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maroon">광명 · 통영 · 의정부 문화도시 만들기… 경제효과 얻으려면 시설 · 행정 인프라와 장기계획이 필수 </font>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경기도 광명시청 기획감사과 정책개발팀장 최봉섭씨는 국내 대중음악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 그는 신중현에서 1970년대의 그룹사운드, 80년대의 록그룹, 90년대의 인디밴드 등에 이르기까지 유·무명을 가리지 않고 줄줄이 늘어놓는다. 거기에는 펑크·힙합·R&B·록 등 장르의 구별도 없다.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음악인과 우리가 몰랐던 음악인을 무대에 세우려는 열망으로 4년여를 지낸 것에 대한 ‘보상’이다. 그는 ‘광명을 음악도시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대중음악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만났다. 요즘 그의 일정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대중음악 관계자를 만나는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열리는 ‘광명월드뮤직 축제’는 그가 꿈꾸었던 광명 첨단음악산업단지 조성에 관한 첫 번째 결실이다.
공무원들 ‘음악도시’ 만들기 나서다
“지자체들이 문화도시를 염두에 두고 정책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가 21세기 최고의 지식산업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대중음악은 음악은 물론 영화, 광고,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콘텐츠에 필수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음악의 가능성에 주목한 그는 서울의 관문도시인 광명에 문화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이기로 했다. 침체된 음악시장 활성화에 이바지하며 동아시아 음악시장의 거점을 마련하려고 광명시 일직동 일대 7만여평에 첨단음악산업단지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경제적 수익을 기대하며 일에 매달렸지만 요즘은 마치 대중음악 지킴이라도 된 듯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지난 4월15일 광명시 철산역 주변 중앙로에서 열린 ‘광명 음악도시 선포식’에 이어 열린 ‘한국 록의 발자취를 찾아서’는 한국 록의 모든 것을 집대성하고 한국 록을 대표하는 음악인이 총출동하는 무대였다. 광명시와 한국방송이 공동으로 행사를 마련한 것은 최씨를 비롯한 정책개발팀원이 발로 뛴 성과였다. 음악도시 조성을 위해 대한민국록발전협의회 사람들을 만나면서 록의 발자취를 찾는 무대를 광명에서 유치하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이틀에 걸쳐 신중현의 (50·60대), 전인권의 (30·40대), 체리필터의 (20대) 등 세대를 아우르는 라이브 공연이 이어지며 지난해 대학로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대한민국 인디락 페스티벌’의 올해 대회에 참가할 서울·경기지역 대표 인디밴드를 뽑는 예선대회가 펼쳐지기도 했다.
음악도시라는 슬로건을 구체화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름의 역사적 뿌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업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세계적인 음악도시로 꼽히는 영국의 리버풀만 해도 ‘비틀즈의 고향’이라는 배경이 작용하면서 음악도시로 뿌리를 내렸다. 여성 5인조 팝·댄스그룹 ‘스파이스 걸스’나 여성 트리오 ‘어타믹 키튼’ 등이 세계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도 비틀즈의 고향에 대형음반사 ‘버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과 무관한 광명시의 음악도시 추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화사회연구소 이동연 소장은 “음악도시로서 타당성을 묻는 공청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중음악의 산업적 인프라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기껏해야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닉네임뿐인 광명시를 음악도시로 만들겠다는 최씨의 야망. 그에겐 주위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자극제 구실을 했다. 어쩌면 대중음악을 모르는 ‘무모함’이 힘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부산영화제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아 1700명의 고용을 창출했다는 식의 경제적 유발효과를 떠올리면서 ‘대중음악과 경제’의 환상적 만남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고속철도와 인천공항 등을 연계해 국내외 음악 마니아가 광명에 결집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행정적 지원에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음악도시의 가능성은 대중에 달려 있다. 음반 밸리에 ‘중앙음반물류센터’(가칭)와 다양한 공연장이 들어서도 찾는 이가 없으면 소용없다. 대중음악의 모든 것을 갖춰 한국의 리버풀을 만들고 싶다.”
그동안 국내에서 음악도시를 표방한 지방자치단체는 적지 않았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경남 통영시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지난 2000년에 처음으로 ‘통영현대음악제’를 열었다. 지난 3월에 시작된 올해 행사는 ‘통영국제음악제’(TIMF)라는 클래식 브랜드를 가지고 연간 음악제와 국제콩쿠르를 선보이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나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 등을 모델로 삼아 국제음악 휴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오는 2007년까지 3천억원의 사업비로 세계적인 수준의 국제음악당과 복합휴양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지난 3월22일 음악제 개막식에서 윤이상의 오페라 을 제자 김홍재씨의 지휘로 국내에서 초연하는 등 세계적 음악축제로 자리잡으려 몸부림치고 있다.
