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핵물리학자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미국과 이슬람 모두의 변화를 기원하며…
이슬람의 자살폭탄 공격이 올 한해 세상 곳곳을 피로 물들였다. 이쯤되면 문명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해결 방식들처럼 테러리즘도 사리에 맞는 해법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다른 정신관계 치료와 마찬가지로 ‘테러리즘은 파멸이다’는 사실을 놓고 테러리즘도 좀더 과학적 처방이 시급하다.
소련의 아프간 공격, 그 뒤…
과학적 처방이란 불행하게도 조지 부시가 마음에 품고 있는 방식은 결코 아니다. 그는 마치 스스로가 귀신에 홀린 ‘큰 무당’이라도 된 듯 난폭하게 악령을 쫓아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그의 처방전이 처음부터 의심받은 대로 ‘대테러전쟁’을 통해 스스로 덫에 걸려들고 만 꼴이다. 부시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따르는 사나이들의 은신처라 여겨온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터트리고 그들을 맹렬히 추격했다. 그 결과 부시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따르는 사나이들이 여전히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 손에 쥐었다.

흔히 서양 언론들이나 전문가들은 이슬람의 자살폭탄 공격을 진단하면서 ‘가난’이나 ‘박탈감’ 또는 ‘기회부재’ 탓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게 그거로 모두 ‘가난’에서부터 비롯됐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그런 말들로는 그 극단적인 행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런 말들이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는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가난 때문에 총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에까지 이르기엔 너무 숨이 차다. 쪼들리는 수천만명의 아프가니스탄 시민들과 3억명에 이르는 인디아 불가촉 천민들이 모두 총을 들었다는 본보기거리라도 있다면 모를까.
마찬가지로 서양 학계에서 나돌듯이, 서양이 요구하는 탈종교주의와 민주주의 개발을 이슬람 세계가 거부하면서부터 둘 사이 관계가 틀어진 데서부터 원인을 찾는 접근법에도 동의할 수 없다. 그 요구를 거부했다는 점은 사실이라 치더라도,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과 보수적인 아랍국가들이나, 또 미국과 이슬람 독재자들 관계가 더 따뜻한 상태로 이어져왔으니.
나는 ‘9·11 공격’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1979년 소비에트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리라는 사실은 일찌감치 확신하고 있었다. 당시 레이건이든 지미 카터든 미국쪽 대통령 후보들은 소비에트에 온건한 인상을 줄 수 없었던 시절이다. 국방차관 리처드 펄 같은 이들은 곧장, 아프가니스탄이 쉽게 끝낼 수 없는 위험한 분쟁지역이라는 사실보다는 러시아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런 지겨운 자가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면서 미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 없는 전 지구적 규모의 지하드(성전)를 조직해나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돈줄을 대고 파키스탄이 지원하는 가운데 미국은 응집력이 강한 수니 민병대들을 끌어들였다. 미국은 종교적으로 강경하고 헌신적인 사나이들이 가장 뛰어난 전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던 셈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막대한 돈을 뿌리며 전 세계 신문에 지하드 참여를 자극하는 선전문을 실었다.
소비에트는 1988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뒤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그 무렵 전쟁의 종말을 적시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펴낸 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으나, 20년이 지난 뒤 미국은 그 승리의 진정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러시아가 떠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슬그머니 발을 뺐고, 그 틈을 비집고 이미 1990년대 중반 미국이 창조한 지하드 동맹자들은 역동적인 힘으로 미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탈레반이 등장했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가 전진기지를 차렸다. 그리고 9·11 공격이 뒤를 이었다.
미국도 둔하고, 이슬람은 더 둔하고…
오늘날 미국은 9·11 공격에 따른 온당한 동정심마저 국제사회로부터 잃고 말았다. ‘고결함’ ‘자비로움’ ‘자유로움’ 같은 자화상을 지닌 미국의 완고한 자아도취는 세계 시민사회와 공유할 수 없는 깊은 수렁을 팠던 셈이다. 놀랍게도 미국이 1945년 이후 28개에 이르는 국제전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5대양 6대주에 12대에 이르는 항공모함과 100만 대군을 파견해 수많은 공격용 군사기지를 거느리고 있는 사실을 놓고 미국 시민 대다수는 ‘방위’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수천기에 이르는 공격용 핵무기를 보유하고서도 말이다.

