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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금자씨에 어린 크리스티의 그림자

등록 2005-08-03 15:00 수정 2020-05-02 19:24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오마주를 바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영화 <고스포드 파크>와 <스위밍 풀>에서도 애거서크리스티가 보이네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후반부 반전은 제목에 들어 있었다. 금자씨는 과연 친절했다. 금자씨는 13년을 키워온 복수의 칼자루를 다른 이(들)에게 넘기고 만다. 금자씨는 자신의 복수보다는 살인범의 피해자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은 ‘떼복수’였다. 그런데 이 ‘떼복수’의 방법은 어디서 본 것 같다. <친절한 금자씨>를 본 많은 이들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떠올렸을 것이다. 금자씨의 ‘친절한’ 살해 방법이 크리스티 작품의 살해 방법과 똑같은 것이다. 둘 다 절대악에 대한 사적 처벌 형식이다. ‘누구의 칼에 목숨이 끊긴지 모르게’ 공동이 책임을 지기 때문에 죄책감은 줄어든다. 크리스티의 소설이 전통 추리소설처럼 역추적을 통해 살해 방법을 ‘발견’한다면 영화에서는 금자씨가 처형 방법을 ‘제안’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살해 방법에만 있지 않다.

살해 방법, 형사의 묵인…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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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피살자인 카세티는 유괴살인범이다. <친절한 금자씨>의 피살자인 백 선생은 유괴살인범이다. 카세티는 아이를 유괴한 뒤 경찰에게 꼬리가 잡힐 것 같으면 아이를 죽이고 돈을 뜯어낸다. 백 선생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유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살해하고는 돈을 뜯어낸다. 카세티는 그런 식으로 여러 아이를 유괴살해한다(정확하게 몇명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백 선생은 4명을 유괴살해했다. 카세티는 암스트롱 집안의 아이 유괴살해로 법정까지 가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재판만 제대로 됐다면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백 선생은 원모를 죽인 뒤 금자씨를 협박해 자신이 유괴살해범이라고 자백하라고 한다. 만약 수사만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이 ‘폐교의 모의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 뒤 세 건의 유괴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열두명의 관련자들은 열두명의 배심원이 되어 판결을 내리는데 이런 방식은 정의롭지 못한 법체계를 대신해서다. 푸아로는 사악한 악인을 처벌한 이들의 복수를 묵인하고 경찰에 보고할 해결책을 제시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이 징계의 현장에 원모 유괴 사건의 담당형사가 참여해서 이 처형에 ‘법적 공인 절차’를 더한다.

이러한 세부적인 아귀맞춤은 <친절한 금자씨>가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바치는 오마주(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몇 가지 사실을 슬쩍 끼워넣기도 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카세티는 무죄 방면 뒤 꿰찬 돈으로 ‘해외여행’을 하며 점잖은 사람으로 행세하며 살았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백 선생이 돈을 모은 것은 “배를 사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배는 분명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개인선박일 것이다. 이 다소 뜬금없는 대사를 고집한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추리기법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 <올드 보이>는 오대수가 감금의 이유를 쫓아가는 스토리라인이다. 추리소설의 백미랄 수 있는 마지막 ‘범인 폭로’의 순간처럼 영화의 결말도 충격적이고 놀랍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추리기법을 사용해서 남과 북의 우정과 무의식적 적의를 비극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두 작품과 달리 원작 없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감독은 자신이 사숙한 추리소설과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오마주를 바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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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흔적을 더 쫓아가보자. 크리스티(1890~1976년)는 생전 단편소설 147편, 장편소설 90편, 희곡 15편을 남겼다. 1920년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부터 마지막 작품이자 걸작인 1975년 <커튼>까지 태작이 없다. 그의 소설을 원작화한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열개의 인디언 인형>(<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알파벳 살인사건>() <검찰측 증인> 등은 원작을 그대로 옮긴 사례들이다. TV시리즈 <제시카의 추리극장>의 제시카는 미스 마플을 본뜬 탐정이며, 최근작 <아이덴티티>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그 외에 크리스티 원작도 아니고 모티브를 따온 것도 아니지만 크리스티가 보이는 영화가 있다.
2002년 개봉한 <고스포드 파크>는 온전히 ‘크리스티적’ 상상력에서 시작된 영화다. 원작 아이디어는 감독인 로버트 알트먼의 것이다. 수십명의 캐릭터가 등장하여 복잡하게 얽혀들어가는 연출은 알트먼의 트레이드 마크이다시피한 것이다. 거기에 대저택과 시대배경(1920~30년대)을 가져오자 밀실극과 그 속에 숨겨진 욕망의 드라마는 로버트 앨트먼의 것인 동시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것이 되었다. 크리스티는 상류사회의 속물성, 이중성을 폭로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오리엔트 특급살인>도 그렇지만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풍속극들이 특히 그렇다.

