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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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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카이저 소제처럼 유유히

‘역탈출’ 비행기로 돌아간 베이징,
여기서나 저기서나 ‘탁구공’ 신세가 본 놀라운 반전
등록 2020-02-29 16:24 수정 2020-05-03 04:29
중국 광저우에 사는 한 한국인 아파트 문에 봉인 딱지가 붙어 있다. 아파트 주민위원회에서는 한국인이 사는 이 집을 봉쇄조치하며 강제 격리했다. 중국 남경시 아파트도 26일 밤부터 주민들이 한국인 출입을 강제로 금지하고 있다. (사진은 한 지인이 제공)

중국 광저우에 사는 한 한국인 아파트 문에 봉인 딱지가 붙어 있다. 아파트 주민위원회에서는 한국인이 사는 이 집을 봉쇄조치하며 강제 격리했다. 중국 남경시 아파트도 26일 밤부터 주민들이 한국인 출입을 강제로 금지하고 있다. (사진은 한 지인이 제공)

1.

‘기막힌 반전’. 2월20일 이후 한국 언론에서 가장 많이 쓴 표현이다.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폭증한 그날 이후, 지인들에게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간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쓴 단어 역시 바로 ‘반전’이다. 영화 의 마지막 장면에서 절름발이였던 케빈 스페이시가 멀쩡하게 걸으며 천천히 사라지는 ‘카이저 소제’로 돌변했을 때 느꼈던 소름과 충격에 가까운 반전이었다.

중국에서는 우한과 후베이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확진자 수가 계속 줄어들며 안정세를 보이고, 윈난성 리장 같은 몇몇 지역은 이미 전염병 ‘청정지역’으로 선포돼 다시 일상을 재개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확진자 30명 내외로 거의 ‘상황 종료’인 줄 알았던 한국에서 뜻밖의 비극이 시작됐다. 한 지인은 신천지가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지옥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2.
인천공항 가는 길. 트렁크 가득 김치와 반찬 등 먹거리를 잔뜩 담아서 택시를 타고 ‘서둘러’ 공항으로 갔다. 베이징에서 올 때 편도 티켓만 사서 온 터라 2월21일 금요일 오후부터 부랴부랴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편도로만 샀던 이유는 당시 베이징~인천 항공료가 ‘역대급’으로 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천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은 더 쌌기에 가격이 계속 내려갈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금요일을 기점으로 인천발 베이징행 비행기 티켓 가격은 계속 올랐다. 망설일 여유도 없이 바로 가장 싼 티켓을 그 자리에서 ‘클릭’해 결제했다. 다음날 확인한 가격은 전날보다 더 올라 있었고, 좌석도 거의 매진이었다. 2월24일 월요일부터 항공료는 내가 산 가격의 세 배 이상으로 뛰어 있었다.

“어느 나라로 가세요?”

인상 좋아 보이는 기사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프랑스 가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 ‘수상한 시절’에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에 간다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고, 아저씨에게 괜한 공포를 불러일으킬까 염려됐기 때문이다. “좋은 데 가시네요. 거긴 아직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지 않은 것 같던데….” 타들어가는 속도 모르고, 아저씨는 계속 ‘좋은 데’ 가는 나에게 ‘좋은 말씀’을 몇 마디 더 건넸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는 거 보면서 참 별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신천지라는 아주 의외의 종교집단에서 터졌잖아요. 근데 저는 이게 별로 의외라는 생각이 안 들고, 오히려 터질 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에서 비이성적인 이단 종교집단들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그런 광신적인 종교집단에 몰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온갖 정치인이 그런 세력을 이용하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다 신천지 욕을 하는데 그렇게 욕만 하면 누가 겁나서 자기가 솔직히 신도였다고 순순히 말하겠어요? 지금 한·중·일 세 나라가 다 코로나19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잖아요. 어차피 사건이 벌어진 이상 전 우리나라가 이번 기회에 얼마나 선진국다운 국민의식과 수준 높은 방역 시스템을 보여주는지 좋은 시험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중국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죽어 나가고 병들어가는데, 뭘 하나라도 배워서 고치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에어프랑스 팻말이 보이는 국제선 출발층 앞에 나를 내려준 아저씨는 “좋은 여행 되십시오~”라는 인사말을 하고 사라졌다. 나는 이제 ‘좋은 데’로 돌아간다.

