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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퀴어 마을 청년들의 안방 습격!

등록 2004-07-15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게이 드라마 · 리얼리티 쇼 국내 열풍… 퀴어폐인 만들면서 ‘동성애자 가이드북’ 구실 톡톡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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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케이블 채널에 방영되고 있는 게이 드라마 와 리얼리티 쇼 바람이 심상치 않다. 퀴어폐인까지 낳고 있다는 이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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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동성애자가 안방에 찾아왔다. 동성애자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인 (Queer As Folk)와 ‘새끈한’ 동성애자들이 ‘촌스러운’ 이성애자들의 스타일을 교정해주는 (Queer eye)가 조용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두 프로그램은 젊은 여성들과 동성애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케이블 채널로서는 폭발적인 시청율을 기록하고 있다. ‘퀴어’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를 일컫는 영어다.

미 게이 일상, 정면 노출

는 케이블 채널인 ‘Home CGV’에서 지난 4월26일부터 방영되고 있다. 심야 시간대에 방송됐지만, 평균 1%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현재 같은 시간대의 케이블 채널 시청률로는 가장 높은 수치다. 7월12일부터는 매주 월·화요일 저녁 12시에 두 번째 시즌이 방송된다. 재방송은 토요일 새벽 2시, 3시에 한다. 당초 시즌1만 방송할 예정이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호응에 힘입어 시즌2가 전파를 타게 됐다. 드라마의 인기는 팬사이트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카페의 팬사이트 ‘Queer As Folk’의 회원 수는 3만1천명이 넘는다. 이 밖에도 3~4개의 팬사이트가 활동 중이다. 네이버 검색 순위에서도 케이블·위성 방송 드라마로는 가장 높은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로 ‘퀴어폐인’까지 생겼다. 주시청자층은 20대 여성으로 분석된다.

현재 방송 중인 는 영국의 ‘채널4’(Channel4)에서 만든 같은 이름의 시리즈가 원작이다. 영국판 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미국 워너브러더스사가 리메이크했다. 미국에서는 프리미엄 채널인 ‘쇼타임’(Showtime)을 통해 현재 시즌4가 방송 중이다. 영국판 는 2000년 9월 서울에서 열린 ‘퀴어 영화제’에서 ‘퀴어 마을 청년들’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는 ‘시리즈’로는 한국 사회에 최초로 방영되는 퀴어 드라마다. 지금까지 동성애자를 주변 인물로 다룬 드라마 시리즈는 있었지만, 동성애자 사회의 일상을 정면으로 다룬 드라마는 처음이다.

는 미국의 중소도시인 피츠버그에 사는 동성애자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브라이언 키니(게일 헤럴드 역)는 광고일을 하는 매력적인 30대 남성 동성애자다. 그에게는 오랜 연인 같은 친구인 마이클 노보트니(할 스파크스 역)가 있다. 그를 사랑하는 10대 동성애자 저스틴 테일러(랜디 해리슨 역)도 등장한다. 세 사람을 둘러싼 동성애자 친구들이 있다. 여성스러운 게이면서 인테리어 전문가인 에밋(피터 페이지 역), 사려 깊지만 사이버 포르노광인 테드(스캇 로웰 역) 등이 ‘퀴어 마을 청년들’이다. 브라이언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출산한 레즈비언 커플, 린지와 멜라니도 퀴어 마을의 주민이다.

는 퀴어 청년들의 사랑과 우정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동성애자 사회의 주요 이슈들이 녹아 있다. 커밍아웃, 에이즈, 동성애 혐오증, 동성결혼, 입양 등 동성애자 사회의 ‘키워드’가 매회마다 녹아 있다. 동성애자를 이해하려는 이성애자를 위한 ‘가이드북’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드라마를 빠짐 없이 본다는 구현지(30)씨는 “동성애자 차별을 말이 아닌 생활로 보여줘 ‘느끼게’ 하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여성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들에게 차별의 현실을 말로 설득하기보다 생활로 느끼게 하면 이해가 빠른 것과 비슷한 학습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 구씨는 자신의 시선을 드라마에 나오는 저스틴의 이성애자 여자친구의 입장으로 설명했다. 동성애자 친구를 둔 듯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 팬사이트 게시판에는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에 대해 묻고, 동성애자들이 답하는 대화가 심심찮게 오고 간다. 드라마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소통폭을 넓히는 구실도 하는 것이다.

