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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가루 수묵’의 풍경을 거닐다

등록 2005-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한국 전통화를 새롭게 번역한 ‘리메이크 코리아’ 전… 여성작가의 <미인도>·여학생과 어울린 십장생 등</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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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김종구씨는 지름 15~70cm에 길이 2~3m의 통쇠를 깎아 갖가지 인체 형상을 새겼다. 그가 통쇠에 조각을 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쇳가루를 재료로 삼아 작품활동을 하게 된 것은 ‘서글픈 우연’이었다. 지난 1996년 영국 런던 인근의 루이스에서 열린 야외조각전에 출품한 통쇠 연작 시리즈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가 작업실에 돌아왔을 때 남아 있는 것은 통쇠를 그라인더로 깎을 때 부산물로 나온 시커먼 쇳가루뿐이었다. 그것이 붓과 먹을 대신하는 ‘디지털 산수화’의 도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저 잃어버린 작품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하게 하는 ‘쓰레기’였을 뿐이다.




디지털 산수화… “정신까지 리메이크에요"

그것이 김종구씨의 새로운 작품세계를 일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잔한 마음을 광목 위에 글씨로 썼더니 생각하지 못했던 조형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광목 천 위에 글씨를 새긴 뒤 수직으로 세우면 쇳가루가 아래로 흘러내려 전통적인 수묵의 정취를 내뿜었다. 이때부터 김씨는 ‘쇳가루 수묵’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쇳가루가 묵이라면 쓰레받기는 붓이었다. 화선지 구실을 하는 광목에 물기가 있으면 흘러내린 쇳가루가 자연스럽게 산화되면서 농담을 표현했다. 골칫덩이에 지나지 않던 쇳가루가 수묵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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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26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C’에서 열리는 ‘리메이크 코리아’전에 전시된 김종구씨의 작품은 일단 거대함으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쇳가루 글씨가 무려 7m30cm 높이의 초대형 캔버스에서 한국적 정취를 간직한 풍경으로 거듭나 있다. 전시장 바닥에 쓴 글씨는 비디오 프로젝터와 폐쇄회로 카메라 등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속에 있을 법한 비현실적 풍경을 체험하게 한다. 폐쇄회로 카메라가 바닥을 비추면 쇳가루의 높낮이에 따라 몽환적 산수가 프로젝터를 통해 벽면에 나타난다. 만일 관객이 쇳가루 글씨 주위를 거닐면 풍경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김종구씨의 쇳가루 수묵은 새로운 개념의 예술적 실험인지 모른다. 그의 작품을 통해 ‘시간의 복제’ 흔적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엔 우리가 잊었던 전통의 숨결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쇳가루 글씨가 자연스럽게 시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고 과거의 재료가 현재성을 띠고 거듭나 있다. 우리가 어디선가 보았던 산수화가 단지 전통에 머무르지 않는 셈이다. 현대 산업사회의 상징인 철로 전통을 흡수한 김씨는 “쇳가루 글씨로 전통적 수묵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했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전통적 재료는 물론 정신까지 리메이크하면서 쇳가루를 이용한 ‘쓰레받기체 서화집’을 펴내고 싶다.”

이처럼 리메이크 코리아전에 선보인 작품들은 한국적 전통이 단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의 복제를 넘어선다. 전시에 참여한 9명의 작가가 내놓은 작품들은 원작이 지닌 고정된 의미가 동시대의 맥락에서 새롭게 부가되거나 변형된다. 그것을 통해 관객들은 의미의 확장과 전복을 경험할 수 있다. 더구나 9명의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인화나 산수화, 민화 등 다양한 변이를 시도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전통에 머물던 원작이 리메이크를 통해 ‘멀티플’의 세계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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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리메이크는 미술사에서 흔한 일이다. 서양미술사는 패러디 혹은 리메이크의 연속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일종의 반복과 모방을 통한 따라하기 기법에 의해 미술사가 풍요로워졌던 것이다. 지금껏 놀라운 예술적 성취로 인정받는 르네상스 조각들이 그리스 조각의 후예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미술사의 대가들은 미술관에서 모작을 하면서 자기 세계를 넓혀왔기에 원작의 신화를 깨뜨리는 데 동참하지 않은 거장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다. 살바도르 달리만 해도 서른살 즈음에 밀레의 <만종>(1859)을 리메이크한 <만종>(1933)을 발표하는 등 원작의 ‘현재성’에 주목했다.

현재 리메이크의 대표적 원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마르셀 뒤샹은 다빈치의 400주기를 맞아 <수염 달린 모나리자>(1919)에 ‘그녀의 엉덩이는 뜨거워’를 뜻하는 ‘LHOOQ’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심지어 페르난도 보테로의 <뚱뚱한 모나리자>(1978)나 야스마사 모리무라의 <임신한 모나리자>(1998)도 있다. 이런 작품들은 조롱과 탈권위를 내세우기에 ‘패러디’ 성격이 짙다. 국내에서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리메이크 원작을 꼽는다면 신윤복의 <미인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화가 권여현씨는 조선시대의 미인을 현대의 인물로 대체한 익살스러운 <미인도>로 주목받았다.

민화·고분벽화 등 전통적 도상으로 ‘현재’를 개척

그렇다고 리메이크가 원작을 현재적 시점에서 ‘번역’하는 게 조롱과 웃음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새롭게 배치해 전혀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여성성에 주목하는 화가 이순종씨의 작품들은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진 <미인도>의 성적 정체성을 여성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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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게 보여지기 위해 아름답게 치장한 ‘조선의 미인’을 메두사를 떠올리게 하는 섬뜩한 이미지의 모호한 여성으로 리메이크한 것이다. 서니킴의 <놀이터>는 십장생을 수놓은 자수화를 배경으로 교복 입은 여학생을 배치했다. 패턴화된 자수화 구조에 규격화된 여학생은 전통의 현재적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때론 한국적 전통이 리메이크를 통해 현대의 기호와 만나고 현재적 공간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영상작가 김태은씨의 <럭셔리어스 라이프>는 민화의 평생도를 현재의 시점으로 끌어올리고, 김지혜씨는 민화의 책거리 그림에 현대인의 욕망을 새겼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담긴 우주관과 생태적 의미가 임영길씨의 영상을 통해 테라리움에 갇힌 서울에서 현재적 담론으로 되살아난다. 리메이크 코리아는 전통적 도상들이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양식을 개척하는 주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지금 21세기의 작가들이 원작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전통과 현대의 색다른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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