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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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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지나가면 손님이 올까요?

정부는 특단의 대책 내놓겠다지만
‘570만 김 사장’의 기초체력은 이미 바닥
등록 2020-02-29 16:06 수정 2020-05-03 04:29
2월24일 저녁 서울 망원시장에서 두부가게를 운영하는 김진철 사장이 남아 있는 두부를 바라보고 있다.

2월24일 저녁 서울 망원시장에서 두부가게를 운영하는 김진철 사장이 남아 있는 두부를 바라보고 있다.

‘유령도시 같은’ ‘일주일 더 휴업’ ‘반토막이 아니라 10분의 1 토막’ ‘속상하고 아리는 마음’. 자영업자 온라인 카페를 메운 대구 상인들 이야기는 우선 눈앞에 닥친 거대한 재난에 절망한다. 이내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대구 서문시장 화재로 매장 전소했을 때 힘들게 악착같이 재기했는데 또 저한테 이런 일이 생기네요.’ ‘벌어놓은 돈이 없는데 무얼로 버텨야 할지.’ 질문이 이어진다. ‘신용이 좋지 않은데 추가 대출받을 방법이 없느냐’고, ‘임대료 깎아달라는 이야기 건물주에게 어떻게 꺼내야 하느냐’고 다급하게 묻는다. 서문시장의 착한 임대료 운동, ‘대구 맛집 일보’ 페이스북 페이지가 벌인 자영업자 재료 소진 운동이 훈기를 더한데도, 모두 누리기에는 역시 부족하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영업자 고통

대구·경북 지역은 전국 평균(20.8%)에 견줘 자영업자 비중이 높고(대구 23.1%, 경북 28.1%, 경제활동인구조사 2019년 기준) 최근 고령 자영업자 대출, 비은행권 대출 비중이 늘어 부채 건전성 악화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다. 여기에 여느 자영업처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더해진다. “지역 경기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에 기반한 온라인 경쟁 상대가 부상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 자영업자에게 비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되고 있다.”(2020년 1월, 한국은행 대구·경북지부, ‘대구·경북 지역 자영업자 대출의 건전성 평가 및 시사점’)

대개 기업 활동이 변동성을 줄이고 성장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라고 본다면, 둘 다 미약한 자영업에 대한 걱정이 어제오늘 일도 대구만의 일도 아니다. 불현듯 던져진 코로나19 사태는 570만 자영업자의 그 익숙한 현실을 한층 적나라하고 고통스럽게 드러낸다. 위기 앞에 변동성을 자동으로 줄여줄 안전장치는 없고, 지금을 버티게 해줄 미래는 불투명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정부는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충분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별다른 도리도 없다.

대구에서 240㎞, 2월24일 서울 망원시장에도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망원시장 칼국숫집에서 식사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사실이 아니었다. 망원시장 상인회장을 겸하는 ‘엄마손 왕두부’ 김진철 사장은 경찰서로, 구청으로 뛰어다니고 아들을 시켜 글 올린 사람을 찾아 메시지를 보내 사과글을 받아냈다. ‘가짜뉴스인 줄 몰랐습니다. 피해를 드린 점 정말 죄송합니다.’ 소동은 적당히 마무리됐는데 김 사장 속은 저녁까지 벌렁댄다. “2월 초에 반토막 났다고 기자님한테 이야기하고 나서(제1299호), 그다음 주에 손님이 80% 정도 수준까지 회복됐어요. 확진자가 급증하고 지금은 다시 40% 수준으로 뚝 떨어졌어요.” 첫 충격을 말했던 3주 전보다 힘은 더 빠진다. 대구만큼 극적이지 않아도, 전국 곳곳 자영업자의 상황이 비슷하다. “우리 시장만은 피해가라, 피해가라. 요즘 매일 빌어요.” 그래도 서울,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핫한 망원시장인 터라 손님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평소보다 사람 사이 간격이 드문드문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나마 김 사장네 두부가게에 멈춰서는 이들은 15분에 한 명 정도다. 건너편 떡집에도 예전 같으면 이 시간 거의 비어 있을 매대에 알록달록한 떡이 물색없이 얹혀 있다. 판매대에 멀뚱히 선 아들의 등을 바라보며 김 사장이 말한다. “전염병 같은 이런 예상 못한 외부 충격 같은 건 앞으로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줄지는 않을 거라고요. 지구환경이 그렇게 돼버렸으니까. 그럴 때마다 우리는 푹푹 꺾일 거예요. 누군가는 나가떨어지고. 버틴 사람들도 기초체력은 소진돼 있고.”

세금 유예, 대출금리 인하로 소나기는 피하겠으나

한나절 소란으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김 사장이 생각하는 것도 결국 충격과 기초체력이다. 23년째 장사를 해오면서 해마다 읊조렸다. “작년보다 힘드네.” ‘작년보다 힘드네’의 강도는 메르스나 사스 사태나 조류독감(김 사장은 달걀도 함께 판다) 때 좀더 셌는데, 어쨌든 매년이 전년보다 힘들었다. 그렇게 ‘기초체력’이 때로 가쁘게 때로 완만하게 바닥나는 걸 느낀다. 충격에 푹푹 꺾이는 변동성 속에, 지난 20여 년 마땅히 상승 반전의 추세조차 잡을 길 없었던 김 사장의 한숨은 코로나19 앞에 한층 깊어진다.

