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2004 동강사진축전’… 김기찬 · 린 쿠오창 수상작과 33인의 다큐사진 등 전시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1966년 서울역 앞 광장에서 북적대는 노점상과 행인들을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던 김기찬(66)씨는 2년 뒤 광장을 가로지르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사람들의 발길을 좇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다가서기로 마음먹은 그는 중림동 골목을 누볐다. 그리고 36년이 지난 요즘 그가 기록한 오래된 대중가요 제목으로 떠올리던 골목길을 우리의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지금은 실감하기 어려운 골목길의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골목에 대해 “내게 삶을 가르쳐준 인생의 배움터, 나의 고향이었고 나의 안식처였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골목길 사진 36년… 흑백영화처럼 잔잔하게
그렇게 30년 이상 골목길을 ‘헤매던’ 그가 동강사진마을운영위원회(위원장 김승곤)가 마련한 세 번째 동강사진상 국내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의 골목 안 풍경은 오는 29일부터 8월7일까지 강원도 영월군 영월학생체육관에서 열리는 ‘2004 동강사진축전’의 사진전에 특별 전시된다. 이번에 그가 풀어놓는 작품들은 평생의 테마로 여기다가 1997년 재개발로 마감한 중림동 골목을 비롯해 도화동, 문래동, 공덕동 등을 찍은 것이다. 이들 사진은 집과 집,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골목에서 훈훈한 인정과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게 한다. 그가 포착한 집과 사람들은 언제라도 인화지 밖으로 나오려는 듯 꿈틀댄다.
그의 작품들은 한장의 사진에 머물지 않는다. 흑백 사진들을 빠르게 넘기다 보면 오래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에 빠질 수 있다. 그의 모든 사진들은 보여지는 이미지보다 훨씬 다양한 스토리를 들려준다. 전시회에 나란히 걸린 사진들은 대사를 들려주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정지화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작품에 ‘결정적 순간’이라는 사진술의 오래된 명제를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골목 안의 풍경은 순간보다는 연속동작에 가까워 보인다. 어쩌면 서라벌예대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의 이력이 사진 속에 스며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방인인 내가 골목 안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나 역시 골목 안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골목 안에 머문 시간만큼은 그 역시 골목 안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6번째 골목 안 시리즈를 출간할 때 오래 전 골목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시 모인 데는 그가 단지 사진가의 모습만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는 골목에서 아름다웠던 소년 시절을 이어갔고 잃었던 고향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기에 그의 골목 안 풍경에 과장이나 왜곡이 있을 리 없다. 진동하는 사람 냄새를 실컷 즐기면 된다.
사진이 주는 감동을 얼마나 다양하게 느낄 수 있을까. 김기찬의 골목 안 풍경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면 동강사진상 해외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된 대만 출신 사진가 린 쿠오창의 나환자촌 풍경은 뜨거운 열정을 느끼게 한다. 그는 황폐한 풍경을 포착해서 그것을 아름답고 비일상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진가다. 그는 신체적 장애를 예술적 원천으로 삼았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청각장애로 소통의 도구를 잃어버린 그는 미소와 카메라로 뭇사람들에게 다가섰다. 그것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상황에서 생의 몸부림만 간직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청각장애를 잊고 나환자촌을 찍다
그는 주로 대만과 중국의 나환자들을 기록했다. 단지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카메라만 들이댄 게 아니었다. 그는 부모가 나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격리된 이들의 벗으로 지내고 있다. 중국 쓰촨성의 나환자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짓는 일을 돕고 아이들과 더불어 놀며 지내는 것이다. 그의 사진에는 빈곤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의 소용돌이에 매몰된 사람들의 무관심을 일깨운다. 나환자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빅키창의 말대로, 그는 자기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대만의 사진가 왕신의 제자인 그는 “저널리즘의 사명은 진실한 지식을 전달하고 영감을 주는 데 있다”는 스승의 말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의 실천에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부인과 함께한다. 이미 동강사진상 수상 상금 1천만원을 어디에 쓸지도 정해졌다. 나환자촌의 황폐한 풍경을 조금이라도 거둬내는 데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탁월한 포토저널리스트이기 전에 아름다운 휴머니스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소와 몸짓은 나환자촌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신뢰와 우정을 심어주는 가장 유용한 도구였다. 오랜 인내와 기다림, 관찰로 카메라 앵글의 모든 것에 생명을 심고 싶다.”
올해 ‘동강사진전’에서는 동강사진상 수상작가의 작품과 함께 작가 33인의 ‘기록사진’이 전시된다. 여기에 참가한 작가들은 2000년 이후 근작을 중심으로 ‘21세기 풍경’을 펼쳐보인다. 인간 군상을 48년 동안이나 담아온 최민식씨의 사진에서는 가슴 저미는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국내외의 소외된 사람들을 테마로 삼은 윤주영의 사진에서는 평화 저편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그 밖에도 강재훈의 , 성남훈의 , 오상조의 , 김녕만의 , 이규철의 등을 한자리에서 만난다. 이들 33인의 작품을 통해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으리라.
지난 200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진마을로 선포된 영월에 가면 그야말로 사진의 절경을 만끽할 것으로 보인다. 동강사진전은 물론이고 사진가와 평론가, 대학교수 등이 참가하는 2박3일 동안 ‘사진 워크숍’이 열리며, 초·중학생들이 일상을 담은 ‘사진일기전’, 지역 사진가 16명이 참여한 ‘향토기획전’ 등도 열린다. 영월군은 내년에 사진마을의 진면모를 보여줄 계획이다. 그동안 동강사진축제 참가 작가들이 기증한 작품 등을 상설 전시하는 동강사진박물관이 문을 여는 것이다. 현재 건축비만 50여억원을 투자해 영월읍 하송리 일대 2만3109㎡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905㎡ 규모의 박물관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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