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두려운 사형집행 미결수 56명의 잔인한 가을… 그들은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신문 봤어?”
“봤죠. …하지만 괜찮아요.”
10월7일 경기도 의왕의 서울구치소. ‘사형수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김자선씨와 사형수들 사이에는 짧은 대화 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40년 가까이 사형수들을 만나고 교화에 힘써온 김자선씨의마음은 편치 못했다. 사형수들도 내색은 않았지만 불안한 기색이었다.
최병국 의원의 ‘불안한’ 발언
지난 4일 법무무 국정감사에서 나온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의 ‘법대로’ 발언 때문이었다.
“97년 12월30일 이후 현재까지 사형집행이 한건도 없었으며 올해 7월 현재 미집행 사형수가 56명에 달한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사형집행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법무부 장관이 명령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법무부가 여론을 의식해 현행 법규를 사문화시키고 있다. 이는 국가형벌권과 법의 안정성을 해치는 행위다.”대검찰청 공안부장, 중수부장을 지낸 최 의원의 발언은 사형수들에게 곧 비수였다.
현 정부 들어 사형수들은 최 의원의 지적대로 생명연장을 받았다. 사형집행이 한건도 없었다. 집행은 법무부장관 소관이지만, 스스로가 사형수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집행을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는 달리 말해 대통령이 바뀌면 언제든지 사형집행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독방에 앉아있는 사형수들에게 대통령 선거는 시한폭탄처럼 다가오는 죽음의 그날에 가깝다. 12월19일 대선이 두려운 것이다. 특히 정권교체기에 이들의 삶은 불안하다.
김영삼 정부는 대통령 선거 뒤인 97년 12월30일 다음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23명의 사형수를 처형했다. 김자선씨는 “사형수들도 구치소에서 여러 가지 신문을 보기 때문에 최 의원의 발언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수 출신이고 노벨평화상까지 탔는데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는 “김대중 정부 때 사형선고는 계속되고 집행이 되지 않아 사형수가 계속 늘어난다. 차기 정부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권교체기에는 사형집행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했다. 천주교쪽은 정권교체기의 사형집행 가능성을 막기 위해 대통령 후보들에게 사형제에 대한 공개질의를 하고, 11월2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사형제도를 다룬 영화 의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 초청강연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사형수, 그들은 누구인가

한 성직자는 최근 사형수들의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한 사형수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매일 죽음을 준비하고 산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습니다. 덤으로 주신 귀중한 삶을 더럽히지 않고 기쁘게 심판의 순간을 맞을 수 있도록 제발 힘을 주세요.’”
죄는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제도는 많은 반대와 논란을 낳고 있다. 법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지만, 나라 안팎의 인권단체들은 인권 대통령을 내세운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사형집행이 없었고 8명의 사형수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을 시류에 영합한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치적’으로 평가한다.
젊은이가 있었다. 나이는 스물일곱살. 초등학교 때까지는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착한 아이였다. 하지만 사흘이 멀다 하고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대는 아버지 밑에서 그는 점점 비뚤어진 반항아가 되어갔다. 결국 가출을 일삼다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집 밖으로 돌았다. 그런 와중에도 배움에 대한 욕망을 어쩌지 못해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한 그였다. 그러나 운명의 1992년 10월. 그날도 술에 취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두들겨팼고, 급기야 드라이버로 어머니의 관자놀이를 찍어 실신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어릴 때부터 쌓여온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폭발했고,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아버지를 죽였다. 구속된 뒤 그는 면회온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이제 편안히 사세요.”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2002년 10월. 비운의 사형수 김진태씨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접견실에서 만났다. 그는 서른일곱살의 ‘아저씨’가 돼 있었다. 칸막이 너머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160cm도 안 될 것 같은 작달막한 체구에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상체, 짧은 머리 탓에 경량급 역도선수를 연상케 했다. 그는 사형수라는 파리한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매우 정력적이고 활기차 보였다. 매일 30분씩 주어지는 운동시간뿐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리운동으로 앉았다 일어났다 100회, 허리굽히기 100회, 푸시업(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60회, 까치발들기 50회씩을 매일 빼먹지 않고” 하기 때문이리라.
그는 확실히 살아 있었다.
“사형수로서 10년을 살았다면 이미 사망선을 넘어선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생과 사의 고비를 숱하게 넘나들었죠.”

