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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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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 정치를 모르지 않는다

‘한국의 마크롱’ 태어날 수 있을까, 정당활동 하는 청소년들
등록 2020-03-07 22:18 수정 2020-05-03 04:29
공직선거법 개정에 맞춰 정의당은 지난 1월7일 ‘18살 당원 입당식’을 열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공직선거법 개정에 맞춰 정의당은 지난 1월7일 ‘18살 당원 입당식’을 열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핀란드, 34살 세계 최연소 총리 탄생’ ‘역대 최연소인 39살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해외 젊은 정치인들이 정부와 정치의 주역이 되는 소식이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는 레토릭(수사)이 있다. “한국에선 왜 청년정치인이 나올 수 없나→ 평균연령 55.5살(제20대 국회의원선거 당선 당시 기준)인 중년 남성 위주의 국회가 문제다→ 청년정치인을 발탁해야 한다→ 정치인 자질이 있는 청년풀(집단)이 얇다→ 정당 내 육성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논쟁은 이쯤에서 마무리된다. 청년정치인 육성에 대한 관심도 반짝, 선거가 끝난 뒤에는 50~60대 남성 위주의 입법부와 행정부가 꾸려진다. 프랑스나 핀란드의 10대들이 일찌감치 정당에 가입해 당원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 20대 정치인이 되고 그중 뛰어난 이들이 30~40대에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모범 사례’는 늘 먼 나라 이야기였다.

탄핵·촛불 대선으로 싹틔운 ‘청소년 정치’

물론 우리 정당에도 먼 나라 이야기를 지금 이곳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청소년들이 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돼, 18살은 투표뿐만 아니라 정당에도 가입할 수 있어 법적인 당원 자격이 보장됐다. 30대 총리, 40대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나라를 위한 걸음마를 내디딘 것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5월 ‘촛불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원내 정당에서도 청소년들의 정치활동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탄핵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정치적 효능을 느낀 10대들도 ‘새로운 나라’를 꿈꿨고, 정당들은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정의당은 입당을 원하는 청소년 대상으로 ‘예비당원제’를 운영해왔는데, 예비당원 50여 명이 2017년 4월 예비당원협의체 ‘허들’을 꾸려 활동 폭을 넓혔다. 더불어민주당 청소년 지지 모임인 ‘더불어청소년’은 2017년 6월, 옛 바른정당 청소년 지지 모임인 ‘바른미래’는 같은 해 8월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옛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에도 청소년 지지 모임이 생겼다.

“밖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정당 안에서 목소리를 내니 반향이 다르더라고요. 정치란 게 무언가를 바꾸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만큼 책임도 느꼈고요.”

우종혁(21) 전 새로운보수당 대학생위원회 위원장(현재 미래통합당)은 고3이던 2017년 여름 옛 바른정당 청소년 위원회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으며 정당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하던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낡은 수구보수 대신 개혁적인 보수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바른정당을 지지했다. 최민창(20) 바른미래 위원장을 도와 ‘바른미래’를 만들었다. 당시 청소년 100여 명이 활동을 넓혀가자 바른정당에서 이들에게 명예당원 자격을 주며 당내 활동 기회를 줬다. 최민창씨가 중앙위 청소년 위원장을 맡고 우종혁씨가 서울시당 위원장(중앙위 수석부위원장)을 맡아 당내 청소년 정치활동을 이끌었다. “‘1020 플랜’이란 걸 만들었어요. 10대들이 성장해서 당 대학생위원회로 가고 거기서 계속 공부하고 토론하며 30대 청년위원회로 가고…. 청소년-대학생-청년으로 당내 상향식 인재 양성 체계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우 전 위원장과 고등학생 명예당원들은 의원들을 초청해 ‘국회 정책탐구 세미나’를 여는 등 공부와 토론에 활동의 무게를 뒀다. 청소년 현안에 대해 논평도 냈다. “저는 청소년위원회 활동이 자연스레 대학생위원회 활동으로 연결됐어요. 빨리 정치권에 들어오는 게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정당과 정치를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아주 큰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마크롱의 탄생’을 앞당기려면 정당에 들어와 학습하는 게 빨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학교 교훈 혐오표현·문제적 학칙 수정 요구

‘더불어청소년’은 2017년 6월 100여 명이 모여 창립한 뒤, 추미애 당시 당대표에게 청소년들이 민주당에 바라는 의견을 모아 전달하고, 전·현직 대통령(김대중·노무현·문재인) 연설문 읽는 모임을 만들며 활동했다. 선거법 개정 뒤 당 청년위원회(청년당) 아래 청소년분과위원회로 당내에 편입됐다.

더불어청소년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양준하(20)씨는 현재 민주당 대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을 뒤늦게 동영상으로 보고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여했던 그는 “청소년이 미래 세대로서 정치에 가장 길게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이 정치 당사자인데 항상 수동적인 존재로 취급당해 그걸 바꾸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에 대해 잘라 말한다. “청소년 정치는 해롭다는 인식이 청소년의 정치활동을 금기시하는데, 그건 청소년 잘못이 아니잖아요. 어른들이 나쁜 정치를 보여줘서 그런 것 아닌가요? 그럴수록 청소년이, 청년이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정당활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니 정당활동을 하면서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제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안목과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때 활동에 집중하면서 대학생으로 나를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했어요.”

정의당은 2015년부터 예비당원제를 운용하며 다른 원내 정당에 견줘 청소년 정당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월 18살 예비당원 16명을 위한 정식 당원 입당식도 열었다.

강원도 철원여고를 다니며 청소년 인권운동을 해온 노서진(18)씨는 2018년 4월 예비당원으로 입당해, 현재 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생일 때문에 첫 투표권을 갖지는 못한다. “청소년이라고 당연하게 반말을 듣죠. ‘너희는 아직 어려서 몰라’ 같은 말을 듣거나 반대로 ‘어린애치고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데, 저는 이런 차별에 동의할 수 없었어요. 정의당이 가장 청소년 인권에 목소리를 내는 정당인 것 같아 입당했습니다.” 정의당 청소년들은 학교 교훈의 성차별·혐오 표현을 조사해 발표하고, 학생들을 옥죄는 학칙을 조사해 기자회견을 여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당 가입 연령 제한 폐지’ 등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헌법소원 청구인단에 함께하기도 했다. 노 위원장은 “20~30대 새로운 정치인이 나오게 하려면 10대 때부터 당에서 목소리를 내고 당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위치에 세워야 한다”며 청소년들의 당내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원 출마 연령 낮춰 ‘늙은 정치 바꾸자’

이들은 18살로 정당 가입 연령이 내려온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원내 정당은 여전히 청소년의 당내 활동에 소극적이다. 우선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들처럼 정당 가입 연령을 법으로 제한하지 않고 정당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 연령(현행 만 25살 이상)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늙은 정치를 바꾸자’는 목소리로 연결된다.

“기성 정치인들이 청년정치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변화가 없잖아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청년정치를 원한다면 기성 정치인들의 변화가 필요해요. 그동안 청년을 병풍으로 세웠다면 이제는 기성 정치인들이 병풍이 되는 걸 감수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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