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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도 새터민 돕고 싶어요"

등록 2005-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국내 프랑스인들이 마련한 북한 탈북자 돕기 자선 전시회 ‘남남북녀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프랑스에서 16년을 보내면서 국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죠. 전업작가로 그림을 팔아 생존하는 게 급선무였고, 보수적인 파리 화단에 맞서기도 힘겨웠거든요.” 그리 순탄치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파리 화랑의 전속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서양화가 유선태씨. 그는 귀국하면서 뉴욕에 진출하려고 작업실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국내에 거주하는 프랑스 사람들을 만나면서 ‘뜻밖의’ 일에 몇 개월을 보냈다. ‘새터민’(탈북자)을 돕는 자선 전시회가 그의 손과 발을 붙들었던 것이다.

3월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화랑 ‘포럼 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남남북녀’(南男北女)전. 국내외 화가 76명이 기증한 작품을 선보이는 이 전시회는 새터민들의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기획됐다. 작가들의 작품은 공정가의 50% 수준인 10만원에서 300여만원에 판매되며, 수익금 전액은 인도주의 단체인 ‘국경 없는 의사회’와 북한 주민을 지원하는 ‘좋은 벗들’에 기부할 예정이다. 이들 단체는 기부금을 새터민에 대한 의료 지원과 심리치료 지원에 활용하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재외프랑스인협회 서울분회 회원인 한 프랑스인의 개인적 관심에서 시작됐다. 현재 서울프랑스학교에서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이사벨 조르당이 주인공이다. 그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국내에 들어온 새터민들의 현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새터민들이 교육 부족과 구직난, 심각한 우울증 등으로 고통을 겪는다는데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어려운 친구를 돕는 것은 국경을 초월해서 이뤄져야 한다. 작가들의 작품을 기증받아 학생들의 여행을 지원했던 경험을 살려 새터민을 돕고 싶었다.”

다행히 이사벨의 남편 마르코 부스레만테가 조각가여서 국내 미술계에도 인맥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선태씨가 참여해 국내 작가들을 섭외하게 됐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전시 취지에 공감을 표하며 흔쾌히 작품을 기부했다. 어떤 작가는 두세 작품씩 기부했고, 안내 광고를 보고 동참 의사를 밝혀오기도 했다. 개별 작가들뿐만 아니라 가나화랑, 예원화랑, 김환기미술관, 이응로미술관, 토탈미술관 등도 소장품을 내놓았다. 게다가 박남준 시인과 김화림(바이올린)씨와 김호정(첼로)씨, 이동명(대금)씨는 시와 연주로 참여하기로 했다.

국내작가 76명 작품 수익, 관련단체 기부

새터민을 돕는 데는 세대의 구분이 없었다. 임옥상·하수경·홍성담씨 등 중견에서 이동석·차소림·신혜선씨 등 신진까지 두루 참여했다. 작가들의 사회적 참여에 관한 신선한 모델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번 전시에 회화 작품 두 점을 내놓은 화가 하수경(전주대 교수)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정부와 민간 단체에서 새터민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엄연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새터민들을 돕는다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작가로서 사회가 필요로 할 때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재외프랑스인협회는 해외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의 권익보호 단체로 서울분회에는 1500여명의 회원이 있다. 그동안 서울지부는 불우이웃돕기 바자회와 독거 노인을 위한 경로잔치를 마련하는 등 국경을 초월한 연대에 관심을 기울였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남남북녀’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서울지부 벤자민 조인아우 대표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사회 통합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내민 연대의 손을 잡아준 많은 작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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