베이징 셔우듀 공항 입국심사대(왼쪽), 아파트 입구 무인택배보관소(오른쪽)

베이징 셔우듀 공항 입국심사대(왼쪽), 아파트 입구 무인택배보관소(오른쪽)

3.
인천공항은 한산했지만, 베이징행 비행기 안은 만석이었다. 휴가철 극성수기 때보다 더 많은 사람과 짐이 꽉 들어차 그야말로 발 디딜 공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대다수가 중국인이었다. 이렇게 많은 중국 사람이 왜 갑자기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엑소더스! ‘역탈출’이 분명했다. 나 역시 서둘러 가지 않으면, 혹시 중국 정부가 ‘입국 제한’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친구는 한국도 입국 제한을 안 했는데, 중국이 설마 한국을 입국 제한하지는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오래 살아본 ‘감’으로 중국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예감했다. 물론 심정은 ‘설마’ 했지만 말이다.

베이징 서우두공항은 예상대로 한산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특별한 검역이나 한국인 특별검역 절차는 없었다. 열감지기로 발열 체크만 하고 건강조사서만 작성했다. 인천공항 곳곳에 비치된 손세정제도 베이징 공항에는 단 한 개도 없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거대한 나라는 돈 많은 부자와 ‘빅브러더’ 같은 공포의 감시권력은 곳곳에 있지만 (전염병이 발생하는데도) 공공시설에 손세정제 같은 사소한 배려는 좀체로 없다.

휴대전화를 꺼내서 공항 내 사진을 찍는 순간, 갑자기 까만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 두 명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그들은 나에게 ‘사진 찍지 말라’면서 방금 찍은 사진을 다 ‘삭제하라’고 명령한다. ‘공항에서 왜 사진도 못 찍게 하느냐’고 했더니 잠시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더니 ‘금지사항’이라며 휴대전화를 강제로 압수할 자세를 취한다. ‘별것도 아닌’ 사진 한 장을 지우며 ‘내가 중국에서 거의 20년 살았는데 공항에서 사진 못 찍게 하는 건 처음이다’라고 말하려다 그만 참았다. 엄혹한 시절이니 말이다.