반대쪽에 앉은 세계 시민들이 바라보는 미국이란 건 대개, ‘국제 의견을 독단적으로 무시하고’ ‘국제법과 조약을 경멸하고’ ‘유엔을 악질적으로 냉소하고’ 식으로 굳어져버렸다. 이런 모든 것들이 뭉쳐 미국에 대한 거대한 분노를 잉태했고 마침내 테러리즘이라는 아이를 낳고 말았다.
미국은 아마도 매우 둔한 학생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문제는 가장 둔한 학생들이 이슬람 세계라는 데 있다. 이슬람은 미국으로부터 한번씩 치일 때마다 받는 고통과 굴욕이 모든 이슬람 세계를 하나로 단결시킬 것이고, 그 집단적 분노가 오늘날 문명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기에 충분하리라 예언했다. 이런 아둔함은 자멸적이고 자해적인 테러리즘이 되어 무슬림 자신들에게 돌아왔다.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하는 일을 ‘적’과의 전투보다 더 중요시하는 무슬림 민병대로부터 무슬림 시민들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만약 이 테러와 보복테러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방법이 있다면, 그리고 코앞에 다가온 불쾌한 ‘문명충돌’을 예방할 길이 있다면, 그건 현재라는 현실 속에서 볼 때 서양 시민들에게 달렸다. 부시의 미국이 주도하는 광폭한 전쟁은 런던과 워싱턴과 로마를 비롯한 세계의 거리를 1천만명에 이르는 시민들로 넘쳐나게 했다. 물론 이라크 전쟁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파키스탄을 비롯한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자신들이 결집시킬 수 없는 엄청난 반전 규모를 보며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무슬림들은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 호전정책을 용감하게 질타하는 프랑스를 보았고, 이라크 침공을 죄악이라 나무라는 로마 교황을 보았고, 아름다운 미국 백인 여성 레이첼 코리가 이스라엘의 불도저 길을 막다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무슬림들은 트라팔가 광장에서 끌어내리는 부시 형상을 보기도 했다.
무슬림 내부의 투쟁을 기대한다
그럼에도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런 국제사회 움직임들이 파키스탄 물라(이슬람 지도자)들에게 그리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또 ‘파키스탄 사람들은 본디 외국(외국인)을 싫어하고 수많은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가르치는, 그 소름 끼칠 만큼 썩어 문드러진 각급 학교 교과서로부터 배운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동안 극단주의 무슬림들이 파키스탄에서는 소수인 크리스천들을 되풀이해 공격하지 않았던 일이 그나마 내가 본 가장 중요한 진전이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무슬림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원화되면서 극단주의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무슬림 자신들 내부에서 자신들이 투쟁하는 일이다. 이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식민지배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 반대급부로 이슬람 세계에 받아 먹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탓이다. 말하자면 외적 요인으로 무슬림이 변할 만한 가능성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슬람은 코란처럼 확고한 불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은 변할 수 있을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무슬림 국가에서 개혁을 위한 가장 큰 희망은 부시의 ‘악의 축’ 일원이 되는 일이다. 이란은 무슬림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교육제도를 지녔고 그 시민들은 아랍세계와 비교해서 현대 문화 수용에 훨씬 더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젊은이들은 20년이 넘는 신정통치에 소름 끼쳐하고 있다. 미국은 사실을 숨겼지만, 9·11 공격이 벌어지고 난 뒤 곧장 4만명이 넘는 이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촛불을 들고 미국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부리나케 미국의 동맹국임을 선포했던 파키스탄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뤘다. 이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역설적인 세상이다.

이슬라마바드= 페르베즈 후드보이(Pervez Hoodboy)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페르베즈는 현재 파키스탄 쿠아이데 아잠대학과 미국 MIT 물리학과 교수로 반핵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특히 그는 이라는 저서를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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