다’는 말이 정답일 것이다. 아니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더 적합하겠다. 막을 올렸으니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성에 대한 저마다의 비평은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겠지만, <아이다>의 성패는 이것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데에 사안의 복잡성이 있다. 그러니까 시장적 환경에 따른 변수가 많아 흥행 결과를 예측하는 함수 공식의 경우의 수가 천차만별이라 섣부른 예측을 내놓기 어렵다는 의미다.

초등학생에서 중·고생으로 옮긴 수준?

<아이다>는 디즈니가 지난 2000년 발표한 작품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뮤지컬적 요소가 가미된 가족 대상의 만화영화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어온 디즈니가 뮤지컬 무대로 활동영역을 넓힌 것은 <미녀와 야수> <라이언 킹>에 이어 <아이다>가 세 번째다. 물론 동명 타이틀의 세계적 오페라인 G. 베르디의 <아이다>를 각색한 것인데, 영국의 싱어 송 라이터인 엘튼 존과 대표적 극작가인 팀 라이스가 현대적 이미지의 작품으로 완전히 재구성한 것이 주요한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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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다>가 이들 콤비의 첫 작품은 아니다. 이미 <라이언 킹>의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작업 등을 통해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 이들이 만든 주제곡 <서클 오브 라이프>는 1994년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거머쥐는 등 환상의 조합을 이뤄냈다. 만화영화 <라이언 킹>의 성공에 힘입어 1997년 디즈니는 다시 10여곡을 추가해 각색한 무대용 뮤지컬 <라이언 킹>을 발표한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 형형색색의 의상과 조명, 기발한 소품 활용 등으로 뮤지컬 <라이언 킹>은 만화영화 못지않은 큰 인기를 누렸으며, 이듬해인 1998년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토니상에서 연출, 무대 조명, 의상, 세트, 최우수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뮤지컬 <아이다>는 바로 이 <라이언 킹>의 성공에 고무된 디즈니사와 작곡·작사가인 엘튼 존, 팀 라이스가 다시 한번 새로운 아프리카 민속 리듬을 살린 뮤지컬 제작에 의기투합한 데서 비롯됐다.

특히 <아이다>는 디즈니의 전작들과는 달리 만화영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뮤지컬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디즈니의 첫 시도라는 데 의의가 있다. 디즈니의 뮤지컬은 가족 마케팅의 산물이라는 공식을 넘어 디즈니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시도한 것도 특색 있다. 물론 이러한 관객층의 상향 조정이 타깃을 초등학생에서 중·고생으로 옮긴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화려한 패션쇼에서 격정적인 안무, 원색 조명 등을 적절히 사용해 다채로운 시도를 선보인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무명 배우를 기용해 등장인물의 개인적 매력보다 보편적인 감각의 글로벌한 문화상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겨냥하던 기존의 전략을 버리고, 스타 시스템을 도입해 대중적 인지도 확산을 시도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초연 무대를 꾸미던 헤더 헤들러는 뮤지컬 전문 배우였지만, 그의 바통을 이은 것은 토니 브랙스턴이나 데보라 콕스 등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흑인 여가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적 호기심에만 의존해 완성도를 잃었다는 등 뮤지컬 애호가들에게서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3년여 동안 브로드웨이 공연을 지속하는 인기를 누리며 디즈니 뮤지컬의 흥행 불패 신화를 계승하게 됐다. 우리 무대에서 미소녀 그룹 ‘핑클’의 멤버였던 옥주현이 타이틀 롤을 맡게 된 것도 이같은 디즈니식 스타 시스템의 한국적 적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뮤지컬이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길

하지만 디즈니의 이러한 실험이 한국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예측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가족 뮤지컬 시장의 수요에 관한 것이다. 비록 성인 뮤지컬을 표방했지만 디즈니의 작품은 여전히 뉴욕을 찾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장미 흐르던 오페라 원작에 윤회사상을 덧씌워 현세와 전생의 시공간을 삽입함으로써 그 진지함을 희석시킨 것도 그러하거니와,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에서 빠지지 않는 발랄하고 모험심 넘치며 도전적인 신세대 이미지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등 ‘디즈니식 흥행 공식’은 이 작품에도 충실히 적용됐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이라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디즈니 가족물의 철칙은 <아이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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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의 복잡성은 이런 가족물을 소비하는 관객층이나 제반 여건이 우리 극장가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최근의 경향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우리나라 뮤지컬 공연가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가의 입장권 가격으로 인해 주요 관객층은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에게 치중돼 있으며, 이로 인해 뮤지컬 시장이 더욱 고급화·대형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감동은 적지만 깔끔하게 잘 포장된 문화상품을 통해 보편적·대중적 성향의 가족 단위 관객들에게 소구하는 디즈니식 뮤지컬은 따라서 작품의 완성도 못지않게 아직까지 우리 시장엔 없는 새로운 가족 단위 관객층의 개발, 그 수요의 창출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가족이 함께 손잡고 극장을 찾는 문화소비 행태의 형성 여부, 또 가족 단위의 관객이 극장을 찾을 때 금전적으로 수용이 가능한 수준에서 입장권 가격이 정해질지의 여부 등이 흥행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마케팅 측면에서 이러한 수요 창출이나 시장 육성에 대한 적극적인 유도와 지원책은 아직 우리 극장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제작자나 정책 입안자 모두 아직 뮤지컬을 산업적 측면에서 고민하거나 전략을 세우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그저 막연히 예술과 산업의 중간 어디쯤으로 뮤지컬 시장을 바라보는 사고의 안일함은 치밀하지 못한 사업성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시장의 전체적인 성장에도 별반 도움을 주지 못하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작품에 따른 타깃의 정밀한 분석, 시장 테스트를 거친 수요 예측 등이 없다면 산업으로서 뮤지컬이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여지는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막은 올랐고, 장거리 경주는 시작됐다. 애호가 입장에서야 또 하나의 흥행 신화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시장 여건만 놓고 보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얻을 시장에 대한 교훈이 얄팍한 수준에 머무르는 것만은 경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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