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이런 아쉬움을 단번에 해소해줄 특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하나로 진행된 ‘신선 프로젝트’였다. 보호 종료 당사자 캠페이너인 신선(26)씨가 다른 당사자 9명을 직접 인터뷰하는 기획이었다. 신 캠페이너는 만 여덟 살부터 아동양육시설에서 살았고, ‘대학생 보호 연장’으로 스물셋에 자립했다.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신씨는 현재 아동자립 전문가를 목표로 또래 친구와 후배를 돕는 다양한 봉사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보호 종료 당사자를 심층 인터뷰하고 당사자 처지에서 사회적 인식과 자립 지원 제도의 개선점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씨는 “보육원을 떠나 2~3년을 혼자 고생하면서 자립을 배우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한 고민과 상황이 서로 공유되지 않아 갓 자립한 후배들도 선배들이 경험했던 어려움을 그대로 반복한다”며 “이 악순환을 해결하려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보호대상아동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작은 목소리 중 하나다. 수가 많지 않고 뭉치기도 쉽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에 기꺼이 귀를 기울여주는 언론과 정치인이 많지 않고, 스스로를 대변할 기회가 주어진 적도 거의 없다. 아름다운재단은 첫 기부자인 김군자 할머니의 기금을 통해 2001년부터 지속적으로 보호가 종료된 이들의 자립을 지원해왔다. 캠페인을 기획한 김성식 아름다운재단 1%나눔팀장은 “자립 지원을 시작한 지 18년이 지났지만 보호대상아동과 보호가 종료된 청년들을 향한 사회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고, 퇴소 이후의 삶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김 팀장은 “이들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캠페인을 통해 이들이 ‘홀로 살아낸 동정의 대상이나 역경을 이겨낸 신데렐라가 아닌,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청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 5개월간 우직하게 전국을 돌며 보호 종료 당사자들을 만났다. 또래와 수다를 떨듯 편안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며 인터뷰를 진행했고 꼼꼼하게 기록했다. 지면을 통해 신씨와 친구들이 자립 과정에서 부닥친 어려움과 편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많이, 깊이 소개한다. 9명의 인터뷰를 정리해보니 여덟 가지 공통된 주제가 나타났고, 이 주제에 맞춰 인터뷰를 종합해 구성했다. 주제별로 맨 앞에는 인터뷰어인 신씨(‘나’)의 경험과 소회를, 그 아래는 인터뷰이 9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신씨는 “알려진 게 없어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보호 종료 뒤 ‘우리의 삶’을 부디 동정과 편견 없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font size="2">(※아동복지법 제3조 4호에서 ‘보호대상아동’이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호대상아동의 보호 조처는 입양, 가정위탁, 시설입소로 나뉜다. 가정위탁은 조부모나 친인척, 혹은 다른 가정에서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보호하는 것이다. 시설입소는 쉼터 등 일시보호시설, 아동양육시설, 장애아동시설, 그룹홈 등의 보호를 말한다.)</font></font>
“(청소년)쉼터에서 만났던 친구네 집에서 지내요.”
청소년쉼터 퇴소생 이민희(22·가명)씨는 월세방에 사는 친구집에 얹혀살고 있다. 갈 곳 없는 그를 받아준 곳이다. 10월29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마주한 그는 ‘자립복지는 복불복?’(제1256호 참조) 취재를 하며 만났다. 7개월 만에 다시 본 그는 그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단다. 3개월 전 식당에서 일하다 손목을 다쳐 일을 못하게 됐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그는 월 30만원을 내는 고시원에서 지낼 수 없었다. 친구집에서 지내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오래 머물 수 없는 상황이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오늘은 어디에서 자야 하나</font></font>
13살 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에서 ‘탈출’한 그는 줄곧 쉼터, 고시원 등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하도 자주 옮겨 “짐 풀고 싸는 건 잘한다”고 한다. “친구들과 놀다가 헤어질 때면 ‘오늘은 어디에 가서 자야 하나’ 걱정이 됐어요.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곳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그도 한때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학업을 포기했다. “저같이 힘든 아이들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런데 당장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요. 일자리를 빨리 구해야 하는데 잘 안되네요.”
대학교 3학년생인 김이정(22·가명)씨는 청소년쉼터에서 퇴소한 뒤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방학 때도 기숙사에서 지낸다. 돌아갈 집이 없어서다. 홀로 생활하는 그는 “졸업하기 전에 취업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 모두 제가 감당해야 하니 주말이나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요. 나가는 돈을 줄이려고 사고 싶은 옷도 안 사고 커피도 잘 안 마셔요. 학비 대출금 1천만원도 있거든요. 대학 졸업하면 어디에서 지낼지 걱정이에요. 머물 공간이 없으니 그게 제일 불안해요.”
