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주 52시간제)는 기존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라 주 최대 68시간씩 일하던 것을 52시간씩 일하는 것으로 ‘단축’하는 것을 넘어선 효과를 내고 있다. 그것은 노동시간의 ‘관리’다. 노동시간 상한이 주 52시간으로 낮아지면서 자칫하면 52시간을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주 68시간일 때보다 높아졌다.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하면, 대표이사가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사용자도 노동자도 알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할 유인이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시간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란도 뒤따른다. 그래서 노동시간 범위를 입법으로 명확히 함과 동시에 노사 합의로 사업장 실정에 맞게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분 이상 자리 비울 땐 휴식 분류하기도
노동시간 관리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판교의 오징어배’라고 불리며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문제가 있었던 게임업계는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라 노동시간이 줄었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 52시간제 시행을 즈음해 노동조합이 설립된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 노조 조합원 1259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라 노동시간이 단축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게임업체인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서 절반이 넘었다(각각 57.3%, 58.4%).
배수찬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 지회장은 “각자 얼마를 일했는지 노동자와 관리자가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노동시간이 단축됐다. 또한 포괄임금제가 2019년 8월 폐지된 뒤부터는 관리자들도 비용 증가를 우려해 연장근로를 통제하면서 주 평균 노동시간이 40시간 언저리에 머물게 됐다”고 말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IT 대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노동시간 관리 이후 직원 만족도와 업무효율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서비스에 차질을 빚기보다 순효과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신기기를 개발·생산하는 중소기업 ㅇ사도 주 52시간제 시행을 계기로 유연근로제, 출퇴근기록 시스템, PC오프제(근무시간이 종료되면 PC가 꺼지는 프로그램) 등을 도입했다. 이 회사 인사 담당자의 설명이다. “예전에 노동시간 관리가 안 돼 장시간 노동의 실태 파악조차 못했으나, 노동시간이 관리됨에 따라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진 것으로 평가한다. 업무효율성을 위해 근무시간 안에 모든 일을 마칠 수 있도록 회의·보고 방식도 바꾸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관리가 엄정해지면서 이를 악용하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일부 기업에서는 흡연하거나 커피를 마시러 5분 이상 자리를 비울 경우 이를 노동시간에서 제외하는 ‘휴식시간’으로 분류하거나, 자리를 비운 사유를 시스템에 입력하도록 해 ‘업무’로 판단되지 않을 경우 휴식시간으로 봐 측정 노동시간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한 중소 제조업체는 노동시간을 주 52시간 밑으로 맞추기 위해 기존 출퇴근시간은 그대로 둔 채, 휴게시간을 늘려 52시간 밑으로 맞추기도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 사무직 노동자는 <한겨레21>에 “회사에서 노동시간 한도를 맞추라는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에 관리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월말에는 남은 일을 하기 위해 출퇴근관리시스템에서 휴식시간으로 돌려놓고 일한다”고 말했다. PC오프제를 하는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연장근로 발생 여부가 관리자들의 인사평가 요소로 작용하다보니, 소속 부서원들이 알아서 PC오프 프로그램을 무력화하면서 일하기도 한다. 연장근로 승인을 받으려 해도 관리자가 안 해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독일, 노동시간·노동대기·대기노동 등 구분
노동시간 관리의 엄정화는 어디까지가 노동시간인지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진다. 국외 출장 중 비행기에 머무르는 시간이나, 호출받아 일하는 노동자가 대기하는 시간, 업무시간이 아닐 때 회사 차원으로 진행되는 워크숍, 옷을 갈아입는 등 업무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등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특히 ‘스마트워크’ 등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거나 업무시간 외에 업무지시를 받아 노동하는 시간 등도 애매한 시간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 등은 노동시간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을 뿐, 노동시간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법원 판례로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해석’하고 있다. 법원은 휴식·대기 시간이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시간일 경우 노동시간으로 본다. 워크숍 참여와 조기출근의 경우 회사의 명확한 지시가 있는지 등을 따져 노동시간 여부를 결정한다. 한 예로 2019년 7월 대법원은 셔틀버스 운전기사가 다음 운행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을 노동시간이 아니라고 판단해, 근로기준법의 연장근로한도 위반으로 기소된 기업 대표에게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노동자가 대기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는 점에 더해,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약정한 노동시간을 실제 노동시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이 때문에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에 있는 ‘회색 시간’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노동시간은 아니더라도 해당 시간만큼 금전·휴식으로 보상하는 ‘보상시간’을 신설하자는 취지다. 독일의 경우 완전 노동시간 이외에 노동대기와 대기노동, 호출노동으로 구분해놓고 임금 책정과 시간에 따른 보상에도 유연성을 갖고 있다. 프랑스 역시 작업복을 갈아입는 시간이나 출장으로 인해 통상적인 출퇴근보다 긴 시간이 소요될 때는 금전이나 휴식으로 보상하도록 한다.
“노동-휴게 시간 양분 대신 삼분화해야”
이와 관련해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현재 노동시간과 노동시간이 아닌 시간으로 양분된 것에 보상시간을 포함해 삼분하자는 것으로, 완전한 노동시간은 아니지만 (노동자가) 공간적 제약을 받는 시간을 보상시간으로 봐 별도의 보상을 하자는 것”이라며 “사용자로서는 노동시간을 보상시간으로 만들려는 유혹이 있겠지만 ‘꼼수’를 확대하자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어 “노동시간 여부를 판단할 때는, 법은 대원칙을 정하고 노사가 사업장 실정에 맞춰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이 일상적인 노동자 대표 제도 운영이다. 이를 통해 노사가 정한 노동시간 제도를 주기적으로 검토하고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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