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생활’을 보장한다는 초호화 공동주택, 그곳엔 어떤 사람들이 몰려드는가

단풍으로 곱게 물든 구룡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탁 트인 눈앞 풍경은 산과 하늘뿐이다. 푸근한 늦가을 햇살이 창문에 부딪히며 반짝 빛난다.
지난 11월7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C동 맨 꼭대기 59층. 92평형과 32평형을 터서 한채로 만든 124평형 펜트하우스 안방에 딸린 부부욕실의 낮 풍경이다. 욕실 양쪽에는 샤워장과 세면대가 각각 하나씩 설치돼 있고, 저만치 앞 창가에는 둥글게 움푹 팬 큰 욕조가 놓여 있다. 욕조까진 엷은 회색빛 대리석 계단을 두세개 올라서야 한다. 유리벽 바깥으로 펼쳐진 풍광을 한순간에 장악한 듯한 느낌을 안고 안방에 들어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호텔 스위트룸 같은 널찍한 안방 바닥에는 붉은 빛이 도는 고급 무늬목이 시원스레 깔려 있다.
대리석 거실, 하늘과 맞닿은 욕조

“아침에 일어나면 양재천변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게 호텔에서 잔 것 같아요. 이건 ‘단순한 집이 아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펜트하우스에 사는 건 아니지만, 일주일 전에 타워팰리스 C동 29층에 입주했다는 주부 조아무개(48)씨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누구나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할 만한 아파트”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펜트하우스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면 거실 유리 바깥벽 너머로 개포동 아파트촌이 한눈에 펼쳐진다. 광택 나는 대리석이 쫙 깔린 거실은 마치 호텔 로비 같다. 사방 벽들은 고운 무늬결의 자줏빛 원목으로 매끈하게 단장돼 있다. 92평형과 32평형은 좁다란 복도로 이어지는데, 복도 한쪽 벽은 통째 붙박이 벽장이다. 가족실과 몇개의 다용도실이 있지만, 놀랍게도 124평에 방은 4개뿐이다. 집안 모퉁이 벽마다 은은한 실내등 10여개가 곳곳에 달려 있고, 거실 한쪽에는 벽난로가 붙어 있다.

펜트하우스뿐만 아니다. 101평, 72평, 68평을 비롯해 어느 집 할 것 없이 최고급 호텔을 연상시킨다. 어느 층이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양쪽 복도 끝에 집이 한두채씩 있는데, 어둠에 싸여 저 앞에 뭐가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제서야 복도등이 켜지고, 눈앞에 검은색 현관이 나타난다. 현관까지 이르는 4∼5m의 복도는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다.
‘귀족 아파트’, ‘대한민국 1% 아파트’ 등으로 불리는 타워팰리스에서는 이날도, 열흘 전부터 시작된 입주가 한창이었다. 강남 한복판에 보란 듯 하늘을 향해 치솟은 타워팰리스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욕망을 품고 입주하는 것일까. 분양은 일찌감치 끝났지만 평균 10억원을 웃도는 타워팰리스에 새로 입주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일까.
근처 우성캐릭터빌에서 살다 이날 타워팰리스 69평짜리로 이사온 김아무개씨는 “기존의 아파트하고는 전혀 다른 주거공간인 것 같은데, 더 살아봐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사 풍경은 타워팰리스의 전형적인 그것이었다. 이삿짐을 옮기는 와중에 새로 주문한 155cm 대형 평면텔레비전이 도착했다. 그가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텔레비전은 왔는데, 주문한 GE냉장고는 왜 안 옵니까. 매장에서 가장 비싼 거 말이에요.” 이사온 지 며칠 지난 입주자들은 벌써부터 ‘바뀐 삶’을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살면 여유롭고 품격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을 그저 광고성 멘트로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정말로 고품격 아파트라는 느낌이 들어요. 내 삶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랄까” 호텔에서 자고 일어난 것 같다던 주부 조씨가 덧붙였다.
강남 상류층에 안내장 보내 분양
C동 앞에서 만난 한 입주자는 “친구들이 ‘너 타워팰리스에 산다며 집구경 한번 시켜주라’고 야단들이다. 하지만 남들 눈길도 있고 해서 지금은 집들이 하기도 뭣하다”고 부담스러워했다. 그렇게 바깥 눈길을 의식했지만, 타워팰리스에 사는 ‘특별한 소수’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한 듯 내내 입가에 웃음을 배어 물었다.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 살다가 이사왔다는 60대 주부는 “특혜니 뭐니 그러는데, 무슨 특혜야 99년에 주변 사람들의 소개로 그냥 분양받은 것뿐인데”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타워팰리스가 이른바 최고급 ‘명품 아파트’로 부상한 데는 평균 10억원이 넘는 고가라는 점 외에 특별한 분양과정도 한몫 거들었다. 시공·분양을 맡은 삼성물산은 대중적 상품이 아닌 만큼 치밀한 사전 시장조사를 벌였다. 먼저 강남구·서초구·송파구의 40평형대 이상 아파트에 살고 있는 부류를 구매력 있는 층으로 정하고, 그에 맞는 아파트 단지와 동, 호수를 조사한 뒤 3만∼4만장의 분양 안내장을 보냈다. 삼성물산쪽은 “강북 부자는 강남으로 오지 않고, 강남 부자도 강북으로 가지 않는다. 부의 축적과정에 따라 사는 곳도 차이가 있다. 분양마케팅 때 강북은 고려에 넣지 않고 강남 사람만 주요 대상으로 했다”고 말했다.
직업도 고려했는데 전문직 종사자, 대기업 임원, 해외경험이 많은 부류로 압축했다. 외국에서 초고층 아파트를 접해본 사람들을 주로 타깃으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근처 타워팰리스부동산쪽은 “분양 당시에도 외국물을 접한 사람들이 특히 많았는데 요즘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집을 거래하다 보면 외국에 나가 있거나 외국에 잠깐 나갈 거라는 사람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고급커뮤니티를 해치지 않도록, 신분을 밝히지 않는 사람한테는 청약기회를 주지 않았다. 삼성물산 유광석 전무는 “일정한 직업 없이 돈만 많은 부류는 배제했다. 직업이 이 정도면 이웃한테 부끄럽지 않겠다 싶은 사람을 위주로 분양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초 분양자는 대기업 임원 등 기업인(42%)이 가장 많고, 의사(8.3%), 교수(3.9%), 변호사(3.7%), 금융인(3.2%)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머지 40% 가까운 세대주는 삼성물산도 정확한 직업을 확인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쪽은 “1차, 2차 분양 때 강남지역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선별방식을 취했지만, 외환위기 시절이라 분양해 파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선착순 성격도 있었다. 다만 3차분 분양에서는 명함을 보고 입주자를 제대로 가렸다”고 털어놓았다.
‘고급커뮤니티’를 향한 욕망