정부는 나서고 있다. “특단의 대응”(2월18일 국무회의)을 강조하고 “추가경정예산을 검토하라”(2월24일 수석·보좌관 회의)는 문재인 대통령 말에 야당조차 토 달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는 자영업자에게 ‘급한 비’를 피할 공간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 낯선 일은 아니다. 2015년 메르스 때 긴급경영안정자금이 풀렸고, 지난해까지 경기침체 때 일자리 안정자금, 각종 지역 상품권을 내놓았다. 매출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정비용 부담이라도 덜어야 한다. 건물주의 임대료 인하를 세제 혜택으로 유도하고, 세금을 유예하고, 대출금리를 내리는 일은 벼랑에 내몰린 자영업자에게 소낙비 막는 우산이 될 수 있다. 김 사장의 반응을 듣는다. “없는 것보다야 좋죠. 그런데 앞으로도 충격은 많을 텐데 그때마다 늘 대책이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충격이 있을 때 고통을 줄이는 길이 대통령의 결단과 특단의 무언가뿐인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결단에 뒤이은 특단의 대책은 다시 생각하면 시스템이 불완전해서 절실하다. 사회안전망을 갖추었을 때 돈은 자연스럽게 정부와 민간을 오가며 안정을 꾀한다. 예를 들어 경제 상황이 나빠 실업자가 늘거나 저소득층이 늘면 자연스럽게 실업급여나 복지수당이 풀리며 재정이 줄어드는 대신, 민간으로 돈이 흘러들어 간다. 버팀목이 된다. 경제 상황이 좋으면 더 많은 노동자와 기업이 낸 세금으로 나랏돈이 쌓인다. 재정과 복지지출의 자동안정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 처지에선 그저 더 사회에 기여하거나 더 도움받는 상황이 존재할 뿐이다. 여전히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2000년대 이후 우리 경제정책은 정규 노동자와 저소득층을 이 틀 안에 더 많이 끌어안아온 과정이었다.

혁신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불행히도 600만 가까운 자영업자만은 이런 체계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늘었지만 사회적 보호의 척도로 볼 수 있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는 여전히 2만2천 명 정도(2019년 11월 기준)에 그친다. “직원들이랑 아들까지는 고용보험 들어줬지만, 나까지 들기는 무리”였다는 김 사장도 경기가 나쁠 때 누군가의 결단으로만 재정의 도움을 받는다.

어찌됐든 버티고 나면 상황은 조금 진정되겠지만 완벽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금융시장의 분석은 자영업자에게 매섭지만, 사실이 될 가능성이 큰 전망으로 채워진다. “기존 오프라인 매장만 이용하던 고객층이 온라인 경로를 통한 구매를 경험함으로써 온라인 매장의 신규 고객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SK증권, ‘신종코로나 우려감, 온라인 소비 증가’) 시장 상인이 얼굴 맞댈 손님은 그만큼 줄어든다. 대형마트로 손님이 쏠릴 때도 프랜차이즈화 물결이 거셀 때도 비슷한 일들은 펼쳐졌다. 그럴 때마다 한 단계씩 김 사장과 망원시장 상인들의 ‘기초체력’도 약해졌다.

‘그러므로 시대 변화에 발맞춰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영업자들 나름 업태를 바꾸고 좀더 손님을 많이 끌 수 있는 프랜차이즈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결과는? 업체마다 달랐겠지만 전체를 보면,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자영업 매출액은 8.5%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16.8% 줄었다.(경제총조사 기준) 특히 프랜차이즈 가맹점 영업이익률 하락이 비가맹점에 비해 훨씬 컸다.(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자영업 경영상황의 변화’) 손님은 늘었을지 몰라도 본사에 내야 할 비용 등이 늘어버려 결국 제 몫의 소득은 줄어든 모양새다.

비슷한 일이 온라인화로의 ‘혁신’에도 반복되는 것 같다. 김 사장이 스마트폰을 연다. “자, 이거 보세요. 온라인 시장 장보기라는 게 있는데 운영은 대행업체가 맡아요. 근데 우리가 두부를 1만원어치 판다 그러면 1천원은 대행업체가 떼어가고, 손님도 1천원을 더 내야 하죠. 배달의민족 같은 데 올리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그러려면 지역별로 또 홍보비를 내야 한다더라고요. 손님 몇 명 더 끌어모을 수는 있겠지만 비용은 더 늘어나는 거죠.” 제 힘으로 플랫폼을 차릴 여력이 없는 대부분 상인에게 혁신은 아직 대형 상거래 업체로 향하는 새로운 비용 증가 정도를 의미한다.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이윤을 줄이는 기묘한 혁신에 발맞추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더 세게 등을 떠민다.

가족 6명 먹여살리는 두부

“남는 두부는 그냥 버려야죠. 우리는 생물만 파니까.” 이 마당에도 아침 7시에 나와서 오후 1시까지 두부를 만들고 밤 9시쯤까지 파는 일상을 멈출 수는 없다. “우리 가게만 해도 일하는 사람 3명, 우리 가족 3명, 모두 6명이 바라보고 있어요. 하루 장사 멈추면 이 사람들 모두 벌이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마스크 낀 손님이 간만에 두부 한 모 청한다. 2천원을 받고 정말 고마워서, “감사합니다” 외치는 김 사장 아들 목소리가 평소보다 우렁차다.

사람들이 덜 공포를 느끼고 더 많이 시장에 나와주길 바라지만, ‘그 가운데 혹시나’ 싶어 시장 걷는 사람들 면면 불안하게 볼 수밖에 없는 복잡한 날들이다. 지금 당장 미동 없는 사람과 소득 급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출렁이는 수익을 조금이나마 잡아줄 뒷배가 있었다면, 지금 좀 괴로워도 이 재난 지나가면 전보다 나아지리란 희망이 있었다면, 좀더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저녁 8시, 그나마 시장의 인적은 더 드물다. 아침부터 분주히 찍어낸 두부는 제법 많이 남아 있다.

글·사진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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