동성 섹스 묘사… 역겨운가 매력적인가

무엇보다 는 동성애자들의 성을 상당한 수위로 묘사한다. 게이 커플의 키스신뿐 아니라 섹스신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심지어 공적 공간인 게이 클럽의 백룸(Back room)에서 남성 동성애자들이 익명의 파트너와 성접촉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런 면에서 이 드라마는 ‘동성애는 이해하지만, 동성 섹스는 역겹다’는 이성애자들의 심리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시청층인 여성들의 반응은 통념을 넘어선다. 이들의 반응은 ‘충격적이지만 매력적이다’로 요약된다. 대학 때부터 동성애자 친구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30대 초반의 이아무개씨는 “실제 동성애자 친구가 애인과 가벼운 애정표현을 하는 것도 봤지만, 드라마에서 막상 키스신을 보고는 약간 놀랐다”며 “하지만 금방 익숙해졌고, 오히려 이성애자들의 시선을 피해 남몰래 키스하는 장면을 보면서 너무 이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구씨도 “여성들은 남성과 동일시하지 않기 때문에 남성끼리의 섹스를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를 단순히 ‘잘생긴 남자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로 소비하는 시청자들도 존재한다. 또 세련된 패션과 음악 등 감각적인 퀴어 코드가 젊은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도 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는 긍정적인 동성애자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 여성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동성애자들이 ‘좋은 사람들’ ‘괜찮은 친구들’이라는 이미지로 남는다”고 입을 모은다. 퀴어영화 감독인 이송희일씨는 “동성애자를 ‘환상 속의 왕자님’으로 그려온 야오이 만화에 비해 동성애자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이 드라마는 한발 나아간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동성애자들에게 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비록 케이블이기는 하지만, 동성애자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진전이기 때문이다. 또 가 동성애를 다룬 지금까지의 드라마와 달리 동성애자들의 욕망을 에둘러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 동성애자 소아무개(25)씨는 “미국의 동성애자들 이야기지만 우리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며 “동성애자의 욕망을 동성애자의 일상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측면에서 통쾌하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 박기호씨는 에 대해 “동성애자들이 되고 싶어하는 ‘마성의 게이’를 보여주고, 이성애자 여성들이 보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게이’ 이미지를 전형적으로 재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Queer eye)는 패션 스타일리스트,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5명의 스타일리시한 남성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 남성의 촌스러운 스타일을 바꿔주는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케이블·위성방송 채널인 캐치온에서 지난 4월부터 이 방송됐고, 오는 8월11일부터 매주 수·목요일 밤 10시에 가 전파를 탄다. 이 프로그램은 2003년부터 미국에서 제작돼 300만명이 넘는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선풍을 일으켰다. 한국에서도 당초 만 방송할 예정이었지만, 예상보다 호응이 좋아 연장 방영이 결정됐다.

‘소비와 유행의 대변자’를 넘어서

이 프로그램 역시 동성애자들의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비판도 거세다. 동성애자 윤아무개(32)씨는 에 대해 “서구의 주류 매체가 동성애자를 소비하는 전형을 보여준다”며 “이성애자의 시선에 포획된 동성애자 이미지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서구의 상업매체는 동성애자를 유행을 창조하는 집단으로 치켜세우지만,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현실을 알리는 일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적 현실에서는 동성애자가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소비자로서 동성애자의 이미지만 유포되고,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동성애자의 현실은 지워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직 한국 동성애자의 현실은 가리워져 있지만, 어느덧 동성애자의 이미지는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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