타워팰리스 분양자의 평균나이는 55살이다. 30∼40대는 신흥재벌이라도 구매력에 한계가 있고, 10억∼20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고객은 아무래도 50대 중산층 이상이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쪽은 “분양 당시 50대 강남 거주자에 초점을 맞추고, 타워팰리스를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를 대체할 새 주거단지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타워팰리스생활지원센터는 “입주자들의 입주카드를 보면 청담동·도곡동 등 주변 아파트에서 이사온 사람이 대다수다. 식구는 4명 정도고, 50대 의사·변호사·사업가 등이 주류이며, 30, 40대는 적다”고 귀띔했다.
타워팰리스는 3천여 세대가 모여사는 초호화 ‘공동주택’이다. 부유층은 전통적으로 고급 ‘단독주택’에 살면서 부를 드러내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강남지역 부유층이 여럿이 모여사는 초고층 아파트를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애초 투자목적으로 분양받았거나, 이미 집값이 두배로 뛰었지만 더 오를 거라는 기대로 웃돈을 주고 새로 끼어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타워팰리스의 분양권 전매율은 30% 안팎이다. 일반 아파트의 경우 입주 당시 10집 가운데 7집 정도 주인이 바뀌는 것에 견줘볼 때 투자목적 소유자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타워팰리스에 살면 ‘고급커뮤니티’에 편입될 수 있다”는 욕망이 크게 작용한 건 아닐까 ‘특별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사람, 서비스, 시설의 네트워크에 들어가려는 욕구인데, 타워팰리스는 이런 욕망 자체가 상품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50대 후반의 입주자 김아무개씨는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와 사는 것으로 안다. 커뮤니티클럽도 있고, 앞으로 그런 모임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중개업자 소개로 101평짜리를 둘러보던 50대 중년 남자는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선별해서 분양했다는 말도 있고 해서 집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을 사고 파는 과정을 거치면서 커뮤니티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부유층이 함께 뭉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알고 지내던 부유층들 대거 이동
타워팰리스라는 이름이 하나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그 중심에는 최고급의 호텔식 집뿐만 아니라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타워팰리스의 각종 시설이 놓여있다. 1층 로비 한쪽에 깔끔하게 마련된 미니 바는, 천장에 매달린 대형 샹들리에와 곳곳에 놓인 키다리 야자수가 조화를 이루며 이곳이 특별한 주거공간임을 보란 듯 과시하고 있다. 찾아온 손님을 바깥에 재우는 게 낯설긴 하지만 각 동에 마련된 게스트룸도 타워팰리스가 단순한 집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쪽에 따뜻한 커피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입주자들의 사교공간인 ‘클럽하우스’ 역시 VIP고객만 따로 모시는 공간처럼 화려하게 꾸며놨다. 2층 야외정원에 군데군데 심은 중키의 수십년짜리 등 굽은 소나무들도 주변 아파트의 똑바로 곧추선 나무들과 대조를 이루며 타워팰리스의 품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타워팰리스 상가에 있는 리치웨이부동산은 “요즘 타워팰리스에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보면 이미 분양받아 입주한 사람들의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이 많다. 도곡동·대치동 등지에서 예전부터 알고 지낸 부유층들이 함께 이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사진·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홍준표 “한동훈, 화양연화 정치검사…이재명 수사했지만 망하지 않았냐”
![[단독] 9·19 남북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부터 복원한다 [단독] 9·19 남북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부터 복원한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005/53_17596520200731_20251005500486.jpg)
[단독] 9·19 남북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부터 복원한다

‘단식→선거 참패→사퇴’ 황교안의 방문…장동혁은 평행이론 피할 수 있을까

나경원, 법원 판결 깡그리 무시…“공수처 윤석열 수사는 위법”

‘모범택시’ 이제훈, 계엄 에피소드에 “통제되지 않은 권력 위험 얘기하고 싶었다”

노동부, 현대제철에 “하청 1213명 직접고용 하라” 시정지시

윤석열·현대건설 ‘뇌물 혐의’ 적시…878억 영빈관 대가성 밝혀지나

홍준표 “당대표 목숨 건 단식 하는데…등에 칼 꼽는 영남 중진 X들”

“윤석열 사면” 또 꺼낸 서정욱…“천년만년 민주당이 다수당 하겠냐”

“김건희가 뭐냐, 여사 붙여야지”…‘체포방해’ 재판 속 윤석열 ‘궤변’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