알트먼·오종이 훔친 ‘크리스티적’ 상상력

앨트먼은 <고스포드 파크>에서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산업혁명 이후 시대적 상황을 가미했다. 눈 밝은 크리스티의 탐정들에게 무시된 건 아니지만 대부분에서 하인들은 식탁 위 촛불 그림자처럼 어른거렸을 뿐이다. <고스포드 파크>에서는 배를 움직이는 엔진실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는 하인들을 직시한다. 그리고 하인들이 능동적인 주체로 등장한다. 파이프를 물고 돌아다니는 경찰은 푸아로를 닮았지만(결정적으로 키가 너무 크긴 하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초짜 메이드인 메리다. 메리는 특유의 친화성과 말 옮기기 좋아하는 소녀적 감수성으로, 그리고 하인이 듣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상류층의 무심함 때문에 퍼즐을 완성해간다. 지독히 크리스티적이지만 크리스티는 놓쳤다. 계급적 한계로 인해 놓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충격적인 반전 역시 계급적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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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인들>에서 크리스티풍 밀실살인을 선보인 프랑수아 오종이 만든 작품 <스위밍 풀>에는 추리소설 작가가 등장한다. 미국적인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오종이 데리고 나온 작가는 영국인이다. 영국의 추리소설에 대한 명확한 오마주이다. 그것도 여성 추리소설 작가. 누구이겠는가.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대표하는 황금기 추리소설의 기품은 이 프랑스 영화 <스위밍 풀>에 이식된다. 추리소설 작가 사라 모튼은 늙었고, 출판업자 애인은 부인과 딸이 있고, 자기를 알아보는 독자가 귀찮고, 글은 잘 써지지 않는다. 뭔가 영감을 받을 필요가 있다. 출판업자는 그에게 자신의 프랑스의 별장에 머물라고 권한다. 그는 도착한 프랑스 별장에서 살인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무료한 햇빛 찬란한 날들과 미스터리한 미소를 흘리며 지나가는 사람들만이 있다. 결국 그 사건은 추리소설가의 머리에서 벌어져 소설로 옮겨 쓰이는 것으로 밝혀진다. 별장에서 겪는 일은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한적함이 아니라, 무슨 일인가 일어나줬으면 하는 한적함이었던 것이다.
끝없이 비밀을 만들어내고 탐정이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도록 극적인 우연을 남발하던 작가. 그의 생활은 얼마나 무료했을까. 크리스티도 그러했을까? 크리스티에게도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는 첫 번째 남편과의 이혼 전 ‘실종사건’을 벌였다. 크리스티는 주말 계획을 취소하는 편지를 남기고 나간 뒤 그날 밤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유명인사였던 그를 찾기 위해 경찰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었다. 차가 발견된 근처에 ‘사일런트 풀’이란 호수가 있었는데 그의 소설의 등장인물이 빠져죽은 호수였다. 경찰은 혹시 소설(<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끝낸 허탈감에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실종 전단이 뿌려지고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크리스티는 남편 애인의 성을 따서 그 호텔에 숙박하고 있었다. 그는 남편과 의사에게 일주일간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부분 기억상실증을 호소했다

유명작가에게도 극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하지만 당시 상황 증거로 보아 이 기억상실증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자작극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실종은 단 일주일이었다. 아주 짧았다. 이 일을 제외하자면 그는 슬럼프란 사전에 없는 듯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소설을 써냈다. 어쩌면 삶이 그를 지치게 했다면 소설에 그렇게 열정적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스위밍 풀>은 이런 추리소설 작가의 삶의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새롭게 변주된 <고스포드 파크>와 <스위밍 풀>에 비해 <친절한 금자씨>의 오마주는 ‘본론의 이야기’에 잘 섞여 들어가지 않았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유일한 단점은 푸아로가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탔고 그 차에서 우연히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친절한 금자씨>의 ‘특급살인’에서 금자씨는 푸아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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