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월10일 경남 창원에서 열린 ‘2020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정치적이지 않은 정치인이다. 그를 이해하기 위한 열쇳말은 두 가지다. 첫째, 교회다. 둘째, 공안이다.
교회부터 따져보자. 그의 아버지는 황해도 연백 사람이다. 아이 넷을 데리고 피란 와서 둘을 더 낳았다. 황 대표는 여섯 남매의 막내로 1957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황 대표가 스무 살 때 돌아가셨다. 여러 일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만리재 근처 서부역 앞 중림동에서 고물상을 했다.
선과 악으로만 나누는 기독교근본주의 세계관황교안 대표는 만리동 봉래초등학교, 신수동 광성중학교를 나왔다. 어릴 때는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큰누나 손에 이끌려 나간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의 한마디가 삶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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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도 공부도 모두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단다.”
그는 교회 선생님 말씀을 잘 따랐다.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이 들어가던 경기고에 입학했다. 2학년 때 학생회장이 됐는데, 임기를 마칠 때쯤 1975년 가을에 학도호국단이 생기면서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했다. 그의 경기고 동창들은 운동장에 울려퍼지던 황교안 연대장의 우렁찬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욕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교회는 그에게 신앙, 공부, 인품을 선물했다.
좋은 것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세상사다. 2018년 8월 출판한 의 부제는 ‘황교안, 청년을 만나다’다. 머리말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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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청년들과 함께한 지도 어느새 스무 해를 넘겼습니다. 그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저는 청년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그리고 언제 기뻐하고 아파하는지, 더 나아가 무엇이 그들을 성공과 실패로 이끄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2019년 6월 숙명여대 특강에서 “청년들은 한국당이라고 하면 뭔가 ‘꼰대 정당’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꼰대처럼 생겼느냐”고 농담했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아들 자랑을 하는 바람에 구설에 올랐다.
2019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청년 행사에선 “나는 퍼펙트(완벽)한 청년 지도자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실수가 많았다”고 좀 이상하게 반성을 했다. 꼰대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청년들을 가르친 경험이 오히려 그를 ‘진짜 꼰대’로 만든 것이다. 그래도 꼰대는 귀여운 데가 있다.
교회가 정치인 황교안에게 미친 부정적 영향 중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그의 세계관이다. 황교안 대표의 세계관은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장으로 보는 기독교근본주의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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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 세력은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라며 “썩은 뿌리에서는 꽃이 피지 않는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이들은 지금 우리 가까이 존재하는 악한 세력”이라고 했다. ‘4+1’이 국회에서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검경수사권 조정법을 통과시키자 “독재는 죽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정치인의 언어가 아니다.
정치인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타협하고 공존하는 직업이다. 황교안 대표가 기독교근본주의자라면 정치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극단적 투쟁으로 ‘극우 메시아주의’라는 칭호도 부여받았다. 그는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시작하며 전광훈 목사와 손잡고 만세를 불렀다. 문재인 정부에 맞서 삭발하고 단식하고 농성하며 “정말로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목숨을 걸다니? 그것도 정말로?
황 대표가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이유가 뭘까? 혹시 교회에서 배운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2019년 12월 태극기 부대가 국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을 때 태극기 부대 앞에 선 황 대표의 모습은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를 닮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황 대표의 이런 모습을 “정치적 신념으로 정치하지 않고 종교적 신념으로만 정치하면 그 정치가 제대로 된다고 아직도 생각하십니까”라고 아프게 지적했다.

황교안 대표(왼쪽)가 지난해 11월20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 집회를 찾아 전광훈 목사와 함께 연설하고 있다. 1975년 경기고 학도호국단 연대장 시절 황교안 대표(맨 앞쪽 어깨띠와 완장을 찬 인물). 연합뉴스
두 번째 열쇳말은 공안(公安)이다. 공안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수호한다는 뜻이다. 그는 서울지검 검사 시절 공안부에 파견을 나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는 “공안부의 역할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고 북한 공산주의 세력에 대응하여 나라를 지키며, 더 나아가 국가의 법익을 해하는 범죄를 수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며 “공안부와의 뜻밖의 인연을 계기로 공안 업무의 귀중함을 깨닫고 더 나아가 사명감마저 갖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공안 체질이었던 것이다.
그는 검사를 하면서 이라는 책을 썼다. 법무부 장관을 할 때는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을 청구해 해산 결정을 끌어냈다. 그야말로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검사는 그냥 검사지, 공안검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검사가 아니라 ‘공안’에 뒀다. 매우 특이하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공안검사는 체제의 수호자에 그치지 않고 보수 기득권 세력인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그는 기득권 세력의 수호자였다.
‘교회’와 ‘공안’으로 가치관과 세계관을 다진 황교안 대표가 정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치인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자산이다.”
“훌륭한 인재들이 국회에 다수 진출해야 한다.”