이들처럼 가정불화,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와 보호시설인 청소년쉼터에서 지내던 이들은 대개 만 18살이 되면 퇴소를 한다. 대부분 맨몸으로 나와 자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양육시설의 퇴소생들은 자립정착금·디딤씨앗통장 등을 받고 나가지만,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쉼터 퇴소생들은 자립정착금 없이 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퇴소하기 전에 월세·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고시원, 찜질방, 여관 등을 전전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법무부가 올해 10월 발표한 ‘아동 주거권 보장 등 주거 지원 강화 대책’에 따르면 기존에는 아동양육시설 등을 퇴소한 보호종료아동에게만 임대주택이 지원됐으나, 내년부터는 청소년쉼터를 퇴소생도 입주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임대주택의 보증금, 월 임대료, 관리비 등은 입주자 본인 부담이다. 당장 100만원의 보증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쉼터 퇴소 청소년들을 위한 주거비 지원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집을 탈출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주거’</font></font>
의정부시남자단기청소년쉼터 이병모 소장은 “우리 쉼터에 온 청소년 중 50~60%는 단순 가출이 아니라, 부모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집이 안전하지 않아 살기 위해 나온 경우”라며 “그들에게는 가정 복귀가 아니라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그들에게 유일한 보금자리가 되어준 쉼터를 나간다는 건 벼랑 끝에 서 있는 것과 같단다. 이 소장은 주거비 지원 대책을 강조했다. “퇴소를 앞둔 한 학생이 ‘선생님, 눈을 감아보세요. 깜깜하고 불안하죠? 저희 심정이 그래요’라는 말을 했어요. 그들이 제일 걱정하는 건 주거 문제예요. 당장 월세, 보증금 등 주거비 지원이 절실해요.”
청소년쉼터 퇴소생들의 자립을 돕는 청소년자립지원관이 경기도와 인천에 4곳 있다. 서울에 1곳이 문을 열 예정이다. 하지만 2018년 청소년자립지원관 4곳에 처음 국비 지원이 되고 아직 체계를 잡아가는 상황이다.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의 차소영 간사는 “생필품 지원이 필요한 퇴소생들을 만나면 그들 대부분이 의식주 모두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다들 안정되지 못하고 소득이 적은 일을 하고 있어 생활이 무척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에서는 2019년 6월4일부터 7월1일까지 전국 쉼터와 청소년자립지원관 93곳(일시쉼터 16곳, 단기쉼터 46곳, 중장기쉼터 30곳, 청소년자립지원관 1곳)의 실태 조사를 했다. 중장기쉼터 30곳 중 자립지원금을 지원하는 곳은 5곳(16.6%)에 그쳤다. 지원액은 100만원(1곳), 200만원(1곳), 300만원(1곳), 500만원(2곳)이었다. 중장기쉼터가 속한 지역이나 후원자 연계에 따라 지원액이 크게 차이가 났다. 자립 지원은 부족하지만 쉼터 입소생들은 사회 복귀 욕구가 높았다. 쉼터 입소생들의 퇴소 이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단기와 중장기 쉼터에 있는 입소생들은 중·고·대학교 상급학교 진학(단기 31.5%, 중장기 35.2%)을 1순위로 대답했다. 그다음은 취업(단기 20.1%, 중장기 30.1%)을 꼽았다.
그러나 청소년쉼터 예산도 적고 종사자들의 처우도 열악한 상황이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김기남 회장이 상황을 전했다. “가정 밖 청소년의 상담, 보호, 자립 지원 등을 하기 위해서는 노하우가 쌓인 경력직원들이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해요. 하지만 사회복지 분야에서 청소년쉼터 쪽이 가장 열악한 ‘3D’로 불려요.”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의 2019년 전국쉼터 실태 조사에 따르면 쉼터 종사자 절반 이상인 53.3%가 연봉 2500만원 이하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평균연봉인 2935만원보다 적다. 종사자의 근무기간을 살펴보면 1년 미만 종사자가 202명(33.0%), 1년 이상~2년 미만 종사자가 112명(18.3%), 2년 이상~3년 미만 종사자가 72명(11.8%)이었다. 3년 미만 종사자가 63.1%에 이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출 청소년 아닌 ‘가정 밖 청소년’</font></font>
청소년복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청소년쉼터 퇴소생들의 주거 등 자립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가출 청소년’이 아닌 ‘가정 밖 청소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동북권 김범구 소장도 “가정폭력, 학대, 버림받음 등의 이유로 비자발적으로 가정을 떠나야 하는 ‘가정 밖 청소년’으로 생각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지 제도적 보호막 안에서 사회적 자립을 할 수 있는 지원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모 소장은 “청소년쉼터 퇴소생들은 ‘가정 밖 난민’처럼 머물 곳을 찾아서 끝없이 방황하는 고단한 삶을 산다”며 “그들에게도 주거권이 보장돼야 하고 그 주거권은 사회 복귀를 위한 최소한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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