지역 호응 받지 못한 ‘국제 음악제’
하지만 지방도시가 음악도시로 거듭나는 데는 걸림돌이 수두룩했다. 아무리 거창한 비전으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구비해도 빈약한 인프라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폐막공연을 하기로 한 뉴욕 필하모닉이 통영의 숙박시설 미비를 이유로 ‘공연 불가’를 알려온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통영시의 경우 자유참가공연까지 마련해 아마추어 음악가와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했음에도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 최영민 교수는 “문화도시의 성공 여부는 지역 문화와 지역민의 정서가 어울릴 수 있는 소재를 찾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업적 성과를 기대하려면 기반시설을 갖추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지속적으로 행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음악도시로 변모하려는 지자체들은 단기간에 사업적 성공을 보장받으려 무리수를 두는 게 사실이다. 오는 7월24일부터 8월8일까지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자연의 영감’(Nature’s Inspiration)을 주제로 펼쳐지는 대관령음악제 역시 ‘평창을 음악도시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겨울올림픽 유치 경쟁에 나선 평창군이 미국 콜로라도의 탄광마을 아스펜이 세계적 음악도시로 거듭난 것을 모델로 삼아 추진하는 행사이다. 올해 행사에서는 첼로의 거장 알도 파리소와 줄리아드 현악 4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 졸 스미어노프 등이 참가한다. 문제는 국제음악제 기간에 1인당 220만원씩 받는 음악학교까지 운영한다는 것이다. 세계적 공연도시 아비뇽만 해도 초기에 10여년 동안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엔 산업적 마인드가 너무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봉섭씨가 바라는 대로 광명시는 첨단 음악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첨단음악산업단지조성계획은 음악산업진흥 5개년계획과 문화산업 클러스터 유치업종에 포함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인디음악인 전용 시설을 마련하고 음반 유통 물류센터·음악전문대학 등을 세우는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음악도시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15·16일에 열린 ‘록의 발자취를 찾아서’의 4회 무대만 해도 한 회에 7500만원씩 지자체 예산을 지원했다. 그것이 음악도시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문이다. 장기적 비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연히’ 유치한 공연인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도시의 문화적 마인드를 경기도 의정부의 음악극축제에서 따라 배울 만하다. 의정부시는 시립 예술의전당을 건립하면서 2002년부터 지역민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대중적 예술인 음악극을 널리 알리는 축제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지역민이 자긍심을 갖도록 하라
올해는 오는 22일부터 30일까지 ‘5월 의정부, 리듬의 날개를 달다’는 주제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살롱 뮤지컬인 (러시아), (프랑스) 등과 (에이콤) 등 국내외의 다양한 음악극을 선보인다. 박상순 예술감독(경민대 교수)은 이렇게 말한다. “음악극으로 의정부만의 특색 있는 공연 문화를 일구고 있다. 지역민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즐기며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된 것도 커다란 성과이다. 문화적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서로 맞물려야 문화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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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만찬(미국) 22일 저녁 6시, 23일 저녁 6시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뮤지컬로 기발한 연출력과 무대장치가 돋보임
-갬브리너스(러시아) 29일 저녁 7시30분, 30일 저녁 5시 러시아 정통 살롱뮤지컬시어터로 집시풍의 감성 어린 선율 주목
-바-타-클랑(프랑스) 29일 낮 4시, 30일 낮 3시 프랑스 코믹 공연물로 아기자기한 무대에서 신비한 조명을 즐길 수 있음
-벨기에 뮤제트(벨기에) 22일에서 27일까지 저글링과 움직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야외공연으로 단순하지만 독창적
-포켓 오케스트라(프랑스) 26일에서 30일까지 다양한 프랑스풍 부기 음악인 손풍금과 타악기 노래 등이 어울리는 무대
-보이 비(일본) 18일 저녁 7시30분 뮤지컬로 태어난 또 하나의 ‘우주소년 아톰-보이 비’를 유머러스하게 만날 수 있음
국내초청작
-명성황후 22일 낮 3시·저녁 7시30분, 23일 낮 3시 한국적 뮤지컬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오케스트라와 사물놀이를 함께 즐김
-소리와 몸짓의 어울림 25일 저녁 7시30분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향당무예술단이 펼치는 멋과 흥이 넘치는 율동·민요
-피터와 늑대 26일 낮 3시 오케스트라의 악기를 사람과 동물로 의인화해 어린이에게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우도록 함
-카르멘 갈라콘서트 26일 저녁 6시 의정부 오페라단이 을 갈라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하며 해석을 곁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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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3년 노뜰이 창단될 때부터 참여한 원영오씨는 문화운동으로 마당극에 참여한 마지막 세대이다.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대학시절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탈춤반에서 활동한 원씨는 마당극의 무대를 태백 정선 등지의 노동현장에 마련하기도 했다. 지역에 뿌리내린 공연예술단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노뜰을 창단했지만 공동체 문화활동은 일과 밥을 동시에 해결하지 못했다. 창단 2년 만에 극단 사무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97년부터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극단으로 성장했다.
세계를 무대로 삼은 극단 노뜰에게는 차마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게 있다. 그것은 서울에서 공연을 할 때 생기는 문제이다. 대중에게 알려진 국내의 극단이 대부분 서울에 뿌리내리고 있는 탓에 초청단체에서 ‘숙소’를 따로 챙겨주지 않는 것이다. 연습실 뒷편의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와 나물로 식사를 하기에 먹는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잠자리가 없어 단원들이 뿔뿔이 흩어짐으로써 공연 준비에 차질을 빗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게 원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극단 노뜰로서는 외국 공연단체가 국내 공연지의 숙박시설이 부실해 공연을 포기했다는 소식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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