“공천 시스템을 정비하여 좋은 인재가 공천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보장된 특권을 의원들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황교안 대표가 정치에 대해 한 말이다. 너무 상투적이라서 영혼 없는 기계음처럼 들린다.
국무총리나 대법원장 등 고위 공직자들이 쉽게 빠지는 사고의 함정이 있다. 조직 전체를 자신이 움직인다는 착각이다. 항공모함의 함장은 지휘할 뿐이지 실제 배를 움직이는 건 함장이 아니다. 배를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 황 대표가 바로 그런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정치부 기자 30년을 해도 정치를 잘 모른다. 그래도 기자는 최소한 자신이 정치를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국회의원 한 번 해보지 않은 황 대표가 정치를 알까? 잘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보수 혁신’ ‘보수 통합’ 두 가지 임무 맡았으나…어쨌든 이른바 보수 세력이 황교안 대표에게 부여한 임무는 두 가지일 것이다. ‘보수 혁신’과 ‘보수 통합’이다. 보수 성향의 정치세력을 혁신하고 통합해서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되찾아오라는 것이다. 황 대표에게 그럴 만한 역량이 있을까?
혁신과 통합의 역량은 정치적 리더십에서 나온다. 정치인은 리더십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황 대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정치적 리더십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실무 당직자인 이건용 조직팀장이 지난해 말 ‘숙고 끝에’ 페이스북에 황 대표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지금의 당은 마치 검사동일체 조직인 것마냥 굴러가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의사결정 과정이 뭐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제1야당의 총선 준비 전략이 무언가. 구도, 인물, 정책 뭐 하나 없이, 극우화된 모습만으로 한 표라도 가지고 올 수 있단 말인가.”
“이쯤 되면 시험 운영할 만큼 했다. 이쯤 되면 브레이크 걸 때가 됐다. 당은 우리의 것도, 대표의 것도, 의원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이고,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정당에서 이 정도 내부 비판은 그냥 넘겨야 한다. 그런데 황 대표의 응답은 ‘당무 감사’였다. 징계를 위한 사전 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공채 출신 실무 당직자들은 선거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4·15 총선을 “지금대로라면 70석 정도로 ‘영남 자민련’ 신세가 될 것 같다”고 전망한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이 참패했을 때 81석이었다.
자유한국당에는 희망퇴직 제도가 있다. 역피라미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다. 최근 고참이 아니라 젊은 당직자가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총선 전망이 암담하다고 보는 것이다.
“황교안 대표가 집에 가지 않으면 지금 우리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실무 당직자의 말이다.
“사유가 돼야 계획이 서고, 전략이 조성되고, 거기서 포석이 나온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는 정치적 사유가 전혀 안 되는 분이다. 사유가 안 되는 것은 경험지가 없어서다. 그가 경험한 세계는 지난 40년간 공직 바운더리(울타리)였다. 그것도 공안검사의 주어진 권한 안의 리더십이었다. 창조의 영역인 정치 행위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어렵다고 본다, 저는.”
자유한국당 전임 지도부 측근의 평가다. 정치적 리더십이 취약한 황 대표가 보수를 혁신하고 통합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 거의 없어 보인다. 최근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친박-비박 논쟁이 재연되며 보수 통합 논의가 혼란에 빠졌다. 황 대표는 속수무책이다.

경기고 72회 졸업앨범 갈무리(한겨레 자료)
참 이상한 일이다. 4·15 총선이 3개월도 남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도 황 대표 퇴진을 거론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자유한국당을 구성하는 세력은 두 줄기다. 하나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를 잇는 세력이다. 다른 하나는 김영삼을 잇는 세력이다. 1990년 이후 두 세력이 균형을 이루며 보수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때 김영삼을 잇는 세력이 완전히 무너졌다. 황교안 대표를 견제하거나 대체할 세력이 지금 자유한국당 안에 없다.”
자유한국당 고참 보좌관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황 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의 앞날에는 희망이 별로 없다. 자유한국당 앞날에 희망이 없는데 황 대표 앞날에 희망이 있을 수 있을까?
희망의 끈이 있긴 하다. 2013년 9월28일치 토일섹션 ‘WHY?’에 ‘당대 대표 관상가로 꼽히는 신기원씨가 말하는 관상’이라는 제목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런 대목이 있다.
“마의상법은 관상의 완성을 목소리라고 본다. 다른 모든 것이 좋아도 목소리가 나쁘면 완벽한 관상이 못 된다. 그런 예가 바로 김종필씨다. 그는 세상에 없는 귀상이다. 그런데도 그가 최고 권좌에 못 오른 것은 탁성 때문이다. 반면 최근 공직자 중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목소리까지 갖춘 귀상이다.”
관상가의 예언은 이루어질까? 또 하나 있다. 그의 출생지인 용산에는 왕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용산의 전설은 이루어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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