“삶은 늘 내일 오전까지만 보장된다”

김씨에게 대선을 약 2달 앞둔 심정을 묻자 이렇게 시적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사형수에게 삶은 ’내일 오전’까지만 보장된다. 사형이 집행되는 오후를 기약할 수 없다. 그는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지내온 것이다.
20년 만에 최대 규모인 23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97년 12월30일. 그는 편지글에서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은 영적인 동물이기에 그날 아침 일찍 직감으로 알았습니다. 한 열시 반쯤 되었을까 담당님이 면회왔다고 호명하더군요.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긴 한숨이 배어나왔습니다. 애써 마음을 담담히 추스르며 옷을 갈아입고 방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다음 천천히 담당님을 따라갔습니다. 집행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공허하리만큼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담당님의 발길은 사형장쪽으로 가지 않고 접견장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그럼 진짜 면회온 것일까.’ 뒤숭숭한 마음을 다잡고 접견장을 따라가보니 목사님께서 충혈된 눈으로 서 계셨습니다. 그제서야 진짜 면회를 온 것임을 알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사형집행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빨간색 명찰을 달고 있는 사형수들은 살아 있는 동안은 형집행이 되지 않은 영원한 미결수이므로, 미결수들이 대기하는 구치소에 수용돼 있다. 한방에 6~10명씩 들어가는 방에 사형수들은 한명씩만 배치된다. 그리고 사형수들은 석달에 한번씩 방을 옮긴다.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소문난 모범수다. 방을 옮기더라도 언제나 화장실 청소는 그가 도맡아 한다. 그렇게 속죄를 하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영치금을 아껴 100만원을 모아 소년소녀가장에게 전해달라며 내놓기도 했다.
김씨의 어머니 장태순(54)씨는 “전차에 받힌 듯 멍멍해 검사 앞에서 제대로 해명도 못했던” 자신을 탓하며 수없이 가슴을 쳤다. “솔직히 진태가 죽이지 않았다면 제가 남편을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약을 타 남편을 죽이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요. 다행히 거기서 건강하게 밝게 살고 있으니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 이제 저도 마음을 비웠어요. 몸은 그곳에 있더라도 삶의 문이나 열렸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겉보기엔 종교에 귀의해 생사를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사형수들도 자신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외부 상황 등에 큰 관심을 보인다.
“꽤나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하고 있기에 처음보다는 죽음의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았는데 신문에 실린 ‘사형제도 합헌 결정’(헌법재판소)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네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누구나 한번은 가는 거다. 마음을 약하게 먹지 말자’라고. 재판부 판결문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않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으니만큼 죽음은 점점 가까이 오고 있을 것입니다.”(1996년 11월29일 편지) “이곳 사람들은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말을 많이 하지만 그걸 기대하고 있으면 생활의 리듬이 끊어질 것 같아요.”(97년 12월20일 편지)

이 편지를 쓴 정아무개씨는 97년 12월30일 23명 가운데 한명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애절한 기대
97년 12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서울구치소에 있었던 진관스님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뒤 구치소의 사형수들은 최소한 앞으로 사형집행은 없을 것이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도 가능할 것으로 들떠 있었다”고 말했다. 진관 스님은 “목욕할 때 등을 밀어주며 알고 지내던 한 사형수는 대선 뒤 운동도 열심히 하고 농담도 자주 하는 등 희망에 차 있었는데 그해 연말에 갑자기 사형이 집행됐다”고 말했다.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자 사형수들도 덩달아 축하를 받았다.
“지난해 12월에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축하합니다. 꼭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하며 저를 고무시켰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좋은 일이란 잘하면 빨간 명찰을 뗄 수도 있을 거라는 암시일 것입니다.”(정아무개씨 2001년 2월4일 편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사형수들의 애절한 기대를 저버리고 사형수 출신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는 끝나가고 있다. 이들 56명에게 ‘법대로’ 목에 줄을 매달아 죽이는 게 국가형벌권과 법의 안정성을 지키는 행위일까.
배움이 짧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현재 김진태씨를 비롯한 사형수들의 감형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형생활을 할 때 사형수들과 만난 조계종 사형제도폐지위원장 진관 스님은 “자백과 서류에 의존하는 재판절차의 특성상 사형수들의 대부분은 자기 방어능력이 떨어지는 배움이 짧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 가운데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은 뒤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하다는 사람이 꽤 있다”고 말했다.
87년부터 97년까지 101명의 사형집행 현황을 분석한 김인선 순천향대학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흔히 말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적어도 사형제도에는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먼저 101명의 학력을 보면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자가 40명(39.6%)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중졸 30명(28%), 고졸 25명(24.75%), 무학 6명(5.94%)이었다. 101명 가운데 대졸자가 없는 이유는 87년 이후 간첩죄로 사형이 집행된 경우가 없는 점도 작용했지만,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 네트워크와 지식, 재력을 바탕으로 적극적 변호를 펼쳐 최소한 사형을 피해갈 수 있었던 탓으로 보인다.
사형이 집행된 101명의 직업을 보면 가장 많은 63명(62.3%)이 무직이었고, 노동 7명, 농업 5명, 상업 4명, 운전기사 5명 등이었다. 이에 대해 김인선 교수는 “무직자가 많은 것은 실업률이 상당부분 범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과 직업으로 보면 대부분 블루칼라 출신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사형수를 개인의 흉포한 심성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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