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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겨울의 5개국 순방

등록 2004-12-30 00:00 수정 2020-05-03 04:23

금요일 밤마다 <kbs>이 고른 이란·베트남·홍콩·인도·몽골 영화를 좇아</kbs>

▣ 이성욱/ 기자 lewook@cine21.com

금요일 밤 12시55분이라면, 더 안락하고 즐거운 주말을 향해 어디론가 달려갈 시간이다. 교외로 달려가는 자동차로든, 한잔씩 쌓이는 알코올의 기운으로든. 한국방송의 <kbs>이 시청자들을 그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붙잡아놓기 위해 국내에는 미개봉된 아시아 영화 다섯편을 1월7일부터 5주 연속으로 상영한다. 독립영화관 팀은 이란·베트남·홍콩·인도·몽골의 5개국 장편 영화를 고르고 불러오느라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때 하루 종일 비디오룸에 처박혀 초청된 모든 아시아 영화를 빠짐 없이 보는 수고를 했다.


국내에 미개봉된 아시아의 숨은 진주

영화평론가 김소영은 타이의 전통무예 무에타이를 소재로 한 을 서구 영화와 비교한 적이 있다. 서구의 액션이 뭔가를 부수고 깨뜨리는 과정인 데 비해, 은 재래 시장의 복잡다단한 삶의 도구가 망가지는 것을 교묘히 피해가는 데서 액션의 쾌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은 이 점도 놀라웠지만 눈속임이 없는 정직한 액션, 그러나 그 어떤 액션보다 사실적이고 거친 질감으로 일종의 경이감을 안겨줬다. 1월7일 특별전의 시작을 알리는 이란 영화 은 에 비견될 만한 전투신을 보여준다. 이렇다 할 안전장치도 없이 진짜 폭탄을 출연자 옆에서 바로 터뜨린다. 여기서 나오는 무지막지한 사실감은 이상한 당혹감마저 안겨줄 것이다. 은 작가주의 이란 영화와 달리 그곳 주류 영화의 경향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1980년대 일어난 이란과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 젊은 시절을 반역죄로 감옥에서 허비한 주인공이 전쟁터를 배경으로 소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베트남 영화 (1월14일)는 베트남전 때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다 미국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경력의 학자 출신 감독 민 뉴엔보의 작품이다. “베트남 고유의 서정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양면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게 독립영화관의 ‘공식’ 평가라면 “어딘가 어수룩한데 지극히 아름다운 광경을 잡아내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게 ‘비공식’ 감탄이다. 프랑스 지배하의 40년대 베트남 남부 카마우는 건기와 우기가 확연히 구분되는 곳으로 청년 킴은 빚에 쪼들린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물소 두 마리를 끌고 돈을 벌러 나간다. 으레 그렇듯 그는 부 대신 역경에 휘둘린다.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떴으나 우기라서 주검을 땅에 묻을 수도 없다.
홍콩의 (1월21일)는 13살 난 두 소년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혼란에 빠지는 성장담이다. 어찌 보면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두 소년이 공부도, 축구도, 샤워도, 심지어는 벌도 같이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골 세레모니로 서로 껴안게 된 이들이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영화의 리듬을 빨리 가져가는 반면 이야기를 느슨하게 풀어가는 방식으로 10대의 성 정체성 문제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인도 현지에서의 극장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국내 전파를 타는 (1월28일)은 ‘인도의 9·11’로 불리는 1993년 뭄바이 테러 사건을 영화로 옮겼다. 무슬림과 힌두교 사이에 벌어진 종교 갈등이 도시 테러로 번지며 300여명이 죽고 800여명이 다쳤다.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벌어진 일련의 소요 사태로 뭄바이에 형성된 전쟁터 같은 긴장과 그 분위기 속에서 계획된 도시 테러 음모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대물림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섬세하게 재현하면서 인도 내부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내는 데 영화는 그 뿌리와 가지를 동시에 짚어간다.
특별전 마지막 순서 (2월4일)는 앞선 영화들과 ‘톤’을 약간 달리한다. 1991년 작으로 시기적으로 좀 늦기도 하지만 ‘러시아의 스필버그’로 불리며 충분한 명성을 얻은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의 작품이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그의 이 오래전에 국내 개봉된 바 있다. 독립영화관쪽은 “러시아, 프랑스 합작이기도 하지만 지금 몽골의 사는 모습이 잘 표현됐기 때문에 선정했다”고. 아내와 세명의 자녀,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몽골 대평원의 천막에서 소박하게 생활하는 양치기 곰보 앞에 러시아 트럭 운전사 세르게이가 나타나면서 문화적 차이와 충돌이 벌어지는 이야기다.</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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