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비롯한 한국 코믹 로맨스들의 맹활약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15분의 위력’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의 공식, 비공식 평가가 험악하기만 했던 (이하 여친소)를 뒤늦게 본 개인적 심정은 ‘아주 재밌다’다. 얼굴 가득 흐뭇한 만족감을 띠며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래?”라는 말에 한결같이 돌아오는 조소(?) 어린 대꾸는 대체로 “전지현이 그렇게 좋아?”라는 것.
그런데 그들이 기자 및 평론가 시사회에서 본 와 개봉 뒤 극장에서 본 는 다른 버전이다. 시사회 반응이 썰렁했는지 개봉 직전 재편집을 거쳐 15분 정도가 줄어들었다. 이 15분의 차이에서 감상의 차이가 생겨났는지 알 수 없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에는 평가해줄 만한 구석이 제법 있다.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여자 혹은 공주 같은 착한 여자의 이미지를 통쾌하게 뒤집는 그녀의 캐릭터는 에서 이미 충분히 본바, 에서 여전히 되풀이된다. 여기에다 액션의 멋까지 더한다. 검은 재킷에 총 한 자루를 든 그녀는 달려오는 승용차이건 흉악하기 그지없는 살인자이건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지 않고, 굴하지 않는 눈빛으로 맞선다. 전지현의 캐릭터를 이렇게만 밀어붙였으면 그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그러나 전투적인 여성으로 자리매김했겠지만, 타협의 이미지를 내놓는다.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한없는 순정. 의 후반부와 의 후반부는 그렇게 닮아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잃어버린 뒤 생에 대한 의지조차 잃어버린 그녀.
여기에 또 하나의 이미지를 더한다.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을 듯한, 신파 정서로 포장된 절대적인 고독의 이미지. 이는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와 연인에 대한 순정 사이의 이미지에 독립변수로 작용하는데, 의 마지막 장면에서 곽재용 감독의 ‘코믹신파로맨스’의 전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몇 차례의 자살까지 시도하는 전지현의 순정과 절대적 고독을 그냥 하나의 과정으로 위치짓는 것. 비록 떠나간 연인이 점지해준 남자이긴 하지만 그는 지하철 역에서 새로운 남자를 발견하고 방긋이 미소짓는다. 이건 단순한 실연의 극복으로 보이지 않는다. 신파라는 수렁에 발목잡혀 있던 ‘엽기적인 그녀’가 비로소 온전한 독립된 존재가 된 것처럼 보인다. 못 말리는 그녀의 좌충우돌을 지연시킬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판타지 코믹로맨스’ 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장르 안으로 들어와 멋지게 성찰하는 ‘모녀 관계’다. 끔직해 보이기만 하는 엄마의 과거 속으로 뛰어들어가 엄마를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들은 감동적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또 다른 가치는 로맨스에 대한 판타지를 주는 동시에 깨버리는 용감한 어법이다. 젊은 엄마 전도연과 젊은 아빠 박해일의 판타지 로맨스가 보는 이의 심장을 팔딱거리게 할 만큼 아름다운데 갑자기 늙고 추하게 변해버린 그들의 현재와 관계가 갑자기 톡톡 끼어든다. 아스라히 솟아오르는 로맨스의 달콤함과 그 허무함까지 동시에 안겨주는 영화다. 장진 감독의 역시 코믹 로맨스의 장르 법칙을 사수하기는 하지만 무모하게 느껴질 만큼 장르의 규칙에 어깃장을 놓는다. 그래서 나오는 결론, 에 이르는 최근의 코믹 로맨스들에서 즐거운 일보 전진이 느껴진다는 것. 이제 남은 건 섹슈얼한 코믹 로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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