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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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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별별 사람들의 별별 이야기

등록 2005-09-08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가인권위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에 담긴 ‘차별에 대한 유쾌한 풍자’
그로테스크한 <그 여자네 집> 외모차별 발랄하게 꼬집는 <육다골대녀> 등 6편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별별 이야기>에는 별별 사람들이 모여서 별별 주제로 만든 별별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별별 이야기>는 국가인권위가 제작한 장편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다. 인권위는 2003년 극영화 <여섯개의 시선>을 제작한 데 이어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별별 이야기>와 <여섯개의 시선>을 관통하는 주제는 ‘차별’이다. 성차별, 인종차별, 외모차별 등 ‘각종’ 차별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권 주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강·박재동 등 참여, 꼬박 2년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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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별별 사람들이 다 모였다. <마리 이야기>를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표적 작가 이성강 감독부터, <한겨레>에서 촌철살인의 만평을 그렸던 박재동 화백, <강아지똥>으로 도쿄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2003)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권오성 감독, 2000년 <언년이>로 대한민국영상대전 특별상을 수상한 유진희 감독, <여고괴담3: 여우계단>의 일러스트를 그려 주목받는 신예작가로 떠오른 이애림 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전공을 갓 마친 5명의 신예작가까지, 애니메이션계의 중견과 신예들이 모여 각각 1편씩 총 6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별별 작가들은 별별 주제를 다 다루었다. <낮잠>(유진희)은 장애인 차별, <동물농장>(권오성)은 소수자 차별, <그 여자네 집>(김준 등 5인 프로젝트)은 남녀 차별, <육다골대녀>(肉多骨大女·이애림)는 외모 차별, <자전거 여행>(이성강)은 이주노동자 차별, <사람이 되어라>(박재동)는 학력 차별을 다룬다. 이처럼 각종 차별에 대한 별별 이야기 덕에 <별별 이야기>를 보고 나면 웬만한 차별 현안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더구나 별별 작가들이 제각각 선보이는 별별 기법을 감상할 수 있다. <동물 농장>은 점토인형을 이용한 클레이 기법, <그 여자네 집>은 손으로 일일이 그린 드로잉 기법, <사람이 되어라>는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했고, <낮잠>과 <자전거 여행>은 셀과 드로잉 기법을 함께 썼다. <육다골대녀>는 디지털 컷 아웃 기법으로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차별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함께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기법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섬세한 이야기와 다양한 기법으로 공들여 만드느라 제작기간도 꼬박 2년이 걸렸다.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는 6편의 작품이 독특한 뒷맛을 남긴다. 특히 <육다골대녀>는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그 여자네 집>은 누군가의 갑갑한 일상을 찬찬히 보고 난 듯한 먹먹한 울림을 남긴다. <그 여자네 집>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맞벌이 부부인 그 여자는 밤에는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아침에는 밥상을 차리느라 전쟁을 치른다. 그리고 출근을 한다. 하지만 어느 날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회사를 결근하게 된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여전히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여자는 청소를 한다. 그 여자가 미는 진공청소기는 빨랫감을, 가구를 차례로 빨아들인다. 마침내 남편까지 빨아들인다. 그리고 그 여자가 새 집을 페인트칠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원근감을 파괴한 그림이 ‘그 여자’의 절망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 여자네 집>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부를 만한 미학을 보여준다.

<육다골대녀>는 <그 여자네 집>의 맞은편에 서 있다. 설정부터 발랄하다. 고조할머니대로 거슬러 올라가 외모 차별의 기원을 따져본다. ‘우울한 외모’가 유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어떻게 큰 머리에 짧은 자라 목, 통뼈에 아톰 다리를 물려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우울한 외모’의 역사적 기원에 이어 ‘열악한’ 외모가 어떤 현실을 겪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바람기로 재산을 날려버렸다”고 하면 진짜 집채가 바람에 날아가는 장면처럼, 발랄한 만화적 상상력이 진지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애림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약간의 과장을 섞어가면서” 다루었다고 한다. <여섯개의 시선>에서 임순례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로 외모 차별을 다룬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고릴라·원숭이·양의 얼굴을 한 고3

이 밖에 4편도 고른 수준을 자랑한다. <낮잠>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낮잠>은 장애인 딸과 그의 아버지가 낮잠을 자면서 꾸는 꿈을 통해 장애인이 겪는 차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집을 판 돈이 날아가 의족으로 변하는 판타지는 자칫 교과서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동물농장>은 양의 무리에 섞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염소의 이야기를 통해 소수자 차별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이를 권력으로 삼는 일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지를 동물들의 우화를 통해 드러낸다. <자전거 여행>은 영혼이 주인공이다. <자전거 여행>은 타는 사람 없이 홀로 달리는 자전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자전거 주인의 존재가 왜 지워졌는지를 찬찬히 훑는다. 주인의 부재는 구체적인 인물의 죽음뿐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지워진 존재라는 이중의 의미만을 획득한다. <사람이 되어라>의 고3 교실은 진짜 동물농장이다. 학생들은 고릴라, 원숭이, 양 등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정말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학생들의 현실을 동물의 얼굴을 통해 유쾌하게 비틀어 보여준다. ‘차별에 대한 유쾌한 풍자’라는 <별별 이야기>의 부제처럼, ‘If you were me: anima vision’이라는 영어 제목처럼, 즐겁게 웃다 보면 차별이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9월23일부터 시네코아, 하이퍼텍 나다 등 전국 10개 영화관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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