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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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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수가 아닌 보수

등록 2005-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새로운 ‘가족주의’를 그린 클린트 이스트우드</font>

▣ 이성욱/ <씨네21> 기자 lewook@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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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는 여전히 보수적이다’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감독상과 작품상을 놓고 노익장 대 노익장의 대결로 화제를 모았던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에비에이터>의 마틴 스코시즈를 제치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선택했다. 아카데미는 <분노의 주먹>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작품을 만들어온 스코시즈를 다섯 번째 감독상 후보로 올려놓고 다섯 번째 ‘물’을 먹였다. 대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공화당 지지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두 번째 감독상을 선사했으니, 언뜻 정치적 지향점만 놓고 보자면 이 선택은 보수적이다. 그렇지만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수적인 영화라고 평가하기엔 곤란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전기영화로 만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제작사 포커스 피처스의 제임스 샤무스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두고 “이 영화에는 아주 중요한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감정(emotion)이고 둘째가 감정이며 셋째도 감정”이라고 의미심장한 촌평을 날렸다(<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결정적 하자가 관객의 감정을 고양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결말로 향해 내달릴수록 감정의 파고를 높이다가 끝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려고 작정한 결정적 장면을 차분하게 늘어놓는다. 그건 아버지로서 딸에 대해 내린 어떤 결단에 관한 것인데, 바로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는 정치적 보수와 높다란 담을 쌓아버린다. 가족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 신뢰와 애정은 보수주의의 높은 이상향이겠으나 그 중심에 자리한 아버지의 구실에 대한 이 영화의 태도는 결코 보수적이지 않다. 이 이상한 동거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력이다.

특히 중요한 건, 체육관을 소유한 복싱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도시 빈민이나 다름없는 여자 복서 지망생 매기(힐러리 스왱크)가 부녀지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랭키의 아내처럼, 매기의 엄마처럼 기능하면서 체육관의 크고 작은 일과 식구들을 포근히 감싸는 스크랩(모건 프리먼)은 더더욱 이들 유사 부녀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흑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보수주의적 가족의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행사한다. 정작 진짜 가족은 아버지 프랭키를 철저히 외면하거나 딸 매기를 뻔뻔스럽게 착취하려고 든다.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가족의 이상향을 대안 가족의 모습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승승장구하던 프랭키와 매기의 관계는 불량한 챔피언과의 최후 한판에서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는다.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매기의 몸이 완벽한 불구 상태에 빠져버린 것. 이제 프랭키는 진짜 딸보다 더욱 소중한 딸이 된 매기의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아버지로서의 실존적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아버지로서의 욕망이 아닌 딸의 소망으로 귀결된다. 격한 감정의 고양은 바로 이 대목에서 분출되는데, 여기까지 오는 형식은 매우 장르적(달리 말하면 보수적)이지만 그 내용은 비관습적이다. 가족과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은 보수적 영화작법이나 거기서 그려내는 가족과 감정의 포커스는 보수의 예의와 거리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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