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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브리짓, 자존심 어딨어?

등록 2004-12-10 00:00 수정 2020-05-03 04:23

돌아온 독신녀의 연애담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그녀가 돌아왔다. 사회적 혼인 적령기를 지난데다 아무런 내세울 게 없는 전세계 독신녀들을 열광하게 함으로써 명분 없는 ‘연대’도 가능하다는 걸 온몸으로 웅변한 그녀. 브리짓 존스다. 그러나 떠날 때는 달랑 팬티에 코트 바람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온몸에 명품을 휘두른 것처럼 보이는 금의환향이다. 일심단결했던 여성들, 이번에도 기립박수를 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은 홀로 병나발을 불며 를 부르던 브리짓이 잘생기고 능력 있는 변호사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 맺어지고 난 뒤의 연애담을 그린다. 처럼 눈에서 하트를 날리며 관객에게 손을 흔들던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봉’ 잡았지만, 아니 봉 잡은 탓인지 브리짓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다. 다시와 가까이서 일하는 아름답고 젊은 여비서가 영 눈에 걸리고, 코르셋을 잔뜩 조인 채 다시를 따라갔던 변호사들의 우아한 파티에서는 다시 한번 ‘가랑이가 찢어지는’ 고독을 경험한다. 여기다 바람둥이 전 남자친구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까지 나타나 예의 섹시한 유혹의 손길을 뻗쳐오고 낭만적인 청혼을 기대하는 브리짓에게 다시는 여전히 딱딱한 수학교사 같은 표정만 짓는다.


의 앞부분에는 알프스 같은 산등성이에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옷을 입은 브리짓이 다시와 마주 보며 달려오는 의 패러디가 등장한다. 다시와 연인이 된 브리짓이 그리는 미래인 셈이다. 영화는 이 꿈이 찌그러지고 구겨지는 과정을 나열한다. 물론 결론에서는 매끈하게 펴지는 게 로맨틱 코미디의 철칙이지만. 그런데 그 에피소드들이 대부분 1편을 아주 조금 바꾼 것이거나 1편보다 훨씬 작위적이다. 1편에서 호감은 브리짓이 연발하는 실수와 주책이 아니라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을 놓지 않는 브리짓의 사랑스러운 모습에서 형성됐다. 그러나 2편에서 브리짓은 1편 때 가지고 있던 어떤 자존심도 깨끗하게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알프스 스키장과 타이의 휴양지까지 넘나들며 오로지 넘어지고 자빠지는 에피소드만이 강화됐을 뿐이다. 특히나 연애뿐 아니라 직장생활에서 좌충우돌하며 또래 여성들의 공감대를 자아냈던 ‘일하는 여성’ 브리짓의 일상은 거의 지워지고 말끝마다 “인권변호사 애인”을 붙이는 주책과 아직도 건재한 ‘왕궁둥이’의 클로즈업만 반복된다. 1편에서 유능한 출판 편집자였던 다니엘 클리버가 난데없는 텔레비전 진행자로 등장해 브리짓을 유혹하는 장면도 단순한 휴양지 홍보 비디오 클립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매력을 잃지 않는 건 1편에 이어 다시 한번 한심한 몸싸움을 벌이는 다시와 클리버의 명연기.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가진 두 남자가 무릎까지도 올라가지 않는 발길질을 해대는 모습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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