‘웰컴 투 차이나’라는 글씨가 나오는 출국심사대 앞 화면에선 중국 국영방송 간판 아나운서가 ‘(집에) 머물고,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자’고 보도하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던 데서 생긴다”라고 했다던 파스칼의 말이 떠올랐다. 파스칼이 이 말을 했던 뜻은 아주 심오하겠으나, 어쨌든 ‘숨구멍 좀 트여보겠다’고 베이징을 잠시 탈출했던 나는 또 다른 불행을 겪었고 곧 다가올 불행도 대기 상태였다.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오며 휴대전화를 열었다.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아파트 주민 단체대화방부터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이 ‘우리 아파트에 한국인이 많이 사는데, 이대로 그들을 들여보내도 되는가. 무슨 조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대화방 마지막 메시지에는 ‘지금 왕징(한국인 밀집 지역)아파트 위원회 관계자들이 회의 중이다. 오늘 내로 베이징에 입경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정책이 내려올 것이니 기다리라’는 동대표의 답변이 남아 있었다. ‘웰컴 투 차이나’는 우리에게 해당하는 인사말이 아니었다. 중국에 사는 우리는 한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우리는 탁구공 같은 신세’라고 했던, 같은 베이징에 사는 후배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4.
나는 비교적 운이 좋았다. 한 달 전, 후베이 할머니네 갔던 아이들을 봉쇄 하루 전에 ‘탈출시킨’ 일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한국에 간 지 일주일 만에 ‘조기 귀경’을 결정한 탓에, 하루만 더 늦었어도 ‘강제 자가격리’를 당할 뻔한 일을 피했다. ‘회의 결과’는 그날 밤 바로 신속하게 공표됐다. ‘2월24일 이후 귀경한 모든 외국인(사실상 한국인)은 2주 자가격리 뒤 출입증을 발급해준다. 그 기간에 아파트 밖으로의 외출은 금지되며, 이를 위반할 때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던 ‘회의시간’에 나는 이미 집에 들어와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다른 많은 아파트에서는 이미 한국에서 확진자가 폭증할 때부터 자의적으로 출입증을 발급하지 않고 2주 자가격리를 실시했다고 한다. 또 들리는 말로는, 지금은 운 좋게 격리 신세를 면했다 할지라도 며칠 기다리면 집 근처 관할 파출소에서 직접 방문해서 입국 날짜를 확인한 뒤 ‘자가격리증’을 발부할 것이라고도 했다. 출입국관리국에서 입국과 동시에 관할 파출소로 통보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후베이와 우한을 거쳐서 왔던 아이들과 남편도 ‘용케 알아내서’ 연락해왔는데, 출입국 기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외국인은 얼마나 통제가 쉽겠는가. 나도 조만간 방문을 받고 또 격리를 당해야 하는 신세이다.
그나마 베이징에선 자가격리를 당하지만, 뉴스를 보니 산둥성과 지린성 등에선 아예 공항에서부터 강제 격리 시설로 보내지고 있다. 산둥성 쪽에선 며칠 ‘확진자 제로’ 상태가 지속하고 조만간 모든 일상이 정상으로 회복될 시점에 또 다른 감염원이 들어와 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물론 이해는 된다. 하지만 ‘당신들이 과연 우리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가’라는 서운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에서 고개를 든 ‘중국인 혐오’ 정서에 진저리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지인들에게 “바이러스는 항상 새로운 숙주를 찾아다니며 변종을 만들어낸다. 코로나19도 그런 변종 바이러스 아닌가. 마찬가지로 한번 퍼지기 시작한 혐오 정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혐오 숙주를 찾아다니며 다양한 변종 혐오 정서를 만들어낼 것이다”라고 말해왔는데, 중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을 보고 있다.
어떤 중국 누리꾼은 그들 나름대로 쌓인 서운함을 내보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우리를 차단한다고 하지 않았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대놓고 우리를 차단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마찬가지다. 당신들이 우리를 감염원이라고 했듯이 우리도 우리나라를 새로운 감염원에게서 지키려는 것일 뿐이다.” 물리쳐야 할 적은 바이러스인데 우리는 이미 상호 혐오 전쟁을 시작했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못한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국민청원이 등장하고, 아직도 ‘우한폐렴’이라는 표현을 쓰는 보수언론들은 이게 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못한 탓’이라며 모든 공격을 ‘무능한 정부’로 돌린다.
“유대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모두 ‘악마’ 히틀러 탓으로 돌리면 모든 문제가 아주 간단해진다. 그리고 독사가 죽었으니 그 독액도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독액은 결코 사라진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있다. 국가와 정당, 개개인간에 서로를 계속 적대시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1946년 미국을 방문한 카뮈가 컬럼비아대학에서 했던 ‘인류의 위기’라는 연설문 내용 중 일부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인류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돌아온 사람은 아파트내 진입금지'라는 푯말

'한국과 일본에서 돌아온 사람은 아파트내 진입금지'라는 푯말

5.
‘인류의 위기’는 ‘가정의 위기’도 불렀다. 중국 곳곳에서 ‘한국인 입국 제한’을 한다는 소식과 아파트 주민들이 단체대화방에서 끊임없이 ‘한국인 출입금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그 분노와 서운한 감정은 결국 ‘중국인 남편’에게로 퍼부어졌다.
“너희는 너무 오만하고 겸손이라고는 티끌도 없어! 가장 먼저 도와준 나라가 누군데 지금 와서 한국인들 다 나가라고 하는 거야! 애초에 너희가 잘 막았으면 전세계가 이런 꼴이 나겠어? 거짓말만 하는 정부 욕은 하면서 왜 그들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복종만 하는 건데? 그래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국가라고! 우리니까 이 정도로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대응하는 거야! 알아 몰라?” 저녁 뉴스를 보다가 터진 ‘가정불화’는 결국 냉전체제로 접어들었다. 마음의 앙금이 깊어서 아마 쉽게 해빙될 것 같지는 않다.
그날 저녁 뉴스에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었다. 2월26일 저녁 7시 뉴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조만간 이라는 책을 펴낸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책은 ‘시진핑 주석이 대국의 지도자로서 보여준 인민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투철한 사명감, 탁월한 전략적 식견과 지도력을 집중적으로 반영하며, 시진핑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통일된 지도하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전염병 방역이라는 인민전쟁을 어떻게 치러냈는가’를 주요 내용으로 담는다고 한다.
다시 영화 의 마지막 반전이 생각났다. 불타는 배에서 살아남은 절름발이 케빈 스페이시가 마지막에 가짜로 절뚝거렸던 다리를 펴고 유유히 살아서 걸어나가는 ‘카이저 소제’가 되는 장면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반전이었다.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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