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떠는 코엔 형제의 유머감각이 썰렁해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gmsgud@hani.co.kr
영화가 좋아하는 사기꾼 이야기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뛰어난 지능과 치밀한 전략, 놀라운 순발력과 환상의 팀워크로 깔끔하게 임무를 처리하는 사기꾼들. 관객들을 시종 긴장감으로 바짝 조이며 마지막 순간 짜릿한 쾌감을 주는 이나 같은 영화가 그 예다. 다른 하나는 지능이 떨어지고 전략은 허술하며 순발력도 부족하고 팀워크 엉망으로 결국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는 사기꾼들. 긴장감 대신 영화 내내 실실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나 같은 코미디 영화가 그 예다. 코엔 형제라면 이 가운데 어떤 부류를 선택할까? 말할 필요도 없이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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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만들어진 같은 제목의 영국 영화를 미국의 남부 시골로 배경을 옮겨 리메이크한 코엔 형제의 는 카지노에서 현금을 훔치려는 엉성한 사기꾼들의 실패담을 그린 코미디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초상화와 대화하고 교회 가는 일과 성서학교에 매달 5달러씩 하는 기부가 사는 즐거움인 먼슨 부인의 집에 자신이 대학교수임을 ‘주장’하는 도어 박사(톰 행크스)가 세를 들어온다. ‘ph. D’(박사)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노인네를 지적이면서도 상냥한 말투로 현혹하는 도어 박사가 이 집에 온 이유는 이 집의 지하실에서 땅굴을 파 근처 카지노의 현금창고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다. 우디 앨런의 를 연상시키는 이 계획에 4명의 팀원이 가세한다. 도어 박사가 거사를 준비하는 데 함께할 동료들을 광고를 통해 모집했다는 사실은 이야기가 갈 방향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아무런 검증도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위험천만한 팀 작업을 감행할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팀의 우두머리인 도어 박사를 제외한 4명 모두가 어딘가 모르게 정상과는 거리가 먼,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로 계획은 처음부터 물 새는 수도관처럼 크고 작은 실수들로 줄줄 샌다.
가 여느 멍청한 사기꾼 코미디 영화와 다른 점은 종국의 실패가 이들이 지닌 목적과 따로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을 훔치는 데는 성공하지만 이들은 모두 엉뚱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문제는, 코엔 형제는 이런 결론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반전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실없이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는 머리 좋은 사람이 떠들어대는 ‘썰렁한’ 농담 같은 영화다. 여전히 유연한 카메라워크와 유머감각을 자랑하지만 그 농담과 세련된 감각조차 자기 틀 안에 갖혀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준다.
한동안 착한 영화의 착한 미국인 역할만 해오다가 오랜만에 자신의 출신성분인 코미디로 돌아온 톰 행크스의 연기는 만족할 만하다. 그는 에드거 앨런 포 전문가다운 지성과 교활한 사기꾼의 의뭉스러움을 성공적으로 하나의 얼굴에 담는다. 악당의 사악한 욕심이 조금만 더 첨가됐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연이어 흘러나오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 샘 쿡 등 미국 남부 블루스 음악 거장들의 곡은 영화보다 더 훌륭하게 느껴진다. 미국 최고의 흥행스타인 톰 행크스가 출연한 때문인지 는 미국 개봉 당시 코엔 형제의 영화 가운데 가장 놓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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